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임 Jun 03. 2021

17. 나에게 나이키란

처음 뵙겠습니다. Swoosh

반갑다 Swoosh


    남편이 쉬었던 날, 같이 아웃렛에 갔다. 나의 바람막이를 하나 사려고 말이다.      



  나는 쇼핑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다. 옷은 대체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저렴한 것을 사 입는다. 저렴한 것을 사면 한 철밖에 못 입으니 제대로 돈 주고 사서 오래 두고 입으라지만 어쨌든 나는 저렴하게 산 옷도 몇 년씩 입으니 본전은 충분히 뽑고 있다. 먹는 돈, 노는 돈은 대체로 그냥 쓰지만 입고 걸치는 데에는 아주 재고 따지는 편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환경에 관심을 가진 후 물건-특히 옷을 사는 것에 더 인색해졌다.      



  작년부터 아이들이랑 산이며 계곡에 자주 다니고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운동복을 몇 가지 샀다. 일단 레깅스를 계절에 맞춰 몇 개 샀다. 몇 개씩이나!! 등산 갈 때 겉에 입을 점퍼도 두께를 달리해 두 개 샀다. 새 점퍼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중고 마켓에서 새 것 같은 중고를 아주 저렴하게 구입했다. 저렴한 가격만큼 아주 만족하면서 입고 있다. 바람막이가 필요한 계절이 왔다. 바람막이만 하나 있으면 나의 운동복 컬렉션이 완성될 것 같았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또다시 중고 마켓을 뒤지며 몇 가지를 찜해놓고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남편이,     


  “내가 나이키에서 새 거 하나 사줄게. 마음에 드는 것 있음 골라봐.”     


굳이 새 것을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다 얼마 전 친구가 아웃렛에서 바람막이를 샀다는 얘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 나도 한 번 가보자. 아웃렛!”   


  

  말이 아웃렛이지 사실 내 기준에서는 싸지도 않다. 주말이면 주차장이 미어터지고 사람이 바글거린다는 아웃렛이 가까운 곳에 두 군데나 있지만 결혼 전 남편에게 코트를 사주려고 갔을 때 말고는 가서 뭐 사 본 적이 없다. 그런 아웃렛을 직접 찾아서 갔다. 바람막이 사려고. 애들 것도 남편 것도 아니고 내 바람막이를 사려고. 남편과 나이키 매장을 찾아 들어가 판매하고 있는 바람막이들을 구경하고 입어봤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 내가 선택을 하자 남편은 시원하게 결제해 주었다. 만 원 더 할인을 받아 119,000원에 샀다. 새 옷을 샀으니 당연히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았지만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는 이러했다. 

     

  ‘세상에! 이 얇부리한 점퍼 하나가 12만 원 돈이라니!!’      


마음의 소리는 마음속에 남겨두고 바람막이를 결제해준 남편에게 새 바람막이 사서 너무 좋다는 말을 집에 오는 내내 들려주었다.      



  “근데 나 나이키에서 내 거 뭐 사는 거 처음이야.”

  “뭐어? 진짜가?”    

 

  내 말에 남편은 화들짝 놀랬다. 사실 그러하다. 나이키에서 나를 위한 뭔가를 사 본 것은 처음이다. 남편은 이미 나이키 바람막이를 가지고 있었고, 아이를 위한 운동화도 사봤다. 그런데 나를 위해 나이키에서 뭔가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와, 나이키도 진짜 힘들겠다. 니한테 물건 팔아먹는데 40년이나 걸리다니.”

  “맞제? 좀 더 분발해야 겠제?”  

   


  나이키 이거 뭐라고 평생 안 사 입어도 그만이다. 바람막이를 나이키에서만 파는 것도 아니고 독보적으로 디자인과 성능이 우수한 바람막이를 파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에게 나이키는 내가 지금껏 옷 사는데 가져온 나름의 기준에서 볼 때 굉장히 비싼 물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옷을 굳이 살 필요는 없었다. 남편은 내 말을 듣더니 나에게 좀 미안해진다고 했다. 돈 십만 원 이거 뭐라고. 돈 십만 원이 없어서 나이키 옷을 못 산 게 아니다. 돈 십만 원 아끼려고 중고 마켓을 뒤진 것도 아니다. 돈 쓰기 좋아하던 남편도 아이를 낳고 가장이 되고 보니 본인 것은 오만 원짜리 운동화도 비싸다며 고개를 돌린다. 계절마다 단벌 신사 신세를 못 면하고 있으면서 옷 사줄까 하고 물으면 늘 입을 일이 없다며 “됐다.”라고 말한다. 아이들 것도, 내 것도 예쁘다 하면 사라고 쉽게 말하면서 본인에게 점점 더 인색해지고 있다. 그렇게 그는 점점 남편이,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이키 매장을 둘러보면서 남자 옷도 같이 구경했다. 남편이 가지고 있던 바람막이는 작년에 아이들과 등산 갔을 때 하산 길에 쉬면서 흘리고 와버렸다. 남편의 나이키 바람막이는 그렇게 산에 묻어두고 왔다. 지난가을 중고 마켓에서 괜찮은 바람막이를 하나 장만하기는 했다. 그래도 총각시절 걸치고 다니던 그 바람막이가 참 예뻤다. 몸이 지금보다 훨씬 홀쭉한 탓이겠지만 그래도 그 바람막이가 참 예뻤는데 싶다. 그래서 남편 생일에 바람막이를 하나 사주려고 한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가지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물건이 있지 않은가. 남편은 바람막이 있는데 왜 샀냐며 정나미 떨어지는 리액션을 보이겠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걸 입는다고 총각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기분만은 잠시나마 시원시원하게 돈 쓰고 다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여름 지나 가을에는 남편과 둘이 예쁜 바람막이 입고 산에 가면 차암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16. 나의 오지랖에서 시작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