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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Jan 06. 2022

음알못 엄마의 예중입시 후기

음악하는 아이 뒷바라지하는 부모님들과의 공유를 위해

(출처: 아트인사이트)


저희 아이는 금관(트럼펫)을 합니다. 

돌아보니, 시작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오케스트라가 있는 사립초에 보내기로 했던 그 때네요. 악기 하나는 제대로 연주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여럿이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할 때 그 안의 구성원이 되어보는 경험은 해봤으면 하는 바람. 이 두 가지 바람을 담아내는 틀이 오케스트라라면 더 없이 좋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는 2:1도 안 되는 경쟁률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엄마가 똥손입니다). 대기 6번이니 그닥 희망도 없어서 집앞 공립학교에 열심히 적응시켰습니다. 1학년을 마칠 무렵, 사립초에서 전화가 오네요. "자리가 났는데 아이 보내시겠습니까? 내일까지 결정하셔야 해요." 겨우 하루의 시간. 저는 반대했습니다. 겨우 초딩생활에 적응한 아이를 다시 새로운 환경에 밀어넣는 게 너무 가혹해서요. 그치만 남편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저는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갑입니다 ㅠㅠ). 


운명이었을까요. 3학년 담임쌤이 오케스트라 담당쌤이었습다. 그런데 저희 아이는 피아노를 좀 치긴 하지만, 이미 피아노 담당을 하고 있는 5, 6학년 형아 누나들을 물리칠만큼 대단한 실력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학부모 상담날 저는 물었죠. "아이를 오케스트라에 넣고 싶은데, 혹시 비는 악기 있나요?" 

쌤은 반가운 얼굴로 "트럼펫이 비었어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살면서 트럼펫은 직접 본 적도 없는 악기인데 저는 덜컥 "그럼 트럼펫 시킬께요"라고 말을 해버렸습니다. "트럼펫 담당 선생님한테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그룹레슨 받으면 오케스트라 따라올 수 있을 꺼에요"란 말에 쉽게 생각한 것이죠. 트럼펫 쌤과의 상담 후 저희 아이는 개인레슨을 시작했습니다. 


첫 레슨. "소리 내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꺼에요"란 경고가 무색하게도, 아이가 입을 대자마자 트럼펫에서 소리가 납니다. '트럼펫 신동을 발견한 것인가' 싶어 제 맘은 깨발랄해졌습니다. 한달, 두달, 세달... 그리고 1년, 2년이 흐르면서 제 맘은 겸손해졌죠. 그나마 과거에 바이올린 배울 때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던 거에 비하면 트럼펫으로 오케스트라 합주라도 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애가 소질이 보이면 전공을 할 생각도 있다"고 쌤에게 한두 번 꽤 강하게 어필을 해두긴 했었습니다.

5학년쯤 되면 콩쿨 한 번 나가려던 계획이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되었습니다. 콩쿨이 전면 중단되고 학교 오케스트라도 멈췄습니다. 함께 트럼펫을 하는 오케스트라 동급생은 이때 레슨도 멈췄다는데 저희 아이는 지속했습니다. 트럼펫 레슨이 유일한 사교육이라서 코로나 시국에 아이가 유일하게 만나는 외부인이 트럼펫 쌤이었거든요. 


6학년 봄, 선생님이 "콩쿨 한 번 나가자" 제안하십니다. 일주일에 1회 레슨 체제는 유지하면서 음악교육신문사 콩쿨을 준비했습니다. 2-3달가량 준비했던 것 같네요. 코로나 때문인지 초등학생은 저희 아이가 유일한 참가자였습니다. 여기서 2등을 한 뒤 아이는 매우 고무됐습니다. '내가 트럼페터가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듯 싶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심사위원들의 평가도 꽤 좋았습니다 (소리가 좋아서 전공생인 줄 알았다, 잘 갈고 닦으면 좋은 트럼페터가 되겠다 등). 며칠 후 아이의 쌤이 이야기합니다. "이번에 콩쿨 준비하면서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연주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하고. 전공에 대해 생각 한 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쩜 오래 기다렸던 이 말. 저와 남편은 '못 먹어도 고.' 근데 아이가 진짜 원할까 고민됐습니다. 밑밥을 한참 깔고 "너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줬습니다. 아이가 해보겠다고 하네요. 그리고 바로 다음 주, 쌤은 '큰쌤'이 될 분과 약속을 잡았습니다. 중학교 입시로부터 3개월을 앞둔 시점, 아이는 큰쌤/작은쌤과 함께 전공생 체제로 본격 진입했습니다.


