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지막 집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1부

by 나라연

그때 집 안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문틈을 사이로 보니 조금 전 열려 있던 현관문이 어느새 닫혀 있었다.

그리고 신문은 바닥에 그대로 있었다.

바람에 닫힌 듯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더 살피고 싶었지만 선배의 재촉에 그만 자리를 떴다.

난 자전거로 달려와 얼른 수금철을 꺼내 마지막 집 고지서를 펼쳤다.
“여기… 영수증은 왜 뜯겨 있어요?”

막 페달을 밟으려던 선배가 멈칫했다.
“아, 여긴 1년 치 선납하는 집이야. 수금 신경 쓸 필요 없어.”

선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고 하나슈퍼 사거리 쪽으로 자전거를 돌렸다.

하는 수없이 선배뒤를 따라 페달을 밟았다.

선배는 하나슈퍼 코너를 돌며 손짓했다.

“자전거 저기에 세우고 평상에 앉아 있어. 나 잠깐 슈퍼 좀.”


이틀이나 다녔던 길인데, 이렇게 큰 나무와 평상은 오늘에서야 보였다.

난 미루나무 아래 평상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노란 장판이 깔린 평상 위에 슈퍼를 바라보고 았다.

슈퍼 정문 옆엔 어울리지 않는 리어카 한대가 세워져 있었고 나무바닥에 어떤 충격에 부서진 듯 십 센티 정도가 깨져 구멍이 나있었다.

일부러 구멍을 낸 것 같진 않았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쓸고 지나갔다.

나뭇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에 나무를 올려다봤다.

미루나무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잎사귀들끼리 서로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해변가에 온듯했다.

스르륵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곧 차가운 금속 같은 게 뺨에 닿았다.

“자, 마셔.”

선배가 내 얼굴에 댔다 내가 눈을 뜨자 캔음료를 건넸다.

캔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손이 시릴 만큼 차가웠다.

난 이마와 뺨에 대고 땀을 식혔다.

선배는 나를 따라 캔을 얼굴에 갖다 대며 평상에 툭 걸터앉아 물었다.

“그 좋은 머리로 왜 우리 학교 왔냐? 인문계 가서 대학 갈 생각은 안 하고.”

“그냥 기억력이 좀 좋은 것뿐이에요.”

“좀?... 그 정도면 대단한 거야.”



선배 말대로 난 집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점 이상해져 가는 아버지와 더 이상 함께 지낼 자신이 없었다.

더 함께 있었다간 나마저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땐 아버지와 최대한 멀리, 빨리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최대한 이른 시간에 진학할 고등학교를 확정 짓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 고등학교를 알아보던 중 선택한 학교가 우리 학교였다.

공업고등학교인 우리 학교는 일반고와는 달리, 3학년 2학기 중간에 신입생을 선발했다.

그리고 학력고사 치르기 전에 고교입학을 확정할 수 있었기에 내게 아주 좋은 선택지였다.

내가 건축과를 선택한 것도 또한 달리 뜻이 있어서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냥 건축과란 학과이름이 왠지 멋져 보여서였다.

내 성적대로 학과를 선택했다면, 아마 지금 선배의 직속 후배가 되었을 것이다.



선배는 내 얼굴을 흘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까 보니까 순발력도 좋고… 운동해?”

“복싱을 좀 배우고 있어요.”

“어쩐지. 주먹 피하는 폼이 다르더라니.”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음료수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나도 얼굴에 대고 있던 캔을 따서 벌컥 들이켰다.

살짝 짭짤한 맛 위로 달달함이 퍼졌다.

광고처럼 속 시원하게 갈증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괜찮았다.

저 멀리, 철길 건널목 너머로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보다가 물었다.


“선배, 마지막 집 말인데요…”

선배는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대답했다.

“거긴 선생님 부부가 사는 집. 내가 2년 넘게 배달했는데 얼굴 한 번 못 봤다.”

“한 번도요?”

“응. 구독료를 1년 치 선납하고 보는 집이라 수금할 필요가 없기도 했고, 그냥 배달만.”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방학이면 한 번쯤 마주칠 법한데 2년 동안 한 번도 못 봤다는 건 좀 이상했다.

선배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딱 한번 그 집에 사람이 있는 걸 봤어. 작년 9월이었나? 집 앞에 이삿짐센터 차가 서있었어. 대문이 열려 있길래 신문을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당엔 살림살이가 몇 개 나와 있더라고."

"그럼, 이사를 간 거예요?"

"나도 처음엔 이사를 하나 생각했는데 이사가 아니었어."

"이사가 아닌데 웬 이삿짐센터 차가 왜?"

"그게 나도 궁금해서 짐을 옮기는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다른 집에 있던 살림살이를 이 집에 옮기는 거였어."

"아 그래서 이삿짐센터 사람들이....그날도 주인은 없었어요?"

"죄다 작업복 차림의 직원들뿐이었어."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시 후, 버스가 마른 먼지를 날리며 평상 건너편 정류장에 멈춰 섰다.

버스를 내리려는 사람들이 하차 문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그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2층 미용실 단발머리녀였다.

그녀 뒤로 대여섯 명이 줄지어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단발머리녀를 눈으로 좇았다.

버스가 떠난 자리에 사람들이 각자 흩어졌지만 단발머리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놓쳤던지, 잘못 봤던지, 아니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증발이란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때 하나슈퍼 담벼락 귀퉁이를 돌아들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야. 어딜 그렇게 봐?”

