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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Mar 17. 2023

집을 버렸습니다.

일요일 오후, 밀린 청소를 하고 새 밥을 지었다. 내일이면 또 한 주가 시작되어 바쁘고 피곤하겠지만, 깔끔히 정리된 집에서 멋지게 한 주를 보내보자고.


월요일 아침, 알람 소리에 힘겹게 잠에서 깼다. 아직은 해가 늦게 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실 문을 여는데, 바닥에서 검은색 물체가 호다닥 움직이더니 멈춘다. '망했다.'


월요일도 망했고, 이 집도 망했고, 나는 망했다. 바퀴벌레인 것 같다. 울고 싶다. 나는 저 벌레를 잡을 수 없다. 좁은 방으로 튀어나오면 큰일이니 일단 문을 닫았다.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화장지 여러 겹으로 겹쳤다. '잡아보자. 할 수 있어' 결연한 의지로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바퀴가 도망가다 세면대 뒤쪽으로 모습을 감춘다. 그 근처로 가서 바퀴를 보고 싶진 않다. 잡아야 되는데 다시 보고 싶진 않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있을 곳을 향해 샤워기로 물을 뿌려보지만 바퀴는 반응이 없다.


양치도구를 챙겨 부엌으로 나와 급히 양치를 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옷을 입고 집을 나왔다. 오늘부로 이 집을 떠나야겠단 생각으로, 이마트 쇼핑백에 눈썹 펜슬 등 급한 짐들을 챙겨 나왔다.


"무슨 짐이에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화장실에서 바퀴벌레가 나와서, 퇴근하고 본가로 가려고요ㅜㅜ" 벌레가 너무 무서운 나는 그날 아침, 조회시간에 우리 반에 들어가서 횡설수설했다. 차마 바퀴벌레 때문에 말이 안 나온단 말은 못 하겠고, 아무튼 한참 헤매다 나왔다. 바퀴벌레 때문에 하루종일 머리가 아팠다고 밝힌 마지막 교시 수업을 제외하곤 그날 모든 수업에서 정신이 없었다.


 그날부로 나는 정말 집을 나왔다. 나는 바퀴를 못 잡는다, 지금으로선. 제발 안 만났으면 좋겠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잡아보겠다. 일단 지금은 피하고 싶다. 월세방이니까 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바퀴벌레를 보지 못한 본가로,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도움을 줄 누군가가 있는 본가로 집 나간 지 4개월 만에 돌아왔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생각을 보고 '저 사람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라는 평가를 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야말로 극단적인 사람이었다.

바퀴벌레 나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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