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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Jul 14. 2023

스벅이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내일은 애들 학교 갈 때 같이 나가서 스벅 가야지.'


 작은 결심을 하며 잠이 들었다.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한다.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두며 주변을 약간 의식한다. 몸가짐이 정리되면 집중력도 더불어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유튜브로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즐겨보던 채널에 새로운 동영상을 클릭한다. 샌드위치 하나, 커피 한잔 먹으면 기분 좋은 포만감이 든다. 널찍한 공간, 적당한 소음, 쾌적한 실내온도, 스타벅스 커피가 주는 약간의 보상(비싼커피를 먹어도 된다는)이 더해지면서 달콤한 오전이 완성된다. 내 기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계획이 어긋났다. 분주한 아침, 세 명의 식구들을 뒷바라지해 내보내고 소파에 털썩 앉아 브런치를 열어본 것이다. 브런치 글들이 왜 이리 재미있는지. 어쩜 이렇게 글을 잘들 쓰는지. 공감하다 분노하다 남걱정하다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버렸다. 어느새 오전 10시.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카페에 오가는 시간이 30분은 족히 되는데 그 시간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 30분을 더 앉아있을 수 있다. 뭘 보든, 뭘 쓰든. 지금 카페에 가서 자리 잡고 앉아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게다가 창밖에는 비가 온다. 주룩주룩. 밖은 습하겠지. 바라보는 비와 맞는 비는 다르니까.






아이스커피를 먹을 수 없다면 집을 나서려 했다. 우리 집에 얼음을 얼리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웬일로 냉동실에 딸아이가 어제 얼려놓은 얼음이 있다. 얼음트레이가 작아 빼먹는 속도를 얼리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집 근처 편의점에서 얼음컵을 자주 사 먹는 나였다. 편의점 갈바에야 카페를 가지. 그런데 얼음이 마르는 우리 집 냉동실에 얼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없다면 집을 나서려 했다. 어젯밤에 잠결에 주문 버튼은 눌렀던가 싶던 로켓배송 프레쉬 제품들이 냉장고를 든든히 채워주었다. 버터향 가득한 삼립 버터롤 클래식 모닝빵과 래핑카우 포션치즈가 구비되어 있다. 친정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딸기잼도. 소박한 내 취향과 소박하지 않은 엄마의 사랑이 집에 있다.


시원한 에어컨 있어, 노트북 있어, 스타벅스 캡슐커피 있어, 아침에 배송 온 모닝빵 있어, 부족한 것 하나 없었다. 더군다나 집에서는 노브라로 있어도 되잖아. 집 안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더할 것은 내 마음이었을 뿐. 






여기까지 쓰면 자연스럽게 왜 나는 집에 있는 것보다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할까 생각해 본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내 안방 이불속에 기어들어가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고 누워있는 포근함이 너무너무 좋다. 손길이 닿는 곳이 깨끗해지는 거실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카페를 찾는 아침, 내가 원하는 건 공간의 분리이다. 일과 쉼의 공간이 하나인 전업주부이기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이 나간 시간에는 나도 일로써 분리된 공간에 있고 싶은 마음. 주변을 의식하여 집중력을 높인다는 건 남이 내려주는 커피를 먹고 싶다는 소비욕구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다. 무엇을 위해 집을 나서는가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나가기 위해 나가는 것, 그런 시간과 공간을 돈 주고 사는 게 아깝지 않았다. 허나 그런 마음도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 앞에선 사악 사그라들고 말았다.



답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실행 글쓰기.  이른 시간 집을 나서고자 했으나 계획을 지키지 못한 넋두리는 이렇게 포장된다. 사실 차가움을 오래 유지시켜 주는 텀블러에 얼음을 가득 담아 스타벅스 캡슐 두 개를 내려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스타벅스에서 먹는 그것 이상으로 맛있다.



계획은 지키지 못했지만 아무렇지 않다. 부러울 게 없는 오전이다. 창밖에 빗소리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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