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연말은 이사맞이로 분주했다. 앞서 걱정하는 사람인 나는 한껏 예민해졌고, 한껏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나는 걱정이 되고 마음이 급한데 남편은 천하태평인 듯했기 때문이다.
나는 보기보다-어쩌면 딱 봐도-예민한 사람이다. 그리고 지극히 내향형이다. 도전이나 모험보다는 안전한 것을 추구한다. 불확실한 상황이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감정소모가 심하다. 새로운 관계나 변화보다는 익숙한 것이 더 좋다. 잡스런 걱정이 많으며 그 걱정들을 미리 당겨서 하느라 피곤하다.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그런 걱정들로 우유부단하며 실행력이 떨어진다.
30년을 훌쩍 넘게 살고 나서야 나는 나를 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나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나름의 관리를 한다. 정기적으로 나홀로 휴가를 떠난다든지, 하루 중 혼자 뭔가에 집중하면서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을 갖는다든지, 감정소모가 심한 관계를 정기적으로 슬며시 정리를 한다든지, 남편에게 일처리를 떠넘긴다든지 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참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라는 말이다. 때론 저런 것들이 장점으로 빛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분명히. 그게 도대체 언제인지 잘 모를 뿐. 누가 좀 알려주세요.
원래는 이렇게 피곤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니, 아니었다고 믿고 살아왔다. 20대에는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이 버킷리스트에 들어있기도 했고, 롤러코스터를 좋아했다. 새로운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노는 것도 재미있던 때가 있었다. 계획이나 준비 없이 떠난 여행도 즐거웠다. 공포영화는 극혐했지만 액션, 스릴러나 수사물은 좋아했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은 절대 안하고 싶다. 사실 비행기 타는 것도 너무 무섭다. 롤러코스터도 몇 년 전에 에버랜드에서 타 본 걸로 만족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것은 피곤하다. 계획과 준비 없는 여행이나 나들이는 질색이다. 영화는 정서상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로맨스나 코미디만 본다.
한때는 이렇게 변한 내 자신이 이상했다. ‘내가 왜 이렇지?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하는 질문에 휩싸여 헤어 나오지 못 했다. 그저 이상하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사춘기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방황이 뒤늦게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어땠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학교 선배에게 일부러 찾아가 예전에 난 어땠는지 묻기도 했다.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그냥 지금 니 같았다’는 말이었다. 별반 달라진 것을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그래, 나만 아는 변화였구나 싶었다. 결국 내가 알아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방황의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어느 날 한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답을 얻었다.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진짜 나일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20대의 나는 그때의 그 모습이 나였을 것이라는 거다. 변할 수도 있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아무런 경험이 없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지 않았다. 나는 변할 수 있다. 고로 지금의 나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일러주셨다. 이상하게만 느껴졌던 내가 안도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대체 왜 이렇지?'하면서 우울해 했던 시간들이 사그라들고 위로가 되었다. 그후 최대한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중이다. 최대한 내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은 것 같다. 지금이 좋다. 진짜 내 생각이 생긴 것 같고, 내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진짜 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데에 8할은 남편덕분이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오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