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가끔 생각한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인가 하고...
걷다 보면 어떤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가도
이내 흐릿해지기 일쑤여서 이것이 과연 내 머릿속인지 멍할 때가 많다.
노적봉 등반도 마찬가지였다.
게으름에 늑장을 부려 지각한 탓에 선배들께 죄송한 마음이 더해지니 자일 무게보다 곱절은 걷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쩌랴. 걷는 수밖에...
폐쇄된 인수봉 때문에 노적봉이 오늘 손님을 많이 받는다며 30여 년 만에 이 길을 와봤다며 추억에 잠긴 어른들의 모습에서 그들만의 산사랑이 느껴졌다.
내가 그리 오래 산을 걸으려면 대체 몇 살이 되는 건가 떠올려보니 좀 더 일찍 등반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어라?...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엘리베이터만 타도 벌벌 떠는 내가 암벽 등반을 빨리 시작할 걸이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노적봉 앞에 도착했다. 꽤 긴 어프로치에 굶은 배가 스윽한다. 끼니를 거른 나를 염려한 선배님이 토스트를 건네주신다. 틈날 때 먹어두라며...'이 고마운 마음이 어찌하면 건네 질까.' 생각하며 한 입 베어 문다. 새벽부터 애써 음식을 만든 정성에 식은 빵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고맙습니다.' 행여 지난번처럼 늦게 등반 준비를 마칠까 남은 토스트를 가방에 넣고는 1 피치를 각자 오른다. 먼저 오르는 다른 등반 팀과 겹치지 않게 길을 고르다 보니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흩어져 있던 선배들이 다들 2 피치에서 한 데 모인다. 미리 와 있던 타 등반 팀의 등반 모습을 보니 어려운 길인가 보다. 앞 선 길잡이에게 어찌 올랐냐며 한 눈에 봐도 운동을 많이 한 듯한 느낌에 건장한 남자의 흔들림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버벅거리다 선배들의 조언으로 겨우 오른다. 고도감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옆으로 게걸음 치려니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질 않는다. 울렁증이 벌써 시작되는구나.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오른다.
간단한 확보를 하며 걸어가는 길에 보인 저아래 까마득한 고도감에 나홀로 덜덜 떨며 갈팡질팡 한다.
'어찌 저 분들은 무섭지도 않나?' 풍경이 좋다며 뒤돌아 보라는 나에게 내내 나는 바위만 쳐다보았다. 후들거리는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확보를 하니 아예 선등자는 옆 길로 건너가 보이 지를 않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잡고 내 차례가 되었건만 앞 길이 보이지 않으니 주저하는 두 다리. 등반이 지체되자 저 너머에서 지금 올라오는 사람이 누구냐는 세컨의 고함소리가 쩌렁 울린다. 차마 나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나 대신 선배가 내 이름을 말하자 다시 조용해지는 노적봉. 그 침묵에 많은 말들이 담겨 있음을 알겠다. 정신줄을 잡느라 더욱 몸과 마음이 헤맨다.
다시 숨을 고르고 멀리 올려다 볼 뿐 뒤돌아보지 못한다. 자일이 나를 이끌어주고 있거늘 무엇이 그토록 두려워 이 길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돌아보지를 못하는 건지... 믿음이 부족한 자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어떻게 오르고 있는지 대체 여기가 어디쯤 인지도 모른 채 가기만도 벅찬 이 덜된 초짜여...
아무것도 아닌 듯이 무심히 오르면 좋으련만 온통 두려움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더딘 흐름에 내내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그것도 모자라 최선을 다하지 않고 등반하는 나를 보려니 이 날 등반은 제대로 꽝이었다.
아래를 볼 수 없다면 우선 먼 곳부터 쳐다보라던 선배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멀리 산을 쳐다본다. 조금씩 여유로워지는 호흡을 보니 이런 느낌으로 등반을 하면 참 좋겠구나 생각해본다. 내겐 너무 어려운 길이겠지 싶어 조바심이 인다.
어느새 저만치 멀어진 선등자가 까마득해 보인다.
저 위의 그들은 내게 말한다.
"괜찮다고, 그 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차차 익숙해진다고..."
내 마음을 읽는 듯 헤매는 나를 위해 줄을 당긴다.
여전히 나약하지만 마음마저 무너지지는 말아야겠다.
그저 내가 만든 두려움 따위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나를 위해 이어준 저 자일을 보자.
그 끈을 믿고 오르는 거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