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고약함에 대하여

영화 <나폴레옹> 이거야말로 진짜 사랑과 전쟁

by 산문꾼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역사 영화만큼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철저히 고증을 살리자니 밋밋하고, 극적인 연출을 하려니 없는 얘기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기름과 물을 섞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관객의 입장에서도 역사 영화는 참 곤란하다. 한 번은 이순신을 다룬 영화를 보다 깜빡 잠든 적이 있다. 그런데 극장 밖에선 재밌게 잘 봤다며 태연하게 둘러댔다.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애국이었다.


하지만 여기 그 법칙을 과감히 깨부순 역사 영화가 있다. <나폴레옹>은 현실 고증도 밋밋하고, 극적인 재미도 놓쳤다. 심지어 애국심 카드도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위인을 다룰 땐, 만드는 이나 보는이나 기본적인 정서적 유대가 있다. 그덕에 영화는 어느정도 평점을 먹고 들어간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오랜 전쟁과 외교 갈등으로 으르렁대던 앙숙이다. 그런 프랑스의 영웅을 영국인이 그려냈으니, 영화 <나폴레옹>은 시작부터 불리한 판 위에 올라선 셈이다.


나폴레옹의 연대기를 2시간 30분에 우겨 넣겠다는 시도부터 무리였다. 그럼에도 만약에 프랑스인이 자신의 조상을 이 시간 안에 담았다면, 적어도 사랑에 질질 짜는 모습에 방점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결국 영국인이 만든 '사랑 영화'다. 황제의 야망보다 집착과 상처에 더 초점을 맞춘, 묘하게 감정에 머무는 그런 이야기다.


애 둘딸린 미망인 조제핀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나폴레옹. 하지만 전쟁터에 나간 사이 연하남과 눈 맞은 조제핀. 그럼에도 조제핀을 용서하고 집착하는 나폴레옹. 그러면서 또 다른 여자를 총애하는 나폴레옹. 둘 사이에 아이가 안 생기자 결국 이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혼을 당하는 조제핀. 그리고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해 드디어 후계자를 얻은 나폴레옹. 그러면서 조제핀 집에 들락날락하며 친구처럼 지내자는데.. 이쯤 되면 로맨스인가 막장드라마인가. 유교걸에겐 꽤나 고역인 러브스토리다.


사랑은 결국 다른 형태로 변주된다. 나폴레옹에게 조제핀은 처음엔 뜨거운 연인이었다가, 어딘가 모성애 같은 감정으로 바뀌고, 마지막엔 친구처럼 남는다.


사랑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추하다. 집착하고, 싸우고, 질투하고, 오해하고, 상처주고, 결국엔 상대를 내 방식대로 길들이려 한다. 그러면서도 또 돌아가 서로를 탐하고, 가엾게 여기고, 그래도 너뿐이라며 다시 화해한다. 사랑이란, 그렇게 망가져가면서도 끝내 끊기지 않는 욕망이다.


묘하게 중독되는, 배꼽에서 나는 그 은근한 냄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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