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 불안한 시대에 소소함은 왜 구원처럼 느껴지는가
내가 사는 세상은 잠시만 넋을 놓아도 불안이 밀려온다. 뉴스에서는 집값이니 환율이니, 힘없는 개인이 무너질 것만 같은 이야기만 한다. 어느 날은 유명 연예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또 다른 날엔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갑작스레 땅이 꺼지고(싱크홀),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은 서로를 물어뜯느라 바쁘다.
불안에 익숙한 나는 영화조차 편히 보질 못한다. 누가 악당일까, 주인공은 어떤 고난을 겪을까, 다음에 무슨 일이 터질까. 그런데 영화 <패터슨>은 그런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다. 늘 위기와 반전을 예감하는 나에게, <패터슨>은 생경한 정적을 안긴다. 별일이 안 생긴다. 이 영화에서 위기란 그리 극적이지 않다. 위기라 말하기 조금 민망한 일상 안의 소소한 흔들림 정도랄까.
그래서 누군가에겐 무료한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심심함이 오히려 나를 멈춰 세운다. 이상하게 낯설었다.
‘내 감각이 무뎌졌구나. 얼마나 강한 자극이어야 재미있다고 느낄까?’
사실 평범한 일상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오전 일과를 마친 뒤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일을 하고 퇴근한다. 이처럼 예측 가능한 반복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평범한 삶을 따분하게 여긴 채 스토리를 갈구한다. 그렇게 해서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되거나(스파이더맨),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가짜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매트릭스).
<패터슨>은 그런 자극을 거부한다. 오히려 똑같아 보이는 하루 속에서, 아주 작은 다름을 포착한다. 그 감각을 시로 남긴다. 그리고 나는 그 느림에서, 이상하게도 안정을 느꼈다.
재미의 다른 차원은 꽤나 충격이었다. 나에게 즐거움이란 늘 더 빠르게, 더 세게, 더 자극적으로 다가와야 하는 무엇이었으니까. 웃음을 터뜨리는 유머만이 재미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주인공 패터슨은 느리게, 미약하게, 소소하게 일상을 음미한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조용히 알아차리면서.
그러니까 <패터슨>은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영화다. 분자는 그대로 두고 분모를 줄여야 비로소 보인다. 주파수를 맞추듯 하루를 조율하는 삶.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처럼 잔잔한 일상도 제법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