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콩나물>리뷰
어려서 제때 대학에 못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마찬가지로 군대도 남들 갈 때 다녀오고, 하고 싶은 것 생각하기도 전에 취업까지 일찍 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적이 있다. 나는 제때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까봐 불안한 “어른이“ 였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달성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명확한 목표설정” “체계적인 계획”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클리셰다. 영화 콩나물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아이의 순수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큰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보리(김수안)’라는 어린 아이가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가는 과정이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기에, “고작 콩나물 심부름”일 수 있지만,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콩나물 심부름은 순탄하지 않다. 보리는 위험한 오토바이, 공사장 때문에 길을 돌아가기도 하며, 돈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콩나물 여정 속에는 뜻밖의 이득도 있다. 동네 아줌마한테 빵도 받으며,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공짜 술(?)도 먹듯이.
아줌마에게 받은 빵으로 무서운 개를 피하고, 납치범을 연상케 하는 택배 아저씨로부터 벗어나는 보리의 위기 대처능력 또한 영화의 묘미이다.
살면서 일이 계획대로 풀리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체계적인 계획 이였다면, 보리는 “슈퍼차” 아저씨의 방송소리를 듣고 바로 콩나물을 사며, 영화는 막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보리는 동네언니가 빨래 너는 걸 도와주다가 눈앞의 목표를 놓치기도 한다.
반대로 계획대로 풀리진 않아도, 살다보면 잘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무릎이 까진지도 모른 체, 보리는 울면서, 할머니에게 야채가게를 묻는다. 귀가 들리지 않는 할머니는 보리의 목표에 도움은 못되지만, 약을 발라주며, 쉬어가는 여유를 준다. 보리는 갈 길을 뒤로하고, 할머니를 도와준다. 과연 나에게는 고추를 마당에 널어줄만한 여유가 있을까?
아이는 관찰력이 있고, 호기심이 많다. 관찰력 덕분에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중절모가 아빠의 그것과 같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다. 호기심 때문에 그를 따라가기도 한다. 체계적인 계획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집에서 시장의 위치도 알게 되고, 해바라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도 한다.
결국 야채가게에 도착하지만, 보리는 본인이 사야할 것을 까먹었다. 어린아이에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고 말기엔 아쉬움이 있다. 보리의 시선은 굉장히 순수하다. 이런 설정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깨달음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체계적인 계획대로 살면서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지 않을까. 너무 바빠서 고마움도 모르며, 아픈 것도 참고, 쉬는 것도 잊으며, 살고 있진 않은지.
하루가 저물고, 보리가 지나온 배경만을 역으로 보여주는데, 나 역시 느려지고, 차분해져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돌아보게 된다. 결국 보리는 콩나물을 사오지는 못했지만, 집안 어른들은 콩나물 반찬이 놓이지 않은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한때 적절한 시기, 즉 명확한 목표라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콩나물처럼 보인다. 난 누구와 비교를 해왔던 것이고, 적절한 것은 과연 누가 정한 것인지.
오히려, 가족들은 뜻밖에 가져온 해바라기 덕분에 아버지가 좋아했던 것을 연상하며, 아버지를 추억한다. 오늘도 누군가 정한 콩나물만을 쫓다가 내가 놓치고 있는 해바라기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