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아름다웠을까

영화 <500일의 썸머>

by 산문꾼


사랑을 향한 어떤 공상은 안정적이다 못해 너무 게으르다. 그 둘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우리는 첫눈에 반하고, 위기를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모든 걸 극복해 버리는 데 익숙하니 말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해피엔딩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연락 문제와—그것이 빈도이든지 보고(report)든지— 여사친 문제에—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을 수 있느냐—뿌리를 둔 오만가지 이유가 서로를 괴롭히는 현실 앞에서 달달한 플롯이 조금 부담스럽다. 솔직히 말해 나는 사랑으로 모든 걸 극복할만한 남친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평범한 로코물이 아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던가. 사랑하고자 한다면, 이런 ‘잡음’ 만한 게 없다. 그래서 영화는 핑크빛에 익숙한 사랑꾼들의 안일함을 긁어준다. 그것이 노이즈의 역할이고, 그러기엔 전여친이라는 소재가 제격이다.



500일 동안 썸머를 사랑했던 톰의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나열되지 않는다. 영화는 플롯을 뒤죽박죽 섞는다. 이별과 좌절을. 교감과 설렘을. 권태와 시큰둥함을, 열정과 두근거림을. 더 사랑하는 이의 외로움을. 분노와 비참함을, 또다시 사랑과 기대를. 신기한 건 보다 보면 이런 시간의 뒤섞임이 알아서 맞춰진다. 그래서 영화는 세련됐다.



사실 지나간 시절의 내 모습을 돌아본다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사랑이라면 아련하기보다는 이불을 걷어찰 확률이 높다. 과거의 우리는 어렸고, 미숙했고, 유치하지 않았던가. 썸머는 어린 시절의 결핍 때문인지, 서로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짓기를 꺼렸고, 그녀를 사랑한 톰은 불안해한다. 그녀의 쿨내에 얼어 죽을 것 같기에. ‘우리는 무슨 사이일까, 너한테 나는 무엇인가.’



그는 기어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묻는다. ‘전 남친들은 어땠어?’ 그녀는 열거한다. 그중에 특히 페르난도라는 놈의 별명이 거슬린다. 퓨마. 톰의 머릿속이 근거 없는 에로스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그리고 묻는다. 왜 헤어졌냐고. 물론, 그녀는 안 알랴줌. 그나마 다행이다. 잤냐고, 좋았냐고는 안 물어봤다.



대체적으로 남자의 첫사랑은 아름답다. 달리 말해, 그렇게 아름답게 왜곡된다. 성숙하지 못했고, 찌질 했기에, 나는 운명이라는 벽 뒤에 숨어 괜찮은 기억만 남기고 싶었다. 청춘은 그렇게 전 남친이 된다.



그래도 그런 운명 덕분에 우리는 고이지 않고 흐를 수 있었다. 톰이 우여곡절 끝에 배운 게 있다면, 우연이 우주의 이치라는 것. 하필 그 시간과 그 장소에 새로운 그녀가 나타나다니. 내레이션은 말한다. 어떤 누구도 그런 이치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보다 위대한 건 없다고.



그러니까 전여친말고 지금 당신옆에 있는 그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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