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주름은 산맥 같았다
산맥 사이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름 내내 비가 내렸던 그 해 겨울은 혹독했다.
백일 남짓한 어린 아기를 떼놓고 뭐를 할 수도 없었지만 차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눈이 몇 번을 내리도록 골목주차 된 차를 방치했다. 그러자 급하게 나갈 일이 있어 차에 올랐을 때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았다. 와이퍼 위로 쌓인 눈이 얼어 꼼짝도 하지 않은 것이다. 차에 눈이 내리면 눈이 얼기 전에 치워야 하는 것을 배웠다. 이따금은 그 골목에 살던 누군가가, '초보운전'과 '아기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을 치워주기도 했다.
혹독한 추위에도 분명 따뜻함은 있었다.
그 겨울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수첩 속 내 전화번호 옆에는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다.
'나의 며누리'
며누리 역할이라곤 하나도 한 것 없이 그저 아버님이 주시는 술 한 잔 받은 것이 다였는데도, 아버님의 수첩 속의 나는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며느리여서 새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에게 아버님은 미스터리한 분이었다.
남편 어릴 때, 한 번은 어머니가 참다못해 자식들까지 두고 도망을 갔다. 외할머니는 어린 손주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도망갔다가 너희가 눈에 밟혀 돌아온 어미이니 무조건 잘해야 한다, 효도해라 하셨단다.
내가 본 시어머니는 웬만해선 꺾이지 않는 강인한 분인데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
그런 어머니가 도망가고 싶을 정도의 배우자였고, 아버지로서 최악은 아니지만 좀 무심했던 것 같은데도 남편은 아버님을 원망하는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진짜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아버님이랑 좋은 추억이 있긴 있었느냐고, 혹시 아버님이 어릴 때 당신이랑 잘 놀아주셨냐고.
남편은 별로 오래 생각하는 기색도 없고 감정을 싣지 않은 어투로, 그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정말 싫은 티 한번 내지 않고 아버님을 공경했다.
미스터리한 것이 아버님인지 남편인지, 아니면 남편을 남 원망 않는 사람으로 키운 시어머니인지 모르겠다. 아버님은 술을 즐기셨고 주사가 있으셨다. 내가 결혼하고 처음 맞은 명절에도 어김없었다. 엄청났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님이 싫지 않았다.
남편이 내 앞에서 딱히 아버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비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선입견도 없었다.
아버님은 세월 바람이 만들어낸 깊은 주름과 수줍은 듯 오므려 미소 짓는 입매가 고요한 분이었다. 험악한 말이라곤 모를 것 같은 점잖은 인상에 말수도 없으셨다. 나는 시댁만 가면 아버님과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술을 마셨다. 운전을 해야 하는 남편과, 술은 질색하는 시어머니 빼고.
딱히 아버님과 나눈 인상적인 대화는 없었고, 둘 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는 어정쩡하게 분위기만 깨져버리고 마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어렵기만 한 시댁에서 가끔은 내 술친구 우리 시아버님만 내편 같은 때가 있었다.
남편은, 아버님한테 특별히 예쁨 받은 기억이 없다고 하였으나 나는 매 순간 아버님의 따뜻한 눈길이 그 아들의 어깨를 스치는 것을 보았다. 그 시선은 자랑스러움이었고, 특별함이었고, 때로는 미안함이었다.
그런 아들을 잃은 아버님은 통곡조차 못하셨다.
아들 잃은 아버님은 남편 잃은 나를 마주할 때마다 고맙다 미안하다 하셨다. 무엇이 고맙고 무엇이 미안한지 다 알 수는 없었으나 나는 산맥같이 주름진 그 표정을 기억한다. 산맥 사이사이 많은 말들이 저편으로 흘렀다.
죽은 자들의 세월은 어디에 남을까.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덧없고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