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내 눈에 스며들었다.
장마가 실컷 쏟아지고 매미들이 막바지 다시 활개를 치며 더더더 큰 소리로 구애를 할 때, 햇볕은 1년 중 가장 뜨거운 시기에 이르렀다.
8월의 말쯤, 이 곳에 내려온 후 1년 가량 지났다.
내려온 지 처음 해 여름, 그 땐 어떻게든 내가 그냥 확 죽어버리거나, 엄마랑 정면돌파해서 일일이 전쟁을 치루어
그동안 받았던 감금생활같은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사태들을 모조리 끝장내겠노라 했다.
열심히, 치열하게 모녀는 싸웠다.
나는 온 지 얼마되지 않아, 가을무렵, 죽지도 못해 집에서 기생만 할 순 없고 밥값은 해야겠으니 무어라도 해야겠다 마음먹고 공장에서 1년만 죽어라 일해서 돈을 다시 모으자 생각해서 면접을 보았다.
지방 시골이라 시내까지 가려면 어쩌다 오는 전철 1대 겨우 타서 30분쯤은 타고 내려야 했으니, 당장 차도 없고 면허도 여태 없어서 셔틀운행하는 공장직밖에는 당장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오랜세월 서울에서 영업직만 12년을 했지만, 이 곳에 오니 다 무용지물이었거니와, 다시는 영업직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한터라. (영업의 세계는 사람이 더욱 악하고 교활함을 보았다. 물론 일반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서는.)
면접을 그렇게 보고 돌아오는 길, 남친있냐는 질문에 나는 ‘아, 공장은 커플 동반 이런것도 유무가 갈리니 물어보나보다’ 싶어서 없다고 했다. 솔로이기도 했지만 남친 있다고 하면 커플 동반입사 금지라고 할까봐서.
그랬더니,
“저, 초면에 정말 실례되는 말이지만, 저도 이런적이 정말정말 처음있는 일인데요...
남친없으시면 같이 밥한끼 드실래요? 정말 제 이상형이시고 마음에 너무 들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문자드립니다.”
두 번 다신, 아니 적어도 이 곳에 내려와서 정말 몇년간 일만 죽어라 매진하겠노라 다짐했던 내 마음은 아주 아주 쉽게 깨졌다.
‘혼자’라는 공포증에 시달리던 터라, 엄마에게로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는 하겠지 하고 내려온데다, 아직 치유된 건 하나도 없었다.
역시 나는 결국 또 빈말이고 여자 꼬시려는 뻔한 작업인 걸 알면서도 만남을 가졌다.
2달 후, 겨우 나는 마음이 안정화 되어 잘 지내고 있던 중, 통화 후 전원을 끊은 줄 착각하던 남자는 다른 여자를 차에 태우고
다정하게 말을 나누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나는 들어야 했다.
그는 3-4년 만난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세컨드로 날 만난것이었다.
졸지에 내연녀가 된 나는 또다시 패닉에 빠졌다.
안그래도 보잘 것 없고 죽고싶던 인생에 ‘여자문제’마저 경험도장을 찍었으니, 더 살기 싫어졌다.
어째서 이런일이 왜 자꾸 나에게만 덮쳐오는가에 대해 원망과 저주을 ‘신’이라는 작자에게 쏟아부었다.
남들은 ‘별 거 아닌거’로 당연히 생각하겠지만, 나에겐 생사가 갈릴만큼 나의 영혼은 나락으로 수직하강하고 있었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며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로, 나는 엄마에게 거실에 주저앉아 말했다.
“나 좀 어떻게 좀 해봐. 말리던가 죽여주던가 둘 중 하나만. 제발...!!”
울지않고 꾹꾹, 꾹꾹 버티고 버텨오던 내 멘탈은 드디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엄마가 심히 당황해, 나를 온몸으로 붙잡고 꽉 막아섰다.
상태의 심각성을 알고, 내가 당장이라도 자살을 하려하기에, 긴급하게 여기저기 응급처치해줄 수 있는 정신병원을 찾다가,
거실 한 가운데 있는 사이클기구에 잠시 올라타 일부 떨어진 커튼을 매듭짓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엄마는 온 몸이 아작이 나는 통증을 겨우겨우 붙들고, 자신의 몸보다 내 멘탈을 부여잡느라 애썼다.
세 군데 들렸나...?
한 곳은 야간 응급진료가 된다는 정신병원이었지만, 그 때 코로나가 한창 소동이라 간단한 진료조차 허락이 안되어서 헛걸음 했고
한 곳은 정말 하얀집.
이건 아니다 싶어 결국 그날 밤은 날 붙들고 어떻게든 달래고 달래 곁에두고 잠을 거의 지새우며 아침 눈뜨자 마자 신경정신과를 찾아가서 진료를 보았다.
극심한 공포증, 자살충동, 공황장애, 중증의 우울증 등등.
난 정말 심각한 상태였다.
그 날 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분명, 나 혼자만의 싸움이라 자살충동이 심해 먹기 시작한 약.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시간 집착과 감금과도 같은 강요, 본인의 말을 따르지 않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비아냥과 시비의 말투로 문자와 카카오톡폭탄을 날리기 일쑤.
