5. 인수인계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1부

by 나라연

지국장은 내게 손짓하며 먼저 1층으로 내려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아무래도 좀 전에 전화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짧게 '네'라고 대답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미용실 안을 힐끗 살폈다.

갈색머리녀는 여전히 손님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지만 단발머리녀는 보이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후다닥 미용실 앞을 지나 내려갔다.

아래 중간층 화장실 문에 꽂혀 있던 열쇠도 보이지 않았다.

1층 쪽문너머로 아까 화장실로 급히 뛰어 들어갔던 빨간색티 남자가 카운터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건물 밖을 나와 선배가 신문을 실어 놓은 자전거를 살폈다.

핸들 앞에 달린 흰색 바구니에 이십여 부 정도의 신문이 실려 있었고, 짐칸에는 신문이 고무밧줄로 단단히 매 있었다.

그리고 맨 위에는 십 여부 정도가 반을 둥글게 접혀 있었다.

자전거는 진녹색으로 도장이 되어 있었고, 하단 바에는 신문사 이름이 적힌 흰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잠시 후 선배가 혼잣말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젠장, 미치겠네”

그러곤 나를 보며 말했다.

“맘에 드는 거 한대 골라 타.”

자전거에 주인은 따로 없는 듯했다.

난 선배에게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물으려다 말고 자전거 하나를 골라 타고 앞선 선배 뒤를 따랐다.

약 육 분 뒤, 대로변에서 우측 남산공원 길목에 들어섰다.

선배는 들어서자마자 ‘김선경 헤어’ 미용실 앞으로 자전거를 바짝 세웠다.

선배는 바구니에서 신문 한 부를 꺼냈다.

“오늘은 나 따라다니면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봐둬.”

선배는 김선경 헤어 출입문을 살짝 밀고 두 번 접은 신문을 소파 위로 툭 던져 넣었다.


내가 맡게 될 배달 구역은 D구역으로 남산동과 선수동, 그리고 용정동이었다.

남산동은 상가와 주택이 절반씩 섞여있었고, 선수동은 아파트와 빌라가 섞인 주택가, 용정동은 선수동과 경부선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동네였다.

이름만 '동'이었지 버스와 차량이 드나들지 않았다면 사실상 시골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D구역 구독자는 김선경헤어를 시작으로 마지막 ‘빨간 대문집’까지 모두 육십육 가구였다.

배달소요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나는 선배의 동선을 따라 배달 순서, 투입 장소, 건물 특징을 머릿속에 담았다.

생각보다 코스는 복잡하지 않았다.



다음날, 보급소에 도착했을 때 전날과 달리 조용했다.

작업 테이블 위에는 이미 각 구역별로 신문이 정돈돼 있었고, 신문 위에는 전날 경리 책상에서 있던 녹색 커버의 종이 다발이 한 권씩 놓여 있었다.

시꺼먼 손때가 묻은 커버에는 굵은 검은색 매직으로 쓴 손글씨로 ‘D구역’이라고 적혀있었다.

왼쪽에 검은색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난 그것을 집어 들고 녹색 표지를 펼쳤다.

첫 장에 구독자명 김선경 헤어라고 프린트되어 있었다.

옆에서 총무형이 오늘부터 수금기간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것은 수금철이었다.

왼편엔 구독자 정보가 기재된 납부고지서, 오른편은 납부영수증이었다.

그 사이에 뜯기 쉽도록 미싱처리가 되어 있었다.

수금철은 배달 순서대로 묶여 있었다.

나는 종잇장을 넘기며, 기억을 되짚으며 신문배달 경로를 복기했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멈칫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우측에 납부 영수증이 이미 뜯겨 나간 채 고지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거 왜 뜯겨 있어요?”

총무형에게 물었지만, 그건 나중에 선배 오면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1층에 내려와 자전거에 신문을 싣고 있을 때 선배가 도착했다.

그때 1층 성인캐주얼 의류매장에서 빨간색티에 파란색 반바지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남자가 나왔다.

어제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선배에게 다가와 주머니에서 구겨진 오천 원짜리를 꺼냈다.

“지난주 신문값. 어제 줬어야 했는데… 쏘리! 잔돈은 됐어.”

선배는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돈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일주일에 오천 원이면 한 달 구독료가 같은 금액인걸 생각하면, 꽤 괜찮은 장사였다.

그는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얘는 누구?”

“제 후임이에요.”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관두는 거야?" 빨간 티셔츠남자는 손으로 내 인사를 받으며 선배에게 물었다.

"네."

"뭐 하려고?”

“곧 현장 실습나가요. 그전에 한 달 정도는 쉬려고요.”


우리 학교 3학년 생은 2학기 부터 학교에서 지정된 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간다.

