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일대로 꼬인 실타래
맴맴...매--------------앰매맴맴...
‘저 놈의 매미소리 지긋지긋해...’
여름을 가장 싫어한다.
꿉꿉하고 우중충한 장마의 빛깔하며, 불쾌감은 깨끗한 물로 씻어내도 씻어내지지 않는 게, 꼭 내 불행들과 참 닮았다.
이사를 우여곡절 마쳤다.
그 짧은 하루이틀, 짐 정리 사이에 참 많이도 으르렁 대며 모녀는 싸워댔다.
“저 고양이 새끼들 네 놈이나 되는 걸 우르르 끌고 와가지고는. 어휴 쯧쯧쯧.”
앙칼지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저 말투와 억양은 엄마의 전매특허였다.
듣는 순간, 곁에 있는 나는 두 배로 날카롭게 변한다.
“허락했잖아. 데려오라며. 왜 또 시빈데.”
또 싸움은 시작이다.
조금이라도 죽음을 피해 달아나 도망쳐 온 이곳은 더 지옥처럼 느껴졌다.
난 무얼 위해 이곳에 왔을까,
난 왜 살아있을까.
엄마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받아들일 각오는 했지만, 생각 보다 다른 변수적인 상황과 그림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그렇다 했다.
나는 허락해놓고 다 괜찮다며 날 이곳으로 누구보다 오길 바랬던 사람이, 지금와서 온갖 불평과 짜증으로 나를 갈궈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두 사람의 대립은 이 여름날의 장마처럼 끝을 보일 생각이 없었다.
고양이 네마리.
이 녀석들은 모두 한 어미의 배에서 나온 어미와 나머지 세 마리 자식들이었다.
사실, 서울살이 하는 20대 내내, 나는 극심한 우울증과 혼자라는 공포 속에서 이 어미라는 녀석 아니었으면 진즉에 송장으로 발견되었을거다.
이 녀석들로 버텼다.
유일하게, 사람말 못해도, 내 삼키는 눈물들을 다 안다는 듯이 토닥여준 녀석들.
내가 울고 있으면 늘 곁에와서 구슬픈 소리로 ‘애애애-오옹’ 해주던 녀석들.
근데, 자꾸 내 목숨을 살려 유지시켜와준 이 고마운 녀석들을 일부라도 어디 보내고 왔어야 됐다는 둥, 버려야 된다는 둥, 보호소에 갖다줘야 한다는 둥 내 옆에서 갉잙갉잙 긁어대고 있었으니, 폭발 할 수 밖에 없었다.
난 배신감마저 들었다.
“고양이들 받아준대놓고 왜 이제와서 자꾸 그런 소리들 해대는건데!!!!! 왜 뒷통수 치듯 말을 그렇게 해, 왜!!!”
아무리 울분을 터트려 놓아도 돌아오는 건 무시와 욕.
저 미친년 또 시작되었다는 말과 두 배, 세 배로 돌아오는 시비였다.
정말이지 엄마의 시비는 급이 달랐다.
우리엄마도 이 마저도 많은 변화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기질은 쉽게 고쳐지질 않은 상태였다.(이때까진 그렇다는 말.)
나는 극심한 경멸과 혐오감을 떠안고 밖으로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엄마가 있는 이 지역은, 중-고등학교를 나온 옆 동네 였기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가까이 있었으니 그나마, 나는 탈출 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었던 셈이었다.
집에있어도 싸우는데,
밖에 나가선 더 싸우게 되는 아이러니.
엄마는 나를 남편처럼 대하는 것만 같았다.
‘걱정’이라는 명분하에, 저녁 8시도 되기도 전, 언제 오냐는 전화와 문자폭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내 나이 32살.... 이건 해도해도 아니잖아...’
우린 어디서부터 꼬인걸까.
왜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걸까.
도저히 단단히 답이 안나오는 실타래는 풀릴 생각이 없이 꼼짝도 안한다.
난 답답해 죽어버릴 노릇이었다.
“그건 집착이야!!!! 대체 누가 나이 32살에 초저녁 8시도 되기도 전에 늦게 들어온다는 폭탄문자를 보내냐고!!!! 왜 맘에 안들면 시비와 비아냥을 해대는건데 왜! 도대체가 왜!!!”
정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악을써도 내 말은, 내 타들어 가버린 속은, 썩어버린 속은 그대로 묻히기 일쑤였다.
그럴때면 정말 나는 ‘그냥 차라리 죽자’는 생각이 항상 턱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해야 이 집착을 멈출까.
어떻게 하면 이 결핍을 멈출까.
‘나, 어떻게든 안 죽고 살려고 여기 내려왔잖아...엄마 말 하나 믿고... 이젠 안심해도 된다는 그말 하나 믿고 나 여기 왔잖아...’
....
...
.
‘근데, 왜 나 점점 더 죽고싶어지는 걸까.’
내가 20살이 되자마자 서울로 도망친 이유.
떠올랐다.
‘그래... 맞다... 그랬지...’
학교 야자가 끝나자 마자, 버스타고 내려서 집까지 걸어오는 시간까지 계산해, 예상시간 5분이 넘어가면 전화와 문자를 하고 안받으면 바로 학교로 전화걸던 엄마.
아직도 나는 ‘시간이라는 틀’에 갇히는 걸 끔찍히도 싫어한다. 혐오한다.
시간으로, 폭력으로, 말로, 나를 옭아매던 세월들.
엄마의 사랑이 그립고 품이 그리워도 떠나 있을 수 밖에 없던 나의 20대 세월들.
어린 시절조차 나는 엄마의 품, 엄마의 응원, 격려, 사랑의 손길을 제대로 느껴보질 못한 채 자랐다.
나는 폭력과, 아빠를 닮았다며 툭하면 감정쓰레기통 대리로 화풀이를 당하던 학대 속에서 자랐다.
엄마가 중간에 재혼했다 이혼한 양아버지는 나를 강간했고, 엄마에게 말 못하고 견뎌낸 세월은 3년 가까이 된 듯 하다. 결국 비밀리에 영원히 묻힌 채 이혼했지만.
중간중간 강아지도 맘에 안드는 족족 바꿔가며 팔아대던 엄마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이 그냥 베어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네 마리의 나의 고양이들에게도 아직도 이따금씩 깜짝 깜짝 놀라도록 학대적인 행위를 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엄마를 말린다.
“엄마! 왜 자꾸 학대적인 행동을 하는거야. 이건 동물 학대에 속해. 제발 그러지마.”
엄마는 모르는거다.
어떤 것이 사랑인지, 어떤 것이 폭력이고 학댄지.
배운 적이 없기에.
어린시절의 엄마의 사랑 결핍은 꼬리를 물고, 큰 외삼촌이자 엄마의 큰 오라버니에게 겪은 폭력과 화풀이는 그대로 나에게 대물림 되었다.
머리론 아는데 내 감정은 로봇이 아니기에,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해야만 했다.
슬픈 현실이지만, 난 계속 질 수 없이 싸워야 했다.
내가 죽을 노릇이었으니까. 이러다간 정말 뉴스에 나올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으니까.
“제발...제발, 엄마...우리 그냥 제발 좀 평범한 모녀일 순 없는 거야? 제발 그냥 ‘평범’한 엄마가 되어줄 순 없는거야...?!!”
나는 그렇게 점점 더 죽을 구실만 생각하며 시체처럼 영혼없이 시름시름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낭떠러지 위에 아슬아슬 서 있는 하루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