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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Apr 17. 2021

16. 나의 오지랖에서 시작된 이야기

등산과 아빠

바람 때문에


  벚꽃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뒤 이기대 해안공원에 유채꽃이 활짝 폈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달려가고 싶었다. 벼르고 별러 다행히 꽃이 지기 전에 다녀왔다. 작년 8월 폭염을 뚫고 걸었던, 해안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라 하기엔 좀 힘들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쪽에는 바다를 한쪽에는 산을 끼고 걸을 수 있는 그 길은 정말 축복 같은 곳이다.      



  아이들 보내 놓고 얼른 청소기 밀고 김밥 한 줄 사서 출발했다. 혼자 가면 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점심에 먹을 김밥 한 줄, 물 한 통, 간식거리 한 가지 정도면 된다. 가방이 가볍다. 발걸음도 가볍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걷기 딱 좋은 날씨라 그런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온통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이 가려져 분명하진 않았지만 차림으로 보아 대부분 자식들 다 키운 후, 은퇴 후 건강을 챙기러 길을 나선 사람들 같이 보였다.      



  한 번 가본 길이라 익숙해졌나 보다. 날씨 덕분이기도 하겠다. 지난번보다 덜 힘들고 시간도 덜 걸리는 것 같았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길을 계속 가다가 데크로 만들어져 있는 쉼터에 잠시 올라섰다.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끝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긴 숨과 감탄을 내뱉었다. 그러다 저어쪽 옆에 바위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등이 보였다. 그 등 뒤로 내던진 듯이 놓여있는 까만 가방이 하나 있었다. 짙은 남색의 지금은 좀 더워 보이는 점퍼와 까만 바지에 푹 눌러쓴 아저씨 모자. 약간은 굽은 등과 모자 아래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자주 감지 않아 기름기를 머금은 희끗한 머리카락. 골목 시장이든 버스정류장이든 낡은 동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가 더 어울리는 남자. 화려한 백화점이나 쇼핑몰, 깨끗이 정돈된 아파트 단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그런 남자.      



  한참을 쳐다보았다.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왜 울고 있지. 하필 왜 저런 데에서 울고 있지. 몇 번이나 눈가를 닦아냈다. 그냥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몇몇이 그 자리를 지나갔다. 마치 아무것도 못 본 듯이 지나갔다. 보았지만 못 본 것일 수도 있다. 가방에 있던 캔커피를 꺼냈다. 말을 걸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혼자서는 뭔가 두려웠다. 마침 내 곁으로 다가온 어느 커플에게 저분이 울고 있다, 내가 가서 말을 걸어 보려 한다, 혼자 가려니 좀 그런데 여기서 지켜봐 줄 수 있겠느냐 부탁했다. 그들은 흔쾌히 그러마 했다. 넘어가지 말라고 쳐 놓은 울타리를 넘어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

“아저씨”

“…”

더 가까이 다가섰다. 

“어르신”

그가 뒤 돌아보았다. 

“안 추우세요?”

그가 그냥 씨익 웃었다. 

“이거 하나 드세요.”

다짜고짜 캔커피를 내밀었다.

“뭘 그런 거를 다.”

“아니에요, 이거 드세요.”

“고마워요.”

“근데 왜 울고 계세요?”

“…”

“왜 울고 계세요?”

다시 눈을 닦으며 말한다.

“바람이 많이 불어 가지고…”   


  

  바람… 아… 바람…. 그래. 바람이 많이 부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 바람 때문인가 봐. 바람 때문에 흘린 눈물을 닦아냈다기엔 부어오른 두 눈두덩이가 너무 붉었다. 절벽 아래쪽에 함께 온 일행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낚시를 하는 다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뒤에 내동댕이 쳐져있는 가방 위에 놓인 기다란 낚싯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뒤돌아 다시 데크로 올라왔다. 나를 지켜보던 커플에게 울고는 있었지만 일행이 있는 것 같다며 다행이라는 말을 전했다. 고맙다는 말도 전했다. 뭐가 다행이고 뭐가 고마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했다. 돌아서는데 또다시 ‘다행이다.’라는 말과 함께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며 눈물이 울컥 솟았다. 왜? 이건 무슨 눈물이지? 왜 지금 이 상황에 눈물이 나는 거지? 이거 지금 뭐지? 산길이 아니었다면, 오로지 혼자만의 자리였다면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을 것 같았다.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우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까 눈에 고인 눈물은 닦아내고 나머지 눈물은 꾹꾹 눌러 삼켰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눈물이 다시 올라오지 못하게 만드는데 시간이 걸렸다. 겉으로는 앞서 걸었던 걸음과 다름없이 걷고 있었지만 내 속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돌아보니 저어 멀리 그 바위 위에 여전히 앉아 있는 그 남자가 보였다.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같이 보였다. 아니 처음 보았을 때부터 우리 아빠인가 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아침에 포항에 일을 간다고 했다. 운전 중인지 뭔지 시끄러워 소리가 들리지 않아 다시 통화하자며 끊었다.      



  요즘 혼자 있는 아빠를 보며 아빠의 인생을 가끔 생각해 본다. 문득 아빠에게 외롭냐 묻고 싶어 졌다. 묻고는 싶지만 어떻게 물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술김에 물어야 할지 맨 정신에 물어야 할지, 언제 물어야 할지,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같은 것들 말이다. 아빠는 뭐라고 대답하실까? 한 번도, 단 한 번도 아빠 자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저 나 혼자 궁금한 것을 떠올렸다가 내 마음대로 곱씹었다가 삼켰다가 소화는 시키지 못한 채로 그냥 두고 만다.      



  아빠는 지금 엄마가 없어서 외로울까? 아니면 그냥 혼자라서 외로울까? 자신의 삶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일까?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을까?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결국 나는 아빠의 인생에서 엄마를 걷어내지 못한 채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엄마의 남편, 오빠와 나의 아빠로서의 삶밖에 바라보지 못한다. 아빠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기엔 남편과 아빠로서의 삶이 내가 느끼기에 별로라서 그런 것일까? 아직 아빠의 삶을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삶의 끝자락에 다가서 있는 아빠의 삶을 함께 다독이고 돌아보고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이런저런 준비는 되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아빠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릿저릿하다. 혼자 높은 바위 끝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까 마음이 많이 쓰인다. 괜찮은 부모가 되어가는 일도 힘들지만 늙어가는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일도 그리 녹녹지 않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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