선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뇨....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 어디에도 하얀 빛줄기도 푸른 섬광도 없었다.

난 남은 음료를 마저 들이켰지만 갈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보급소로 돌아오자 선배는 약속대로 지국장에게 오늘부로 인수인계를 마치겠다고 보고했다.

지국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선배는 내 배달을 과장 없이 전했다.

지국장은 중간중간 사실이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인수인계는 필요 없습니다.”

선배가 단호히 말하자, 지국장은 일주일간 네 구역에서 생기는 배달 사고는 모두 네가 책임진다는 조건을 달았다.

선배는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하며 그 조건에 동의했다.

선배가 내게 조건을 걸었던 방식 그대로였다.

지국장은 그동안 수고가 많았었다며,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서 선배 손에 쥐어 주었다.

선배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선배는 보급소에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우체국 옆 중식당, 영성루로 나를 데리고 갔다.

초저녁 이른 시간이었지만 스무 개가 넘는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식당에 들어섰을 때 마침 안쪽 코너 창가 자리에 자리 손님들이 막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선배는 내게 먹고 싶은 메뉴를 묻고는 카운터에 사장과 익숙하게 몇 마디 주고받았다.

종업원이 다가와 우리를 창가 쪽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선배가 자주 오는 단골이라고 했다.

학생신분에 이런 중식당을 자주 온다니 조금 놀랐다.

형편이 넉넉한 걸까 싶었다.

우리는 창가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종업원은 테이블에 물과 컵 두 개, 단무지와 춘장, 양파가 담긴 작은 접시를 두고 갔다.

"인수인계를 빨리 끝내줘서 고맙다."

"저도 빨리 정식으로 신문배달하고 싶었어요."


선배는 하루라도 빨리 일을 손에서 놓고 싶었다고 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신문 배달을 하느라 맘 편히 쉰 적이 없었고,

현장실습을 앞둔 마지막 한 달만큼은 자유롭게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잠시 후 주문한 짬뽕과 간짜장이 나왔다.

면과 간짜장소스는 선배 앞으로, 김이 모락 오르는 짬뽕은 내 앞으로 놓였다.

선배는 간짜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짜장 소스를 면에 털어 붓고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입맛을 다셨다.

나는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짬뽕 국물을 한 숟갈 떠 넣었다.

오징어내음과 달짝지근한 매콤한 맛에 강한 불맛이 입안에 퍼졌다.

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날, 하숙집에 짐을 풀어놓고 아버지와 점심을 함께했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때 아버지는 짬뽕 맛이 끝내준다며, 다음에 날 보러 올라오면 다시 이곳에 꼭 식사를 하자고 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짬뽕을 절반쯤 먹었을 때, 종업원이 탕수육과 군만두를 내왔다.

군만두는 서비스라 했다.

선배가 말한 ‘성공 보너스’는 바로 탕수육이었다.

노릇하게 튀겨낸 고기를 진한 갈색 소스에 푹 담가 한입에 넣자 바삭한 식감 뒤로 새콤달콤한 맛과 고기의 담백함이 이어졌다.

네 개의 젓가락은 쉴 새 없이 접시를 오갔고,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마지막 남은 군만두 하나씩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식당 안에 전화벨이 울렸다.

사장은 카운터에 없었고, 종업원은 다른 테이블 주문을 받고 있었다.

웅성거림 속에서도 전화벨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내가 만두를 삼킬 때까지도 전회벨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순간, 엊그제 보급소에서 지겹도록 울려대던 전화벨이 떠올랐다.

잠시 후, 사장님이 출입문을 밀치고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급히 수화기를 집어 들었고, 한동안 말없이 귀에 대고 있다가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죄송합니다."

그는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반복했고 바로 갖다 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첫날 보급소의 끊임없는 전화벨과, 연신 ‘죄송합니다’를 말하던 경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배 혹시...."

“아 맞다!”

그때 선배가 뭐라도 떠오른 듯 내 말을 가로채고는 한입 베물고 남은 만두를 간장에 푹 찍어서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물을 컵에 가득 따라서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이 집 맛 어때? 맛있지?”

나는 선배의 물음에 대답 대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선배는 씩 웃다가 곧 표정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중요한 얘기가 있어.”

선배가 잠시 뜸 들이다 말했다

“내가 2년 동안 단 한 번도 배달 사고를 낸 적이 없었거든. 근데 최근 갑자기 배달사고가 났어. 3주 전부터. 하필이면 내가 배달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다음 날부터...."

선배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 덕분에 지국장한테도 한 소리 들었지 뭐야. 왜 끝날 때쯤 배달사고를 내냐고. 내가 얼마나 억울하던지.”

선배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이상한 건, 세 번 다 월요일, 게다가 더 황당한 건 모두 같은 집이라는 거지. 바로… 마지막 집.”

내 짐작이 맞았다.

경리가 끄적이던 메모지에 ‘월요일, 세 번째, 111’,

마지막 숫자는 마지막 집의 번지수였다.


"너무 어이 없지 않냐?"


말 그대로 그 집은 마지막집이었다.

배달을 빼먹으려야 빼먹을 수 없는 곳.

누군가 장난을 치지 않는 이상, 배달사고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선배가 억울할만도 한 상황이었다.


선배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그러니까 다음 주 월요일엔… 너도 꼭, 그 집 신경 써. 괜히 너까지 의심받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누가, 왜…그런 장난을…?’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