현장실습 나간 그 회사에서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졸업한 후에 그곳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개중 대학 진학을 위해 학교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 수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 너 아르바이트하느라 쉬지도 못했는데 잘 생각했다. 실습 나가면 더 바쁠 테니....”

“다음 주부턴 얘한테 신문 사주시면 돼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전거 바구니에서 신문을 꺼내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가 옆에서 말했다.

“저 사장님은 직접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 혹시 안 나오는 날에는 카운터 위에 올려두면 돼.

그리고 신문은 여분으로 다섯 부는 챙기고 알았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신문배달은 수금도 함께 겸하느라 첫째 날보다 시간이 30분은 더 걸렸다.

수금은 간단했다.

구독자에게 현금을 받고 영수증을 뜯어 건네면 끝이었다.

수금은 단순히 돈을 걷는 일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구독자와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D구역의 구독자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고생한다며 음료수 또는 빵이나 과일 등의 간식을 챙겨주는 구독자들도 있었다.

또한 수금을 미루는 구독자는 거의 없었다.

선배는 겉모습과 달리 구독자에게 공손했고, 나를 소개하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선배는 세 번째 집까지 직접 시범을 보였고, 일곱 번째 집까지 내게 수금을 시켰다.

내 대응이 맘에 들었는지 이후엔 내게 수금을 전부 맡겼다.


난 집집마다 수금을 하면서 선배에게 신문 투입장소를 묻고 확인을 거쳤다.



다음 날, 나는 일찌감치 신문보급소에 도착해 배달 준비를 마쳤다.

1층 의류매장 카운터에 신문 한 부를 올려두고 밖으로 나오면서 역전사거리 쪽을 살펴보았다.

선배가 역전사거리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첫날에 사거리에서 팻말을 들고 서있던 팻말녀는 보이지 않았다.

선배는 첫 번째 블록 중간쯤에서 나를 발견하더니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잠시 후 선배가 자전거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꽤나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선배의 두귀에 검은색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왼손에 검은색 파우치려 있었다.

선배는 점검하듯 자전거에 실린 신문을 천천히 둘러보고서 카세트 정지 버튼을 눌렀다.

삑-하는 전자음과 함께 음악소리도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폰을 귀에서 뺀 뒤 검은색 파우치 위로 조심스레 돌돌 감아 바구니 안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아이템인 워크맨이었다.

고가의 제품이라 우리 반에서도 갖고 있는 애들은 몇 없었다.

선배도 꼬박 두 달 치 아르바이트비를 투자했을 거라 짐작되었다.

내가 워크맨을 흘깃 바라보는 걸 눈치채고는 파우치에서 워크맨을 꺼내 보이며 제품에 대해 설명을 했다.

올해 출시된 최신 모델인 WM-EX707 제품이며, 음질도 끝내주고 테이프가 다 돌아가면 자동으로 되감아주는 오토리버스 기능도 있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기능에 대해 설명했다.


그 워크맨은 진수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모델의 제품이었다. 이 제품에 대해 이미 진수에게 들어 다 알고 있는 얘기였다.

이어 이걸 구하느라 열 군데 가게를 뒤져 어렵게 구했고, 10% 할인까지 받았다는 구매 담을 늘어놓았다.

내가 나중에 꼭 사고 싶다는 말에,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가게를 알려주겠다며 꼭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선배는 워크맨 이야기로 신이 났는지 자전거에 실려 있는 신문을 보며 내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선배… 할 말이 있는데요.”

“야, 갑자기 불안하게 무슨 할 말? 설마 이제 와서 그만두겠다는 소리 하려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고요.”

“그럼 뭔데?”

"제가 오늘 신문배달해 봐도 될까요?"

선배는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날이 덥다 덥다 하니까 새끼가 더위를 먹었나?"

"배달코스를 완벽히 외워 거든요."

선배는 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머리를 툭 내리쳤다.

꿀밤이었다. 순간, 눈물에 핑 돌았다.

“이틀 만에 코스를 다 외웠다고? 이걸 확 그냥!"

선배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선배에게 첫날 배달 코스를 모두 외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둘째 날은 마침 수금까지 겸해 코스와 투입 장소를 완벽히 숙지할 수 있었다.

사실 그날은 내 기억력을 테스트해 보기 위한 날이었고, 예상대로 단 한 곳도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배달을 마친 뒤, 보급소에 남아 수금철을 한번 더 넘기며 기억을 되짚어 봤다.

내 기억은 완벽했다.


나는 저릿한 머리를 비비며 말했다.

“사실 믿지 않겠지만 첫날에 다 외웠거든요.”

“야!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이 새끼가…”

선배는 목소리가 격앙되더니 갑자기 내 어깨를 밀쳤다.

나는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버텼다.

“이것 봐라.”

이번엔 선배의 오른 주먹이 내 머리를 향해 다시 날아왔다.

