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에 처한 노오력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 과정과 결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by 산문꾼


바야흐로 노력이 천대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과정에 당위를 부여하면서도 우리의 좌뇌는 그걸 내버려 두지 않죠. 이 녀석들은 결과를 담보 잡아 그 기준을 정합니다. 기준에 못미친다면 노력은 평가절하 될 수밖에 없죠. 이제 과정을 과정 자체로 보는 낭만은 없으며,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어느새 구차한 변명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갔어, 버나뎃>은 과정에 생명을 불어넣은 영화입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말이죠. 주인공 버나뎃은 인정받은 천재 건축가였지만, 일신상의 사유로 건축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장 났어요. 불면증에 시달리고 사람이 모인 장소를 기피하며, 우울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오늘만큼은 삶을 이분법적으로 보기로 했습니다. 세상엔 결과와 과정만이 남았습니다. 결과는 짧고 과정은 길죠. 결과에겐 시간이 없어요. 무언가를 증명할만한 잣대는 쓸모뿐입니다. 하지만 과정은 그렇지 않아요. 눈 앞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느라 중요한 일을 제쳐둘 수 있고, 신념만으로 나에게 전부였던 일을 포기할 수도 있죠.


가성비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서 고생하는, 그럼에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랄까요. 중요한 건 이 기준은 내가 정합니다. 그래서 주관은 낭만적이에요. 저는 오늘부터 과정을 추앙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는 건 숭고한 일이 될 것 같아요.


영화의 도입부가 지루할 수 있지만, 저는 관객이 사서 고생을 했으면 합니다. 이 영화의 관객평이 9점인 이유는 서사가 흐를수록 진가가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요. 결과와 과정을 다 갖춘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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