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아라풀 Aug 22. 2023

다정을 다해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다

이 등반 후기는 은유 작가가 어떤 책에서 쓴 다정을 다해 이렇게 말했다를 인용해 제목을 썼다.

다정한 말로 그랬어야 했는데 말하지 못한 어리석은 나의 후회를 담은 글이다.


처음이다.

한여름 폭포 등반이라는 것도 산악회에 들어와 누군가와 언성을 높인 것도.

지나고나니 그럴 수도 있는 거였고 돌이켜보니 이건 그동안 나의 행동에 대한 당연한 결과겠구나 생각이 드는 중이다.

그런데도 뭔가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짜증이 올라온다.

한. 심. 하. 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산에 들어 계곡 대여섯군데를 지나고 나니 수락폭포에 이르렀다.

골 안에 흐르는 물줄기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보고 먼저 놀랐다.

나는 처음인 이곳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들 알고 찾아오는건가?

폭포 앞에서 연신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오늘 등반은 관람용이구나 싶어졌다.

남자 셋은 줄을 걸러 폭포 상단으로 올라가고 남은 우리들은 평평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여기 저기 사람들의 까르르 거리는 웃음 소리와 맛난 음식 냄새가 올라와 허기와 미소가 동시에 온몸에 스몄다.


장비를 착용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폭포 상단에 도착한 일행의 무전이 들렸다.

처음으로 해보는 무전기가 꼭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점심은 위에서 먹을테니 먹을꺼리 챙겨서 오라는 무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받은 무전을 아무 생각없이 말을 건넨 나.

"자리 좋은데 올라가지말고 여기가 먹자. 오바"

애초에 밥은 위에서 먹자고 찬진 형님이 일러두고 폭포 상단으로 올라갔기에 그날 등반 대장의 말을 따랐어야 했다.

다시 한번 들려오는 무전.

"등반하고 일행 다 올라오면 위에서 먹자"

폭포 아래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불을 쓰기가 조심스럽고 우리들끼리 한가롭게 먹으려는 그날 폭포 등반 계획을 내가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니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뜻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계속 무전을 이어갔다.

'여기 자리도 좋다며 아니면 따로 먹자고'

걸러짐없이 내뱉은 말에 마침내 터진 태옥씨의 진지한 목소리의 응답 무전.

그때서야 장난스런 말들을 멈추고 알았다며 '네'라고 무전을 쳤다.

밥인데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것 아닌가 하는 내 멋대로의 생각이 가감없이 바로 무전으로 전달되었다.

그렇게 편한 사람들끼리 주고 받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매번 초보같은 나를 끌어 주려면 얼마나 여러번 폭포를 오르 내려야 하는지 나는 그들의 수고를 놓치고 있었다.

매 등반때마다 무거운 자일과 여러 장비들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얼치기 등반가를 살펴야 하는 그 수고로움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려진다.

뒷풀이 자리에서 이 일을 화두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간 나의 행동들을 이렇게 오래 뒤돌아 볼 일은 묘연했으리라.

등반이 가지는 진중함을 아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며 태옥씨가 내게 말했다.

"그날 등반 계획을 멋대로 바꿀거면 너가 미리 이야기를 하고 계획을 짜라"


아...

생각지도 못했다.

이날 등반 시스템을 내가 흔든거구나.

나는 장난이었고 그들은 진심이었던 거다.

우리끼리인데 편하게 하자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

다른 선배였다면 그럴 수 있겠냐는 찬진 형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욱하며 가슴에 덩어리가 올라왔다.

"나는 다른 선배여도 할말은 한다고. 근데 쥐뿔 실력도 없는 나도 선배이긴 하다"라고 받아쳤다.

이 무슨 가당찮은 소리인가?

내가 언제 다른 선배들처럼 찐 선배였던 적이 있는가?

자일을 매고 오길 하나 등반 시스템도 제대로 몰라서 매번 쩔쩔 해매고 겁은 또 지상 최고 수준 아니던가.

도움을 주기는 커녕 받기만 하고 지냈으면서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날 등반을 준비한 등반 대장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느꼈을 건데도 나는 이렇게 나의 못남만 드러냈다.

나는 형님을 무시할 의사가 없었다, 죄송하다 이 한마디를 해야 하는건데...

후회는 언제나 한 발 늦는 법.


그럼에도 한편으론 설명할 수 없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같이 한 시간과 추억이 얼만데 서운함을 내게 먼저 이야기했으면 좀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이 와중에 내가 존중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으니 참 이기적인 사람이 나구나.

거기에 따로 먹자고 말한 건 좀 아니었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자고로 입은 늘 무거워야 하거늘 이 놈의 주둥이가 함부로 질렀으니 이건 당연한건가?


정신을 차리리고 보니 나는 여전히 그날 그 뒷풀이 자리에 머물러 있다.

아닌척 하려고 하지만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형님께 죄송하다고 사과는 했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다고 해야하는 건 아니었을까?

기분 좋게 등반을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며칠이 지나고나니 이제서야 그들이 보인다.

그래서 이 불편함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내게서 비롯됨을 알기에 결국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그동안 나는 산악회의 일원으로서 나만 보며 등반을 해왔구나.

등반을 향한 열의는 부족하고 남의 도움없이는 한 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늘 남이 끌어주는 길만 걸어온 지금.

이런 내가 등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산에서 나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다면 여기서 그만 멈춰야 하는건 아닐까?

그동안 못한 일들만 자꾸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먼저 올라 이끌어주려는 끈질긴 노력과 담력,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는 행동.

이 하나 하나가 나에게 남은 과제다.

이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렸다.


나는 어떤 길을 가려하는가?

함께 걷는 동안 그들이 내게 해주었던 수많은 배려는

실은 그들이 가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나간 자의 '용기'였음을 깨닫는다.

내게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나는 그 혹은 그녀에게 기대고 있었다.


주춤거리는 내 마음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답을 모르겠다.

미치도록 등반에 매달려볼까 싶다가도 '내가 되겠어'하며 이내 쪼그라든다.

바닥에 이르러야 끝나는 등반처럼 이런 생각들이 이제 그만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 좋겠다.


매달리거나 혹은 내려놓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을 뭘 그렇게 어렵게 붙잡고 있는지.

마음은 이토록 양날의 칼이구나.

자꾸만 소용돌이 속에 헛도는 나.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만 보며 등반했던 자의 찌질한 생각이여.

이제 그만 꺼져라.

숲길을 따라 오르면 짠하고 나타나는 수락폭포


작가의 이전글 한여름 이깟 땡볕쯤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