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훈련이 필요하다면

영화를 본다는 것

by 산문꾼
noom-peerapong-2uwFEAGUm6E-unsplash.jpg


항상 영화를 잘 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잘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런 탁월함을 투입(input) 대비 산출(output)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 사실 어떤 관찰을 자기의 언어로 뱉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게 글이든, 말이든, 생각이든. 하지만 영화를 잘 보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에서 통찰과 위트를 잘 발휘할 것만 같은 기대감이 있다. 시의 적절한 타이밍의 성대모사이든,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무용담이든, 심지어 그것이 허세일지라도.



사실 데이트에서 영화만큼 가성비 좋은 콘텐츠는 없었다.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팝콘 결제한 게 전부였지만.) 데이트는 밀도 있을 확률이 높다. 솔직히 연애놀이가 빈번하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영화를 빼고 나면, 하루를 보낼 만한 콘텐츠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영화관에 개봉했던 영화는 항상 최신화가 되어있었다. 문제는 아웃풋이 되지 않았다는 것.



“영화 어땠어?” 나의 감상평은 ‘재밌다. 그냥 그렇다. 별로다’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더 자세하게 표현할 수 없을까. 한 평론가의 강의가 이런 불편함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다음은 영화평론가 김태훈이 말한 한 강의 중 일부분이다. “아주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끝나지 않아요. 극장 문을 닫고 나가고 나서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액션과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잘 만든 영화도 많지만, 그런 영화들을 아주 명작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액션과 로코는 모든 걸 다 해결해주기 때문이죠. 악당을 잡고 끝내든,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든. 우리는 행복한 마음을 갖고 극장을 나가지만, 거기서 끝입니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극장을 나가며 영화가 던져준 질문과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거든요. 우리는 그런 영화를 명화라고 합니다.”



난 혁명가(revolution)가 되기로 했다. 오늘부터 명화(名畵)만 보겠다고 다짐하며 검색한다. “죽기 전 꼭 봐야 할 영화” 하지만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나의 열정의 불씨는 금세 꺼져버렸다. 평소의 2시간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끄적이며 날렸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명화 보는 걸 숙제로 정해버리니, 시간이 아까웠는지, 어떤 영화를 보아야 가장 잘 보았다고 소문날지 견적만 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한 시간을 골라 본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없었다. 생체에 흥분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세기의 값. 아마 역치 때문인 것 같다. 말이 명화지, 내 역치를 건드리기에 이것들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였다. SNS, 유튜브 영상들에 길들여진 내 말초신경은 2시간짜리 (지루한) 영화에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skip 버튼을 계속 눌렀다. 어차피 블로그를 통해 줄거리와 느낀 점은 알 것 같았으니까.



결국 혁명은 실패했고, 진화(evolution)를 택했다. skip을 누르지 못하게 만들자. 그래서 투자했다. 비싸다면 비싸겠지만, 1편당 1만 원씩 50편 이상의 영화를 보면, 대충 뽕을 뽑지 손익분기점은 넘기지 않을까. 나는 약간의 추천을 받아 명화를 선택하고, (절대 오래 검토하지 않는다.) 다 본 영화에 대해 짧게라도 표현하려 한다. 오늘부로 10편의 영화 후기를 썼다. 쓰면 쓸수록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다. 1년 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기대하며 답해본다. 명화 50편을 본 사람이 되어 있겠지.


pim-chu-z6NZ76_UTDI-unsplash.jpg Photo by Pim Chu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