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록키는 누구인가요?
이 책은 692쪽에 달하지만, 행간이 넉넉해서 부담 없이 읽힌다. 저자는 컴퓨터공학과 출신 프로그래머였다가 전업 작가가 되었다. 목차는 서른 개의 짧은 장으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의 낯선 표기는 무엇일까?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 어디 한 장만 읽어볼까.
한 남자가 눈을 뜬다.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주변에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AI 로봇과 두 구의 시신뿐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몰라도 8의 세제곱근은 재깍 대답해 내고, 실험관을 떨어뜨리고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서 얻은 결과로 중력을 알아낸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지구가 아닌 곳에 있음을 알아낸다. 단 한 장이었지만,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각 장이 인상적으로 마무리되어 다음 장으로 계속 넘어가게 하는 구성이 몰입도를 높인다.
주인공 ‘그레이스’는 물리학과 우주 관련 지식을 섭렵한 연구자이자 중등 과학 선생님이다. 이야기 전체는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 몰입할 수 있다. 과학 지식은 주인공이 쉽게 설명해 주어 흐름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다. 그는 어쩌다보니 지구의 운명을 구해야 하는 영웅의 임무를 맡게 되었지만, 소심한 면모도 지닌 평범하고 선량한 인물이라 친근하게 다가온다.
“집에서 12광년 떨어진 우주선 안에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건 완전히 정상적인 일이야.” (255쪽) 게다가 그는 긍정적이고 열려 있으며 솔직함과 유머가 있다. 집에서 낯선 이가 문을 두드려도 두려움을 느낄 텐데, 혼자 있는 우주선에 무려 외계 생명체가 문을 두드리는데도 두려움보다는 '정상적인 일'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18인치 오각형 등딱지에 엉덩이가 큰 거미 같은 생김새의 외계 생명체 '록키' 역시 열린 태도로 주인공과 합을 맞추어간다. 둘은 생김새, 생존에 필요한 온도와 기압, 감각, 언어까지 다른 점이 많은데도, 서로에게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한다. 서로를 향한 배려와 존중은 지구를 넘어 우주에서도 통한다.
이토록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은 어쩐지 익숙하다. 록키가 우주선 안을 함께 둥둥 떠다니며 그레이스의 실험실을 둘러보는 장면은 영락없이 친구 집에 놀러 온 친구의 모습이다. 너무 많은 쓰레기를 자신의 공간에 두는 사소한 부분까지 귀엽게 느껴진다. 서로를 ‘무서운 우주 괴물’과 ‘물이 새는 우주 슬라임’으로 부르며 농담을 주고받는 친구이자 한 우주선의 동거인, 그리고 서로의 절박한 임무를 해내야 하는 동료로 거듭나는 과정은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이것은 단순한 SF 우주 활극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의 진솔한 관계 맺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레이스와 록키를 보니, 오래된 친구 ‘당최’가 떠오른다. 그와는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직장 생활에서 만나 지금까지 15년이 흘렀다. 삼청동 한복판에서 말실수 하나로 배꼽을 잡고 웃었고, 술을 진탕 마신 밤에는 내밀한 진심을 털어놓았다. 너무 가까워져 하마터면 멀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 우리를 다시 이어준 건 ‘유머’였다. 우리는 작정하고 웃기려 하지 않는다. 그냥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음이 터지곤 한다. 이것은 함께한 시간, 쌓아온 신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얼마나 자주 보느냐’보다 중요한 건 ‘언제든 우리 둘만의 유행어로 웃을 수 있다’라는 사실이다.
목차의 마지막 표기가 암시했던 것처럼, 이 소설은 마지막 장까지 긴장과 감동을 놓치지 않는다. 결말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다른 독자들은 이 소설의 어느 순간에 몰입했을지, 어떤 감정에 젖었을지 궁금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이 책을 빌미 삼아 당신과 웃으며 대화하고 싶다. 진심이든 농담이든.
*챗GPT는 절대 대답 못 할 책 퀴즈: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으며 당신이 떠올린 '록키'와 닮은 사람은 누구였고, 왜 그렇게 느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