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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Jun 03. 2021

17. 나에게 나이키란

처음 뵙겠습니다. Swoosh

반갑다 Swoosh


    남편이 쉬었던 날, 같이 아웃렛에 갔다. 나의 바람막이를 하나 사려고 말이다.      



  나는 쇼핑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다. 옷은 대체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저렴한 것을 사 입는다. 저렴한 것을 사면 한 철밖에 못 입으니 제대로 돈 주고 사서 오래 두고 입으라지만 어쨌든 나는 저렴하게 산 옷도 몇 년씩 입으니 본전은 충분히 뽑고 있다. 먹는 돈, 노는 돈은 대체로 그냥 쓰지만 입고 걸치는 데에는 아주 재고 따지는 편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환경에 관심을 가진 후 물건-특히 옷을 사는 것에 더 인색해졌다.      



  작년부터 아이들이랑 산이며 계곡에 자주 다니고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운동복을 몇 가지 샀다. 일단 레깅스를 계절에 맞춰 몇 개 샀다. 몇 개씩이나!! 등산 갈 때 겉에 입을 점퍼도 두께를 달리해 두 개 샀다. 새 점퍼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중고 마켓에서 새 것 같은 중고를 아주 저렴하게 구입했다. 저렴한 가격만큼 아주 만족하면서 입고 있다. 바람막이가 필요한 계절이 왔다. 바람막이만 하나 있으면 나의 운동복 컬렉션이 완성될 것 같았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또다시 중고 마켓을 뒤지며 몇 가지를 찜해놓고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남편이,     


  “내가 나이키에서 새 거 하나 사줄게. 마음에 드는 것 있음 골라봐.”     


굳이 새 것을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다 얼마 전 친구가 아웃렛에서 바람막이를 샀다는 얘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 나도 한 번 가보자. 아웃렛!”   


  

  말이 아웃렛이지 사실 내 기준에서는 싸지도 않다. 주말이면 주차장이 미어터지고 사람이 바글거린다는 아웃렛이 가까운 곳에 두 군데나 있지만 결혼 전 남편에게 코트를 사주려고 갔을 때 말고는 가서 뭐 사 본 적이 없다. 그런 아웃렛을 직접 찾아서 갔다. 바람막이 사려고. 애들 것도 남편 것도 아니고 내 바람막이를 사려고. 남편과 나이키 매장을 찾아 들어가 판매하고 있는 바람막이들을 구경하고 입어봤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 내가 선택을 하자 남편은 시원하게 결제해 주었다. 만 원 더 할인을 받아 119,000원에 샀다. 새 옷을 샀으니 당연히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았지만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는 이러했다. 

     

  ‘세상에! 이 얇부리한 점퍼 하나가 12만 원 돈이라니!!’      


마음의 소리는 마음속에 남겨두고 바람막이를 결제해준 남편에게 새 바람막이 사서 너무 좋다는 말을 집에 오는 내내 들려주었다.      



  “근데 나 나이키에서 내 거 뭐 사는 거 처음이야.”

  “뭐어? 진짜가?”    

 

  내 말에 남편은 화들짝 놀랬다. 사실 그러하다. 나이키에서 나를 위한 뭔가를 사 본 것은 처음이다. 남편은 이미 나이키 바람막이를 가지고 있었고, 아이를 위한 운동화도 사봤다. 그런데 나를 위해 나이키에서 뭔가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와, 나이키도 진짜 힘들겠다. 니한테 물건 팔아먹는데 40년이나 걸리다니.”

  “맞제? 좀 더 분발해야 겠제?”  

   


  나이키 이거 뭐라고 평생 안 사 입어도 그만이다. 바람막이를 나이키에서만 파는 것도 아니고 독보적으로 디자인과 성능이 우수한 바람막이를 파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에게 나이키는 내가 지금껏 옷 사는데 가져온 나름의 기준에서 볼 때 굉장히 비싼 물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옷을 굳이 살 필요는 없었다. 남편은 내 말을 듣더니 나에게 좀 미안해진다고 했다. 돈 십만 원 이거 뭐라고. 돈 십만 원이 없어서 나이키 옷을 못 산 게 아니다. 돈 십만 원 아끼려고 중고 마켓을 뒤진 것도 아니다. 돈 쓰기 좋아하던 남편도 아이를 낳고 가장이 되고 보니 본인 것은 오만 원짜리 운동화도 비싸다며 고개를 돌린다. 계절마다 단벌 신사 신세를 못 면하고 있으면서 옷 사줄까 하고 물으면 늘 입을 일이 없다며 “됐다.”라고 말한다. 아이들 것도, 내 것도 예쁘다 하면 사라고 쉽게 말하면서 본인에게 점점 더 인색해지고 있다. 그렇게 그는 점점 남편이,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이키 매장을 둘러보면서 남자 옷도 같이 구경했다. 남편이 가지고 있던 바람막이는 작년에 아이들과 등산 갔을 때 하산 길에 쉬면서 흘리고 와버렸다. 남편의 나이키 바람막이는 그렇게 산에 묻어두고 왔다. 지난가을 중고 마켓에서 괜찮은 바람막이를 하나 장만하기는 했다. 그래도 총각시절 걸치고 다니던 그 바람막이가 참 예뻤다. 몸이 지금보다 훨씬 홀쭉한 탓이겠지만 그래도 그 바람막이가 참 예뻤는데 싶다. 그래서 남편 생일에 바람막이를 하나 사주려고 한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가지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물건이 있지 않은가. 남편은 바람막이 있는데 왜 샀냐며 정나미 떨어지는 리액션을 보이겠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걸 입는다고 총각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기분만은 잠시나마 시원시원하게 돈 쓰고 다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여름 지나 가을에는 남편과 둘이 예쁜 바람막이 입고 산에 가면 차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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