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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Sep 27. 2021

20. 나를 단속하는 사람들

  엄마는 딸을 단속하는 사람이었다. 밤 10시를 넘겨 귀가하는 딸에게 “늦었네, 어서 씻고 쉬어라.”라고 다정하게 말하는 대신 “이놈에 가시나가, 마”라며 입을 앙다물고 눈을 흘기는 사람이었다. 나의 야간 활동은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꽃을 활짝 피웠다. 취업과 함께 강제로 독립을 했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적응하느라 마음고생을 꽤나 했었다. 3년을 만났던 남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정확하게는 차이고, 살이 쏘옥 빠져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스키니진에 내 몸을 끼워 넣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내 나이 25살, 인생 최저 몸무게도 찍었고 스키니진도 입을 수 있게 됐는데 집구석에서 청승만 떨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살았던 집은 울산대학교 언저리에 있었다. 집 근처에서 할 수 있는 게 뭐 없나 싶어 다음 카페를 뒤졌다. 라틴댄스 동호회를 발견했다. 댄스. 댄스라. 춤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뭔가에 이끌린 듯 회원가입을 하고 다가오는 오프라인 정모에 찾아갔다. 와! 이렇게 신나는 세상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퇴근하고 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말을 나눌 사람이 없어 무성영화만 찍어대던 그때에 동호회는 내 생활을 유성영화로 바꿔주었다. 음악이 있었고 대화가 있었다. 살사를 원스텝 투 스텝 배우고, 한참동안 음악에 몸을 맡기고 나면 회사에서도 흘리지 않는, 뭔가 열심히 살아낸 자의 땀 같은 것이 흘렀다. 자연스레 삼삼오오 모여 살사바 앞에 있는 맥줏집이나 막걸릿집으로 향했다. 10시면 언제 들어올 거냐 전화하는 엄마도 없고 날밤을 새고 들어가도 눈 흘기는 사람이 없으니 자유를 만끽하며 언제나 제일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울산대 앞 바보사거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청소차 아저씨의 등장을 보고 나서야 나의 야간 활동이 마무리되는 날이 많았다. 처음 살사바에 갈 때 입었던 스키니진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3년의 독립생활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나는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엄마의 단속은 끝나지 않았다. 춤도 더 이상 추러 다니지 않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삼시 세끼 야무지게 챙겨 먹고 밤 10시면 잠이 드는 착한 어른이가 되었다. 한 달 사이에 4킬로가 빠졌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삼시 세끼 엄마 밥으로 야무지게 챙겨 먹는 것을 권한다. 어쨌든 나의 화려했던 야간 활동은 다시 엄마와 함께 사는 순간 막을 내렸고, 가끔 낼모레 서른인데 언제까지 그럴 거냐 엄마에게 투정 부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엄마가 병을 얻고, 세상을 떠난 뒤로는 나를 단속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아빠는 평생을 해보지 않은 것이라, 이미 내 나이 서른을 넘긴 때라 어쩌다가 한 번씩 ‘너무 늦지 마라’라는 문자를 남기곤 했고, 나는 ‘네’하고 힘없는 짧은 대답을 보내거나 대꾸를 하지 않거나 했다. 나이 때문인지 아빠라서 그런지 분간이 안 되었지만 이제는 누군가 내 삶을 단속하려 해도 더 이상 눈치 같은 것 보지 않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그 생각을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때가 왔다. 7살인 큰 아이가 엄마 혼자 하는 밤 외출을 굉장히 싫어한다. 남편이 퇴근한 후 나갔다가 아이들이 잠들 무렵이면 돌아오는 짧은 시간이라 과거의 그 ‘야간 활동’과는 뭔가 이질감이 느껴져 ‘밤 외출’이라 불러본다. 어릴 때는 저녁에 서너 시간 정도는 곧잘 떨어져 있었는데 되레 크고 나니 더 힘들어한다. 얼마 전 엄마가 밤에 외출하는 게 뭐가 그렇게 싫은지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 엄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겁이 나느냐 물었다. 아니란다. 돌아올 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냥 엄마가 없는 그 시간이 슬프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가 약속을 안 지켜서 싫다고 했다. 

  최근에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으로 밤 외출을 몇 번 했다. 집을 나서면서 아직 시계를 정확히 볼 줄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돌아올 타이밍을 ‘자기 전에 아빠랑 책 읽을 때쯤’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몇 번이나 책을 다 읽었는데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필 남편은 ‘어쩌다 보니’ 내가 없는 날 일과를 일찍이 마무리하고 책도 다 읽어줘 버린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약속한 때에 돌아오지 않았음에 마음이 상해버렸고 엄마에 대한 신뢰도 잃고 말았다. 나는 우리 사이의 신뢰를 회복해야만 했다. 추석 연휴에 멀리서 오는 친한 친구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의 밤 외출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너에게 허락을 구할 일이 아니다. 다만 너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엄마가 미리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약속한 시간에 집에 돌아오겠다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친구와의 만남이 있던 날, 종이에 9시 30분인 시계를 그렸다. 이 시간에 반드시 집에 오겠다 약속을 하고 아빠 품에 안겨 우는 아이를 두고 집을 나섰다. 나는 친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남긴 채 9시 27분에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는 엄마가 약속을 지킨 것에 한결 마음이 놓이는 듯 보였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집 근처 서점에서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그날 글쓰기 모임을 갈 것이라 예고했고 그날이 되었다. 아이는 싫은 마음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스스로 마음을 달래려 애쓰는 것이 보였다. 내가 “다 같이 엄마 서점까지 데려다 줄래?”하고 물었고 이른 저녁 산책이 시작되었다. 느릿느릿 걸어서 서점에 도착했다. 2시간의 짧은 이별에 걸맞지 않은 거창한 이별식을 거행하고 나는 서점 안으로, 아이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모임을 마치고 9시 30분까지 집에 도착하겠노라 정한 약속을 칼같이 지키기 위해 파워워킹으로 내달렸다. 


  집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5분 일찍이었다. 휴. 아이도 나도 안도하는 표정으로 서로 안아주며 웃었다. 씻고 나오니 옆에 붙어 앉아 오늘은 엄마 기다리는 일이 그전보다 덜 힘들었다 얘기한다. 집에 와서 아빠하고 송편도 만들고, 엄마 줄 편지도 쓰고, 학습지도 풀고 나서 엄마 언제 오지 하고 있는데 엄마가 왔다고 한다. 아이는 내가 이딴 일로 언제 슬퍼했냐는 듯이 약간은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특하다. 엄마가 내게 했던 단속은 그저 다 큰 딸을 믿지 못해 옭아매는 답답한 올가미 같은 거였다. 그런데 아이의 단속 끝에는 기특하다 말한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을 참고 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아이가 대견하다 여겨진다. 그 마음도 잠시, 커도 계속 그럴 거라는 육아 선배님인 서점 사장님의 말이 귀에 자꾸 맴돈다. 엄마가 어딜 나가든 말든 관심을 두지 않는 때가 온다면 약간은 서운할 것 같다. 정신없이 야간 활동에 빠져있었던 때에도 가끔은 그 올가미 같던 엄마의 단속이 그리워 밤 10시면 슬그머니 핸드폰을 켜서 만지작거리던 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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