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말하는 설득

영화 <결혼 이야기>

by 산문꾼


일상에서의 설득이 납득을 향한다면, 영화에서의 설득은 여운을 바라봅니다. 설득을 하려면 장치가 필요하죠. 첫 번째 장치는 역설입니다. 만약 A를 주장하기 위해 A에 대한 근거를 대는 건 예측이 가능하잖아요. 예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결혼을 말하기 위해 이혼을 연출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어요. 역설은 묵직하죠. 저게 책임이겠구나, 저게 현실이겠구나, 그리고 저게 바로 사랑이겠구나.



역설이라는 장치에 이야기가 합쳐지면 게임은 끝납니다. 저는 납득되었습니다. 비교하자면, 자기 계발서가 말하는 어떤 당위는 쉽게 휘발됩니다. 솔직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해야만 하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정확하면 설득 당하기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은유를 기준으로 나열했을 때, 가장 왼쪽에는 사전이 있다네요. 메타포가 단 하나도 없거든요. 하지만 이야기는 다릅니다. 스크린이 막을 내려도 그 여운은 지속되거든요.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메타포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느낄 수 있고, 그 기억은 더 오래가고, 운이 좋다면 내 삶의 배치가 바뀔 수도 있는 기회를 얻을지 모른다는 거죠.



서로가 얼마나 지랄 맞은 지, 이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래도 그런 성가신 것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다면, 결혼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사람은 꽤 복잡합니다. 이 타이밍에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아포리즘을 모셔왔어요. 너무 멋진 말입니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인 것을.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2012)

being alive -adam driver


그렇기에 사랑은 기술입니다. 느낌, 코드, 열정보다는 협상과 타협에 더 가깝죠. 익숙함과 권태를 안정감으로 여길 수 있는 기술, 엉뚱한 사람에게 화내지 않으려는 기술, 서로에 대한 불평을 다정하게 전달할 기술, 섹스에 대해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기술. 이 모든 기술에는 연습이 요구된다는 것. 그러니까 복잡하게 나쁜 사람 사이에서의 외교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죠.



낭만은 오히려 구체적인 현실을 좀 먹어갑니다. 마치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게, 현실의 불만을 덜어내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에, 부러움은 쉽게 다가올 수밖에 없죠. 이런 인지 과정의 당연함을 알아채지 못하면, 앞으로 괴로울 거 같아서요. 이번 평론은 너가 한번 살아 보라는 냉소와 내가 살아봤는데 결혼하지 말라는 푸념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TMI 정도로 해두습니다.



출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사랑의 기술』

⟪인생학교, 사랑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

영화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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