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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 B Jan 21. 2018

#12. 더 나은 내 조국 타지키스탄을 위하여 (1)

개발도상국 이야기


매년 영국 외교부는 세계 각국에서 쉐브닝 장학생을 선발하여 영국 석사 과정의 유학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 가운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저개발국인 타지키스탄 출신의 쉐브닝 장학생이자 국제개발 커리어와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통해 타지키스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 마누체르 살로쿠디노브 (Manucher Salokhudinov)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지도설명: 내륙국가인 타지키스탄은 동쪽으로는 중국, 북쪽으로는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 서쪽으로는 우즈베키탄,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접해있습니다. (출처: ZeeMaps)



출생 배경을 소개 부탁합니다.


마누체르: 저는 1992년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Dushanbe)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타지키스탄인이셨고 어머니는 러시아의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Tatarstan) 출신 (러시아의 대표적인 이슬람 종교 지역입니다)으로 두 분은 소비에트 연방 (이하 소련) 시절에 어머니가 타지키스탄으로 이주하신 후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소련 시기에는 연방 내에서의 이동이 자유로왔기 때문에 당시 두샨베에는 러시아, 유럽,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의의 수도 카잔(Kazan)에 위치한 카잔 크렘린 (Kazan Kremlin). 이슬람교 문화의 타타르와 기독교 문화의 러시아적 양식이 융합된 역사적인 건축물로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사진출처: invest.tatarstan.ru)  



마누체르: 제 위로 5살 위의 누나와 16살 위인 형이 있고 제가 4세 때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셔서 그 후 어머니와 함께 계속 두샨베에서 살았습니다. 1991년 타지키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 된 1년 후인 1992년에 타지키스탄에 내전이 시작되었어요. 이 내전은 제가 5살이었던 1997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어렸을 적 등하교길에 거리에 탱크가 지나가고 무기를 든 군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무섭다고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전 동안 전기와 음식이 부족한 것은 물론 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 치안 시스템이 무너져서 국민들의 생활 사정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변국 중 유일한 자본주의 국가이자 다른 인근 국가들과는 달리 국경을 크게 봉쇄하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습니다.     


1992년 타지키스탄 내전이 일어나기 전 수도 두샨베에서 있었던 시위. 독립 직후 대선에서 승리한 공산당세력에 대응하여 민주화운동 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이 함께 무장반란을 일으키며 시작된 내전은 러시아, 이란, 탈레반 등이 가입되면서 장기화되어 결국 1997년에 종결되었습니다. 이 내전으로 인한 사망 및 피난 등으로 인해 당시 약 6백만이었던 타지키스탄의 총 인구가 10-20% 감소되었으며 내전의 휴우증과 갈등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gandhara)



어릴 적 교육 환경은 어땠나요?


마누체르: 저희 어머니는 당시 두샨베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계셨는데 어머니가 러시아 출신이셨기 때문에 저는 러시아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타지키스탄에 있는 유일한 두 개의 러시아 학교 중 하나로 모든 학과 과정이 러시아의 여느 학교와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고 이수 언어도 러시아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타지키스탄 학교의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주요 과목으로 가르치긴 하지만 주로 쓰는 언어는 타지크어인 반면 저는 계속 러시아어 위주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어가 타지크어보다 더 유창한 편입니다. 최근 몇 년간 타지키스탄 내에서 러시아의 영향권을 벗어나 자주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에 타지크어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원래 페르시아-아랍 문자로 표기되었던 타지크어는1928년부터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의 키릴 문자를 알파벳으로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출처: Oyatullo Mirzoev)



흥미롭네요. 러시아어 위주로 공부했던 것은 대학교에서도 계속되었나요?


마누체르: 네. 200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러시아 교육부와 타지크스탄 정부가 1996년 두샨베에 합작 설립한 러시아-타직-슬라보닉 대학교 (Russian-Tajik Slavonic University)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어요. 저희 학교는 러시아 타직 대학교(Russian-Tajik University) 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러시아 정부와의 합작 대학교는 키르기스탄 (Kyrgyz-Russian Slavic University)과 아르메니아(Russian-Armenia University)에도 있습니다. 이 대학들은 전 과목을 러시아어로 수강하고 일반 러시아 대학교와 동일하게 간주됩니다. 저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했지만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그 이유는 타지키스탄에서는 고등수학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적 기반이 마련되어있지 않고 수학관련 분야들이 아직 미성숙하여 졸업 후 직업을 찾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제나 법률 분야는 수요가 많고 인기있는 전공이기 때문에 문과보다 이과인 저는 법쪽보다는 경제쪽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만약 학문이 더 깊게 발달된 나라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면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생 시절의 마누체르