D-2달. 고음이 잘 나지 않아 음악교육신문사 콩쿨에서 했던 조금 수준 낮은 곡으로 입시곡을 바꾸자고 큰쌤이 제안합니다. 도통 자존심이란 게 있는가 싶은 의구심이 때때로 드는 이 아이가 일주일 후 레슨에 가서 "그냥 원래 하려던 곡으로 하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내심 기쁘면서도 걱정되었죠. 입시 1.5달 정도를 앞두고 집에 방음부스가 설치돼서 밤 늦은 시간에도 스스로 들어가 연습을 하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연습시간이 길어져서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두통을 호소하는 날들이 잦아졌고, 고음은 도통 시원스레 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도 부모도 연주 컨디션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감정이 널을 뛰었습니다. 그 와중에 '힘이 좋아야 한다'고 보통 먹는 것보다 1.5배씩 먹이려는 남편과 식탁 위에서 실랑이도 참 많이 했습니다. 


번갯불에 콩 궈먹듯 하는 입시인지라, 필기시험은 별도로 준비할 여력도 되지 않았습니다. 미술로 예원에 다니는 친척아이에게 소개받은 필기학원이 있었지만 집에서 너무 멀어서 갈 엄두를 내지 못했죠. 다행히 온라인수업을 하는 데가 있어서 모의고사를 시켜봤는데... 밤 11시에 아이들 잡아두고 하는 모의고사 풀이가 너무 수준이 낮았습니다. 저는 모의고사 문제 세트를 15개쯤 사서 풀리고 집에서 하던 학습지 학기별 요약 자료를 읽게 했습니다. 입시를 보고 온 뒤 아이가 '이게 맞아?'하고 생각나는 문제 몇개를 말해줬지만 전체 문제를 기억하고 있지는 못해서 저희 아이가 얼마나 맞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의 기출문제와 학원 모의고사를 보면 학교 공부만 평균 수준에서 따라가면 충분히 치를 수 있는 시험인 듯 합니다 (물론 아주 작은 점수차로 당락이 갈리는 악기는 필기에 더 신경을 써야 할테지만요). 필기를 준비하면서 시중에 예중입시를 위한 문제집이 나와있지 않은 것도, 그러면서도 예중생들을 겨냥한 학원이 성업 중인 것도 저는 참 의아했던 부분입니다.


원서접수를 앞두고 저희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큰쌤과 결국 접수 마지막날 오전에 상황을 보고 정하자고 했습니다. 학교마다 매일 오후 5시에 지원현황을 공유해줘서 눈치작전에 상당히 도움이 됐습니다. 마감 전날 기준 예원 4명 지원, 선화 0명 지원. 안 되더라도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 vs. 예중에 가는 게 중요하다는 마음.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다 선화에 지원했습니다. 선화는 최종 2명 지원으로 마감했습니다. 함께 본 아이가 저희 아이와 학교를 다니게 될지는... 지금은 알지 못하네요.


실기시험날 교문 앞 길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 애가 저렇게 나오면 저도 덩달아 울게 될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휴가임에도 직장에서 오는 전화를 받아내느라 부부가 스타벅스에 앉아 컴퓨터를 두들기고 있었더랬죠. 최소 2시간은 있어야 나오리라 예상했던 아이가 1시간만에 나왔습니다. "연습할 때보다 더 잘 했어요. 틀린 데도 하나도 없었구요."라고 반주쌤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반주를 맞출 때마다 긴장을 너무 해서 입이 바짝바짝 마르던 아이인데, 우황청심환 덕인지 아님 의외로 무대체질인 것인지. "후회 없이 했어"라는 아이 말에 저희 부부 모두 안도했습니다. 결과가 어찌 나오더라도 그거면 됐다...라고요. 


3년 전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서는 결코 생각치도 못했던 예중생의 길. 서너달 전 전공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 아이가 선화예중에 입학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다. 음악인의 삶이라는 게 제게는 너무도 다른 세상 이야기여서 여전히 제 손에 잘 잡히지 않네요. 저와 비슷한 분들이 계실지도 몰라, 조금은 장황한 히스토리를 합격 후기삼아 써보았습니다. 

작디 작은 결정의 집합이 오늘에 이르렀는데, 오늘 이 순간들은 5년 뒤, 10년 뒤 어떻게 나타날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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