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세계 사람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 2부

by 나라연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선배가 설계사무소에서 현장실습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신문 배달은 이제 손에 익어, 예전보다 배달 시간이 10분가량을 단축시켰지만 더 이상 줄이기는 쉽지 않았다.

구독자가 이사하거나 구독을 끊지 않는 이상, 딱 거기까지였다.

수금을 미루거나 애를 먹이는 구독자도 없었고, 선배가 우려했던 ‘마지막 집’의 배달사고도 지난 두 달 가까이 일어나지 않았다.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 네시가 조금 넘어서 신문보급소로 향했다.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예수님이 곧 진리입니다.”


역전 사거리에 도착하자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마주하는 목소리였다.

황단보도 맨 앞에서 피켓을 든 채 서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길 건너편에 서 있던 몇몇은 그녀의 피켓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수군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보행 신호가 바뀌자, 여자는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그리고 건너편에 도착하자 몸을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로 그녀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40대 초중반의 나이에 중년여성,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가 바람에 흩날렸고, 헐렁한 재킷에 긴치마 차림의 그녀는 한 손에 전단지를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피켓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피켓에는 굵은 글씨로 날짜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멀리서도 또렷했다.


『1992년 10월 28일 예수님 공중재림

휴 -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 - 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어이가 없어서 나온 웃음이었다.

그날 피켓에 적힌 내용을 본 건 처음이었다.

으레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흔하디 흔한 문구가 적혀 있을 거라 짐작했었기에, 그동안 그녀가 들고 있던 피켓에는 관심조차 없던게 사실이다.

막상 피켓 내용을 확인하고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측은함 마저 들었다.

‘아직도 저런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는 혀끝을 차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예수님이 곧 진리입니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단을 내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상대방을 향한 친절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믿는 바를 기계처럼 전하는 습관 같았다.

지나치는 사람들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곧 시선을 거두었다.

길 건너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코웃음을 치고, 또 누군가는 옆 사람과 수군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수없이 겪은 반응이라는 듯 크게 개의치 않는듯 했다.

마치 자신만이 진실을 알고 있고, 그 진실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듯 표정은 이상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보였다.

스스로 믿는 바를 세상에 증명하려는 듯.


난 서둘러 건널목을 건너 그녀 옆을 지나던 순간 그녀가 내 앞을 가로막듯이 전단지를 불쑥 내가슴팍에 내밀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피곤에 지친 수많은 얼굴들 속에서 그녀만은 오히려 생기로 가득 차 보였다.

그리고 그 눈빛 속에는 무언가 단단한 확신이 서려 있는 듯했다.

난 곧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이유 모를 불편함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도심의 한복판, 무수한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도 그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마치 아버지 처럼.


나는 피켓녀가 내민 전단지를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전단지 상단에는 빨간색 바탕에 굵은 흰색 글씨로 ‘금년은 휴거의 해’, 그 아래에는 파란색 바탕에 ‘10월 28일 24시를 기억하세요’라고 써 있었다.

글자는 흰색이었고 숫자만 도드라지게 빨간색이었다.

글귀 아래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하늘에서 두 팔을 아래로 뻗고 있는 예수의 상반신 아래에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들이 유선형으로 좌우로 가득 메우고, 그 아래 땅 위에서는 사람들이 손을 뻗으며 하늘로 끌려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 밑에는 연분홍바탕에 파란색 글씨로 두 개의 성경 구절이 인쇄되어 있었다.

전단지 속 그림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성경의 구절을 토대로 한 그림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전단지의 그림을 한동안 내려다보다 피켓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무렵부터였다.

엄마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얼마지나지 않아 40대 초반의 정도의 낯선 남녀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남자는 검은 양복 차림에 말수가 적었고, 부드러운 인상이었으며, 여자는 단발머리에 얇은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왠지 따뜻하다기보다 차가웠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위로를 전하러 온 줄 알았다.

내가 그들을 본것은 첫날뿐이었고, 이후로는 그들을 직접 본적이 없었지만, 그들의 방문은 그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들을 “예전부터 엄마와 잘 알던 사람들”이라고만 설명했다.


아버지는 그들과 어울리며 외출이 잦아졌고, 늦은 밤 귀가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늘 혼자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식탁에 빈 의자를 볼 때마다 엄마의 부재뿐 아니라, 아버지와의 거리가 더 멀어짐을 느꼈다.