대학교 입학 절차와 그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마누체르: 현재는 타지키스탄에도 수능과 같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대학교 입학 평가 시험이 생겼지만 제가 대학에 진할 할 때만해도 각 대학교마다 입학시험과 전형이 다 달랐어요. 제가 입학한 학교는 오직 시험 성적 위주로만 학생을 뽑기 때문에 입학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저는 다행히 입학할 수 있었지만 타지키스탄은 부정부패가 심하기 때문에 학생 측에서 학교의 입학 사정관에게 뇌물을 주어야 입학할 수 있는 것이 통상적인 일입니다. 사실 타지키스탄의 여러 대학교들은 기부금이나 지원금으로 운영되어 공식적으로 무료인 곳이 많은데 실제로는 이러한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많은 학생들이 돈을 지불하고 입학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인 것은 이제 전국적으로 일괄적인 평가시험이 도입되어 이러한 부정부패가 조금이나마 감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의 대학교 입학 준비과정을 설명하자면 일단 당시 저의 집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무척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타지키스탄은 학원이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혼자 공부하여 시험을 준비하는데 저는 다행히 어릴 때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공부하는 습관이 잘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어머니가 일하셨던 병원에 도서관이 있어서 매일 그 곳에서 학교 숙제를 하곤 했는데 거기서 일하시던 사서분이 저의 공부를 잘 도와주시고 공부 의욕을 북돋아주셨습니다. 또 학교에서 만난 제 첫번째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능력(critical thinking)을 길러주시데에 초점을 맞추신 분이셨는데 어린 제가 보아도 저희 반과 다른 반 아이들의 학습 능력과 태도가 확연히 차이가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니 또한 교육열이 높은 편이셨기 때문에 저는 학교가 마치면 항상 집에서 자습을 통해 예습복습을 충실히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기간 동안 매일 공부만 했던 것은 아니고 타지키스탄의 고등학교는 2-3시가 되면 수업이 다 끝나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한 후 집에서 1-2시간 정도 집중해서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학교에서 진행되는 토론 동아리나 이벤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특히 제가 학교 회장이었기 때문에 학예회 및 공휴일과 관련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로 매우 바쁘게 지냈습니다. 타지키스탄의 고등학교는 5월 초에 졸업을 하고 6월 말에 대학교 시험이 있어서 약 2달 동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이 시기에는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입학 성적을 거두고자 노력했습니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마누체르: 대학 생활 동안 학업에 충실하기도 했지만 학업 이외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저의 능력을 향상시키는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회학 리서치를 하는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3개월 정도 일한 후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 오퍼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유럽안보협력기구 (이하 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Co-operation in Europe)에서 주최하는 올바른 민주화와 공정선거에 관한 세미나에 참여했는데 내용이 무척 유익하고 고무적이어서 저도 관련 일을 통해 청년들의 건건한 시민의식을 키우는데에 기여하고 싶다는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OSCE 소속의 Central Asia Youth Network (이하 CAYN)의 타지키스탄 지부 회장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CAYN은 중앙 아시아 국가들간의 협력과 갈등 해소 및 자유 민주주의화에 기여하고자 2004년에 중앙 아시아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OSCE가 출범한 친목 증진 세미나 프로그램으로, 매년 각국에서 우수한 학생들 총 50명이 선발되어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토론 및 숙박을 통해 우애를 다지고 이 후 동문들간의 교류 활동도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어 중앙 아시아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학창 시절 CAYN 활동을 통해 OSCE의 활동과 친숙해진 저는 여러 번의 세미나와 트레이닝을 거쳐 결국 타지키스탄의 청년들을 가르치는 전문 트레이너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OSCE 주최의 Central Asia Youth Network에 참가하여 중앙 아시아 각국의 청년들과 친목을 다진 마누체르.

       



삶에 대한 강한 도전 정신과 뜨거운 열정을 지닌 마누체르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서의 다양한 활약과 타지키스탄에 관한 더욱 더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저자 약력: 런던 소재 국제금융기구인 유럽개발부흥은행 (EBRD) 근무. 유럽,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EBRD의 27개 개발도상국 관련 업무 담당. 해외 투자 은행, 사모 펀드, 임팩트 펀드, 프랑스 OECD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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