주먹을 휘두르는 모양새가 싸움과 거리가 먼 폼이었다.

나는 재빨리 상체를 뒤로 젖혀 피했다.

“어쭈, 피해?”

선배의 눈이 가늘게 찢어지더니, 입꼬리가 씩 하고 올라갔다.

다음 순간, 선배의 오른 주먹이 다시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나는 왼손으로 날아오는 선배의 주먹을 막았다.

짝!

손바닥과 주먹이 부딪치며 찰진 소리가 났다.

나는 곧바로 공을 잡듯 주먹을 감싸 쥐었다.

선배의 손을 아래로 힘껏 끌어당겼다.

선배의 몸이 휘청였고 그대로 따라 끌려왔다.

선배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아귀힘을 잠깐 풀자, 그 틈을 타 선배는 재빨리 주먹을 빼냈다.

그리고 주먹을 쥐락펴락하고서 입에 가까이 대고 숨을 후 불었다.

그리고 반 발짝 뒤로 물러서는 듯하더니 기습적으로 주먹을 말아 올렸다.

내가 마음먹고 피했다면 그의 주먹은 아마도 허공을 갈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주먹을 피했다간 더 큰일이 터질 것 같았다.

지금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한 찰나 선배의 주먹은 그대로 내 옆구리에 꽂혔다.

퍽!

“윽…!” 숨이 턱 막혔다.

각오한 대로였다.

난 왼손으로 옆구리를 감싸 쥔 채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어 손바닥을 펴서 흔들었다.

더 이상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제스처였다.

난 찡그린 얼굴로 선배를 올려다봤다.

선배는 나의 반응이 재밌는 듯 히죽 웃으며 한 발짝 물러서고는 중얼거렸다.

"하... 미친놈이네."


선배는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뭔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이 진짜면 증명할 기회를 줄게. 대신 조건이 있다."

“네?.... 조건이요?”


조건은 단순했다.

코스나 투입지 중 하나라도 틀리면 배달 권한은 즉시 박탈되고, 인수인계 기간은 다음 주까지 연장된다는 것. 그러나 성공한다면 오늘로 인수인계는 종료되고 정식 배달원이 되는 것이었다.

규정상 인수인계 기간은 7일이지만 오늘은 겨우 3일째였다.

모든 인수인계 종료권한은 지국장에게 달려있었지만 선배는 자신이 지국장을 설득하겠다며 장담했다.

월급을 빨리 받으려면 나 역시 하루라도 빨리 인수인계를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좋아요. 약속은 꼭 지켜주세요."

그렇게 나는 선배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배달기회를 얻었다.


신문을 배달한 지 한 시간하고 십 분이 조금 넘어 예순다섯 번째 집 앞에 도착했다.

전날에 만나지 못했던 열 곳을 수금을 하느라 배달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이 2층 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외관이 깔끔했다.

대문기둥에 달린 초인종 버튼을 누르자 종달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울렸다.

두껍고 묵직한 검은 철제 대문 너머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넓은 마당에는 짧게 깎인 잔디가 깔려 있었고, 현관까지는 넓고 납작한 돌이 깔려 있었다.

대문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길 양옆에는 향나무가 가지런히 서 있었다.

초인종을 두 차례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신문을 둘둘 말아 대문 손잡이 깊숙이 찔러 넣고 마지막 집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선배도 내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


마지막 집은 빨간색 페인트가 칠해진 녹슨 대문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의 투입 장소는 현관문 앞이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의 거리는 약 8미터쯤, 신문을 정확히 현관 앞 바닥에 떨어뜨리려면 방 창문 아래 벽을 먼저 맞혀야 한다.

이를 위해선 높으면서도 낮은, 절묘한 포물선을 그려야 한다.

대문과 처마 사이의 좁은 틈으로 신문을 던져야 가능한 고난도의 요령이 필요했다.

선배가 신문을 던졌던 장면을 떠올리며 두 번 접은 신문을 손에 들었다.

타점을 정확히 잡고 힘을 실어 던졌다.

신문은 깔끔하게 대문과 처마 사이를 통과했다.

잠시 후,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오~!"

선배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터졌다.

"이야, 새끼 진짜 장난이 아닌데."

선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제대로 투입장소에 떨어졌는지 확인을 위해 자전거를 세워두고 빨간색 대문 앞으로 달려갔다.

얼굴을 대문에 바짝 붙이고 문틈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신문은 현관문 앞에 정확히 떨어져 있었다.

신문 배달은 완벽했다.


자전거로 돌아가려고 돌아서려는 찰나, 대문 기둥에 걸려 있는 우편함이 눈에 들어왔다.

'선안시 동남구 용정동 111번지'

흰색 붓글씨로 적힌 주소가 선명했다.


그 순간, 첫날 경리가 끄적였던 메모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월요일, 세 번째, 111’.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