나는 매일매일이 전쟁이었고, 그러다 나도 열받아서 친구집으로 도피해서 가출이라도 한 날이면 고양이들 정리해버리겠다며 협박하기 일쑤였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과도 같은 늪에 서서 나는 살려달라고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그래도 안 죽고 살아보려고 내려온 이 집이었는데.
나는 어쩌다 더 죽고 싶은.
정말 가장 밑바닥이라 생각했는데 더 끝도 안보이는 바닥이 있었다는 것을 실감해가며 나는 계속해서 살아있는 지옥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존속살인]이 이렇게 발생이 되는거였구나.
깨달았다.
모든 분노와 원망들이 그동안 눌러온 나의 모든 감정에 균열이 생기면서 모두 터져버렸다. 수류탄처럼.
처음엔 싸움에 거세져 서로 서서 칠 기세로 가다가 결국 ‘막아보겠다는’ 의도에서 이내 곧, 엄마의 멱살을 잡고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야겠다’ 로 바뀌었다.
그렇게 그 날 처음,
나는 칼을 꺼내들으려 했고, 엄마를 심하게는 아니지만 때렸고, 온갖 쌍욕을 퍼붓는 폐륜아이자, 존속살인미수 범죄자가 되어버렸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곧 정신이 들자
나는 하염없이.
하염없이.
이젠 정말 내가 죽겠노라 다짐하고 울고 또 울었다.
처음 병원에 데려가려던 때 자전거에서 떨어져 온 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질듯 한 통증을 숨기고 고통을 부여잡으며 그래도 내가 더 중요해서 움직이던 때.
병원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택시타고 돌아오던 때.
나 먼저 집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며 혼자 절뚝이며 어디론가 쓸쓸히 걸어가던 그 모습.
떠올랐다.
내가 죽겠다며 남자하나 또 잘못만나 버둥치고 있을 때, 찢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내 손을 먼저 부여잡고 괜찮다며 꽉 껴안았던 엄마.
떠올랐다.
내가 처음 서울에서 마침내, 엄마집으로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한 걸음에 달려와 이사를 도우고, 내가 힘든 멘탈상태로 무너지지 않게 계속 케어하던 엄마.
떠올랐다.
마치 주마등처럼.
그토록 쓸쓸하고 너무도 쓰라리고 아픈 지난 날들이 떠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처음엔 자살충동으로 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엄마와의 싸움과 집착과 강요로 인해 오히려 자살충동이 더 많이 일어나,
약을 조절해가며 먹게되었는데.
약을 먹는 이유가 바뀌어 있었다. ‘엄마’ 때문에.
지금도, 사실.
진짜 엄마 때문에인지, 나의 상태의 변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엄마를 죽일 뻔 했고,
죽이고 싶은데 사랑하는 감정이 공존해 나를 더욱 미치게 아프게 만들었고, 그 사실이 더욱 죽고싶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거의 시체처럼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목숨만 유지하고 있던 찰나,
약은 부작용 탓으로 갑자기 끊을 수가 없어(멋대로 끊으면 공황장애 발작이 온다.)
약을 지으러 힘겹게 우리 집 나무 대문을 열고 뜨겁게 날 향해 내리쬐는 해를 손으로 가려 인상찌푸려 슬쩍 보며 짜증섞인 한숨 내뱉고 첫 발을 내딘 순간,
옆 집 상가 담벼락과 우리 집 담벼락 그 좁은 사이에 하얀 부추꽃 무리들이 활짝 만개하여 흐드러지게 목을 빳빳이 세우며 흔들거리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꼭 그 흔들림이, 날 향해 ‘안녕’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 생각했다.
‘어라...? 왜 여태 저런 들꽃들이 피어나는 걸 난 본 적이 없는 걸까.’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온 부추꽃은, 내 생명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돌 틈사이로도 어떻게든 피워내겠다며 고개 빳빳이 들고, 꺾이지 않는 부추대처럼, 흐드러지게 화려하게도 만개하던 꽃.
여느 유명하고 아름다운 그 어떤 꽃들보다도, 나는 그 꽃이 제일 위대해 보였다.
나도 제대로 살아내보지 못한 인생을,
부추꽃은 그게 진흙밭이어도 피워내리라고 단단히 각오하듯, 아주 든든하게 피어있었다.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저 들꽃도 저리도 열심히 한 번 피우고 죽어버리는 생인데도, 그런데도 저렇게 최선을 다해 사는데.
왜 나는 그렇게 살아 볼 생각을 못했을까. 왜 난 저 부추꽃보다도 못살까.’
그 순간 나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이 찰나, 아주 짧은 찰나에 담겼다.
그리고 사람은 죽는 순간 주마등이 스쳐진다는데, 나는 아마, 그 꽃을 본 순간 죽었었나보다.
주마등이 찰나에 스친걸 보니.
아팠다.
엄마의 모습을 내가 그리 만든 거 같아서.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