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쟁이 고양이
고양이를 키우는 동생과 친구들도 카루에 대해 신기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말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 게다가 소리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고양이 3마리를 키우고 있는 동생네 집에 가면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 적막하기만 하고, 보통 고양이는 조용하다고들 하는데 카루는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나에게 말을 건다. 특히 전화를 할 때는 자기한테 말을 거는 건 줄 아는지 대답을 성실히 하기도 한다.
아침에는 알람 소리보다 10분 일찍 일어나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카루는 꼭 출근 1~30분 전에 애에 앵 하면서 내 몸 위로 꾹꾹이를 하러 온다. 심지어 꾹꾹이도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르릉그르릉 소리를 내면서 꼭 얼굴을 보고 우앙 하고 말한다.
뛸 때는 깩꽁, 퇴근하고 오면 아옹, 왱 하면서 현관으로 뛰어오고 캔을 까줄 때는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그러다 심심하면 졸졸 쫓아다니기도 하고 나를 낚싯대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기도 하는데, 이때는 최대한 불쌍한 척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후웅... 으으응... 하면서 뚫어져라 나를 쳐다본다. 만약 무시하면 이족보행으로 달려들어 발이나 다리를 물어버린다. 집사들은 다 공감할 텐데 가장 웃긴 소리는 캣타워에서 뛰어내릴 때 멬! 하고 기합을 넣는 소리이다.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상관없이 소리를 내야 뛰어내리기가 편한가 보다.
이렇게 카루는 다양한 소리로 나에게 의사 표현을 하는데 그중 가장 어이없는 소리가 있다. 그건 화장실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 내는 소리다. 카루는 언제부터인가 화장실 창문에 올라가서 밖을 구경하는 것을 즐긴다. 답지 않게 사색을 즐기는 모습이 귀여워서 문을 항상 열어두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웃기게도 카루는 고양이지만 화장실 창문에서 내려오질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멍충바보고양이.
지금보다 더 작았을 때 화장실 세면대를 밟고, 수건걸이를 밟고 창문으로 올라가길래 기겁했었다. 와 역시 고양이는 못 올라가는 곳이 없구나 싶었는데 웬걸, 내려오지 못하고 와웅와웅 나를 부르는 거다. 그래 아기 고양이라 못 내려오는구나 싶어서 박스를 엘리베이터 삼아서 내려줬었다. 그때는 다 큰 성묘가 됐는데도 이럴 줄 몰랐지.
그래서 나는 화장실 문을 상시 열어두고 환기를 시키고 싶지만 덩치가 커진 지금까지도 혼자 창문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어른 고양이 덕분에 화장실 문을 항상 닫아둘 수밖에 없다. 닫힌 문 앞에 앉아서 나를 보면서 문 열어달라고 힘껏 소리 지르면 나는 문을 열어주고 카루는 올라가서 창가에 한참 앉아있다가 다시 내려달라고 또 말한다. 후웅... 우우웅...
소리가 작아서 내가 못 듣는다 싶으면 그때부터 데시벨이 커지기 시작한다. 아아앙! 그러면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냅다 박스를 들고 출동한다. 가슴께에 박스를 안고 있으면 카루는 그 안으로 쏙 점프한다. 그렇게 카루가 박스에 안전하게 착지하면 나는 박스를 바닥으로 이동한다. 이게 맞나 싶지만 어쩌겠는가, 나를 그렇게나 필요로 하신다는데.
종이 다른 동물인 나를 찾고 불러주는 고양이가 참 신기하다. 아기 고양이가 엄마를 부를 때 빼고는 고양이끼리는 소리를 내서 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카루가 소리를 내는 이유가 전부 나를 부르기 위해 스스로 개발해 낸 것으로 생각하면 나를 엄마로 생각하는 건가 싶다.
박스 엘리베이터 운행은 매일 일어나는 일이지만 운행할 때마다 매번 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느낀다. 살면서 부모님 외에 누군가에게 이렇게 신뢰받은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카루가 유일하지 않을까? 카루가 항상 어떤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창가에서 나를 부를 때만큼은 ‘언니가 나를 안전하게 해줄 거라는 거 알아. 언니를 믿고 있어’ 하는 시선을 느낀다. 그래 너를 평생 안전하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