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 길을 자전거 타고!
그러니까 시작은 빈폴의 광고 카피라이팅 때문이었다. 피크닉 바구니가 달린 예쁜 자전거를 탄 모델이 햇살 속에 달려오고 맞은편에 있던 남자는 깊은 감탄사를 날리며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라고 독백을 하는데, 그날부터 멋지게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두 아들이 어릴 때 집 앞 학교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네 발 자전거를 밀어주며 드디어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도록 만들었는데 정작 나는 넘어지는 게 두려워서 자전거 타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1년의 휴직 기간이 생기자 몇 개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니 그중에 하나가 자전거로 산티아고 길 순례하기이다. 원래는 걸어서 40~50일 걸려 산티아고 길을 순례해 볼 생각이었는데, 주변 언니들이 한결같이 말리는 거다. 평발인 네가 하루에 30km씩 맨 발로 걷다가는 쓰러지거나 응급실 행이라며. 그래? 그럼 자전거를 타고 가지 뭐!
마침 구청에서 무료로 일주일에 3회씩 자전거를 가르쳐 준다는 메시지가 와서 덥석 미끼를 물고 신청을 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수업을 갔더니 내 또래의 회원들이 10명 정도였고 강사님은 세 분이시다. 첫날은 자전거를 고정시켜 둔 채로 의자에 올라앉고 내리는 법과 바퀴를 돌리는 것, 브레이크 잡는 법만 연습한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전거 의자 위에 앉아서 열심히 페달을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니 천 변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는 사람들은 전속력으로 바람을 가르며 씽씽 달린다. 어찌나 부럽던지. 한 달 열심히 배우면 저들처럼 여유 있게 질주할 수 있으려나. 잠시 멍을 때리며 딴생각을 하던 찰나에 자전거가 휘청하면서 옆으로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내 옆에 짝꿍은 그런 나를 보면서 어 어 하다가 그녀도 넘어지고.
한 시간 넘게 부지런히 페달을 돌렸더니 앉은 곳 주변이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다. 살짝 엉덩이를 들고서 바퀴를 돌리니 좀 낫다. 눈이 마주친 강사샘은 바로 달려오셔서 벌써부터 이래 꼼수를 부리면 위험하다며 날더러 자전거 의자에 앉으라고 재촉한다.
시작이 반이니까 스스로를 위로하며 저녁을 먹는데, 작은 금쪽이 SJ님이 묻는다
- 오늘 자전거 타보니 어땠어요?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산티아고는 무슨... 양평이나 양수리만 가도 좋겠다!
- 봄에 열심히 연습하면 가을엔 양수리 내가 같이 가줄게요. 엄마 보디가드로.
- 솔직히 양수리는커녕 지금 마음은 집 앞 공원이나 천변만 가도 감지덕지야.
상상 속에서 나는 광고를 백 번쯤은 찍은 것 같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1층 자전거 보관대에 피크닉 바구니 달린 내 자전거는 주인을 기다리며 먼지만 수북이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