밤늦은 시간,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곧장 서재로 향했다.

그 방은 날이 갈수록 낯선 공기로 가득 찼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거실을 지나는데 서재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서는 낮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 하늘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택함 받은 자는 그 문으로 들어갈 것이고, 남겨진 자는 불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난 발걸음을 멈추고 열려있는 문틈으로 서재 안을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 한 남자는 흰 셔츠에 정장 차림에 단정한 머리, 그러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어깨에는 금빛 장식이 달려 있었고,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웅변했다.

밝은 조명 아래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정면을 응시한 채, 마치 화면 너머를 뚫고 나를 향해 직접 말하는 것처럼, 입술은 쉼 없이 움직였다.


‘이 세상은 곧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자는 주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날은 머지않았습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아멘’

이어 군중들의 목소리와 환호가 뒤섞여 들렸다.

그 남자의 음성은 낮게 깔리다가 어느 순간 크게 치솟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확신으로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 목소리는 서재를 가득 채웠다.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설득이라기보다는 단언이었고, 때론 협박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두 손은 무릎 위에서 굳어 있었고, 화면 속 그 남자의 눈을 꿰뚫듯 붙잡기라도 하듯 꿈쩍하지 않고 소파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화면 속 다른 세계로 끌려들어 간 듯했다.


아버지는 거실에 티비와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날 TV와 비디오 플레이어가 결합된 일체형 비디오비전을 서재안에 들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즐겨보는 영화도 아닌 목사의 설교 비디오를 자주 보기 시작했다.

그 비디오 테잎 역시 엄마 동료였다는 그 사람들에게 매주 빌려 왔다.


내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자, 아버지는 들켜선 안될 것을 들킨 것 마냥 흠칫 놀라며 리모컨을 들어 황급히 버튼을 눌러 화면을 정지시켰다.

정지된 화면 속 설교자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무언가를 외치는 모습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 저 왔어요. 아버지”

“어... 왔니? 저녁 차려 놨으니 먼저 먹거라. 난 조금 있다 나가야 해.”

“네. 근데.... 뭐 보고 계셨어요?”
“넌 알 거 없다.”
“... 혹시 그 목사 설교예요?”

아버지는 그 화면을 응시한 채로 낮게 말했다.

“너는 아직 몰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머지않아 선택받은 자만이 살아남는 날이 온다. 하늘로 올라가는 자와 이 땅에 버려지는 자. 그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치 화면 속 목사라도 된 듯 내게 말했다.

“아버지... 그걸 정말 믿는...”
“이제 믿지 않는 자와는 말 섞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잘라 말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엄마 일로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뭔가 이상해요.”

그제야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지독한 피로와 함께 설명할 수 없는 광신의 불꽃이 서려 있었다.
“넌 이해 못 한다. 네 엄마가 어디로 간 건지, 왜 이곳을 떠나야 하는지를….”

“떠난다니요? 누가요...”


아버지는 뭔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대신 리모컨을 들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 속 목소리가 안을 다시 가득 채웠다.

나는 더는 말할 수 없어 거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선명히 깨달았다.

같은 지붕 아래 있어도, 우리는 이미 완전히 다른 세계에 서 있었다.
엄마를 잃은 뒤 아버지마저 점점 멀어져 간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바닥까지 무너뜨렸다.

더는 기댈 곳이 없다는 공허함, 곁에 있으면서도 닿을 수 없는 거리감.

그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차가웠다.


아버지는 이전에도 몇 번 나를 설득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내가 단호히 거부 하자. 그 이후 아버지는 내게 점점 말수를 줄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말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듣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의 시선은 오직 한 곳만 향해 있었고, 귀는 오직 한 목소리만 따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세상에 자신이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나 역시 더 이상 아버지에게 묻지 않았다.

무엇을 보던, 무슨 책을 읽던, 누구를 만나던, 무엇을 믿던 그에 대해 묻고 따지지 않고, 아버지와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고등학교 진학을 계기로 나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더 큰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한 마지막 거리 두기였는지도 모른다.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예수님이 곧 진리입니다.”

피켓녀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들이밀고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주는 이세계(異世界)속 사람은 없었다.



난 전단지를 다시 내려다 봤다.

전단지 하단에는 교회약도와 함께 교회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장편소설 '스페셜 미드나잇'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