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체게바라길
후회한다.
그때 분명 잠시 망설였었는데...
역시나 이렇게 곱씹어 후회하리라는 것을 내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후회하고 있다.
앞서 선배들이 깔아준 자일이 내 몸에 연결되어 있는걸 알면서도 나의 움직임은 자유롭지 못했다.
핑계처럼 발을 죄여오는 유난히 작은 암벽화로 인해 쥐가 났으며 내 위로 펼쳐진 그 붉은 벽은 바라볼수록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그랬다.
나는 처음부터 내 스스로 뭔가 이 길을 오르리라는 생각은 접고 시작했다.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어려운 구간을 만나거나 발디딤이 유독 겁나는 곳에서 나는 내 손과 발을 그보다 더 큰 마음으로 딛고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고 선배님들이 설치해둔 온갖 퀵이며 슬링을 모두 부여잡고 그 구간을 통과해버렸다.
이전의 나는 장비를 이용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 어떡하든 내 힘으로 올라보려고 발버둥을 쳤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빨리 끝내자는 생각에 휩싸여 내 마음에 핑계거리를 찾아 서둘러 확보를 마치곤 했다.
아주 잠깐 갈등을 했었으나 이전과는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나는 체 게바라가 걸었던 혁명의 길이 아닌 나를 속이는 반칙을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이 길이 이렇게 후회로 남을줄 퀵을 잡으려 손을 뻗었던 그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번을 걸어도 제대로 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나는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이리라.
다시 또 그 길을 찾을 때는 내게 비겁하지 않기를 이렇게나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