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어로 뱀 둥지를 뜻하는 칸쿤. 마야 고대도시의 신비한 문명과 눈 부신 캐리비안 바다, 초록빛 생기가 넘치는 열대우림까지 매력으로 가득 찬 곳이다. 멕시코는 전반적으로 치안이 불안정한 편이지만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칸쿤의 호텔존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누구더냐. 쫄보와 쫄보가 만나 슈퍼 쫄보를 생산해 낸 그러니까 최강 쫄보 가족 아니더냐. 택시기사, 호텔 직원, 현지 여행사 직원까지 칸쿤의 치안에 대해 물어보니 하지 말라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한다. 우문현답.
더불어 해변을 바라보는 호텔존의 뒤쪽에 위치한 라군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당부도 들었다. 크로커다일이 우글우글해서 잡혀 먹힐 수 있단다. 방학시즌이면 미국 대학생들이 이곳으로 많이 놀러 오는데 술 먹고 라군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매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칸쿤 호텔존의 호텔들은 대부분 All-inclusive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호텔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비용이 호텔 가격에 이미 포함되어 있어 자연스레 과식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족이 묵은 Dreams Sands는 중상급 호텔인데 음식 수준이 레스토랑별로 차이가 커서 일단 한 번씩 두루 맛을 보고 괜찮은 곳만 골라서 가면 된다. 일식집 같은 경우는 한번 가고 다시는 안 간 반면 이탈리아 식당은 분위기도 괜찮고 음식도 맛있어서 자주 갔다. 잔에 먹는 와인까지도 모두 공짜이긴 하지만 팁 문화는 있어서 식사나 음료 주문 시 팁을 내야 한다고 들었는데 유심히 살펴본 결과 미국인들은 아침에 뷔페식당에서 오믈렛을 주문하면서도 팁을 주는 반면, 투숙객의 절반 정도 되는 현지인들은 저녁 코스요리를 시켜 먹고도 팁을 남기지 않고 그냥 가는 상황이니 적당한 수준에서 하면 될 거 같다. 여행하다 보면 팁이 불편할 때가 많다. 계산하기도 힘들고 팁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할 때도 있어서 우리나라처럼 가격에 서비스차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서로 편하지 않을까 싶다.
칸쿤에서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액티비티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수영장에서만 놀아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나 같은 경우는 아침에 야외데크에서 진행된 요가 프로그램이 가장 좋았다. 휴양지 리조트에서는 대부분 아침 요가가 있는데 꼭 참여하는 편이다.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요가를 하다 보면 도시에서 끌고 온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외화를 쓴 이상 최대한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이유도 크긴 크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한 번도 못 입고 쟁여둔 브라탑 스타일의 과감한 요가복을 이곳에서는 전혀 거리낌 없이 입을 수 있어서 좋다.
그곳에서나 이곳에서나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도 나온 자기주장 강한 나의 몸은 변함없지만 그런 거 따위는 아무도 개의치 않기에 나 역시 부끄러움 따위는 개나 줘버렸다.
역시 휴양지에서는 스노클링이 최고.
호텔 수영장에 입점해 있는 아쿠아월드를 통해
Punta Nizuk(푼타 니죽)이라는 곳에 다녀왔다. 참치만 한 무지갯빛 물고기부터 총천연색 열대어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필리핀에서 스노클링 하면서 물고기가 너무 없어 실망한 기억이 있는데 이곳은 산호가 많아좋은 서식환경이 조성되어있는 덕분에 하와이만큼이나 물고기들이 풍부하고 다양했다. 스노클링이 익숙지 않은 아들은 다른 외국 아이와 선상에서 놀면서 빵조각을 던지며 몰려드는 물고기들 구경에 신이 났다.
바다에서 놀면 하루가 어찌나 짧은지 모른다.
다음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현지 여행사를 통해 관광에 나섰다. 10년 전쯤 칸쿤에 배낭여행을 왔다가 눌러앉았다는 한국인 가이드와 스무 명 정도 되는 한국 관광객들과 함께 다녔는데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혼부부들이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핑크 라군이라는 곳으로 물속에 서식하는 핑크 새우들 덕분에 환상적인 핑크빛 물색을 자랑하는 곳이다. 파이팅 넘치는 신혼부부들은 인생 샷을 남기기 위해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지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다음 장소는 Ikkil Cenote(이낄 세노떼). 지하동굴처럼 생긴 깊은 싱크홀에 우물처럼 물이 가득 차 있는데 무척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영을 즐길 수 있는데 우리는 1불 주고 빌린 구명조끼를 입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반면 수영을 잘하는 서양사람들은 맨몸으로 멋지게 다이빙을 해서 들어간다. 무엇인가 잘한다는 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는 것이겠지.
마지막으로 간 곳은 마야문명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볼 수 있는 Chichen Itza(치첸이트사).
여러 건축물 중 피라미드가 가장 눈길을 끄는데 마야인이 만든 거대 달력 같은 건축물로 현대 달력보다 더 정교하다고 한다. 마야문명에서는 뱀을 신성시했는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에 피라미드 계단 양옆에 있는 뱀머리 조각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면 마치 뱀이 꿈틀꿈틀 계단을 내려오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고 한다. 그 밖에도 박수를 치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는 마야인들이 좋아했던 새소리와 음파가 거의 일치한다는데 신기할따름이다.
이밖에도 칸쿤에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휴양, 관광, 고대 문명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으니 지루할 틈이 있을 수 없다. 치안이 불안정하다고 하지만 현지 여행사를 통해 그룹으로 같이 움직이면 그런 불안감 없이 칸쿤의 매력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