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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Dec 15. 2022

부부의 세계

-나를 둘러싼 세계들

타이어를 갈았다.

짙고 부드러운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는 승차감에 마음이 들뜬다. 창밖엔 영하의 추위도 아랑곳 않는다는 듯 독야청청 푸르른 침엽수가 하늘을 향해 가지를 치켜들고 있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느껴지는 겨울의 맑음이 좋다. 2000년대 히트곡 플레이 리스트에서 나오는 ‘벌써 일 년’을 흥얼거린다. 그 시절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니 왠지 연애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진다. 고속도를 달려 광명 이케아로 조식을 먹으러 간다.


둘만의 월요일 아침이다.          





          


아이들의 세계에 있는 것이 익숙하다.


아이들과 있을 때 난 일곱 살, 아홉 살이 된다. 일곱 살의 소꿉놀이에 손목이 나가도록 프라이팬에 볶음밥을 볶아댄다. 실감 나는 병원 놀이를 위해 눈물이 날 만큼 급하고 아픈 환자 연기도 마지않는다.


아홉 살의 탐구생활에 매료되어 아이와 함께 질문하고 해결해 나간다. 내 어린 날에 궁금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가는 발견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웃음이 내 생활의 활력소이므로 기꺼이 개그맨이 된다. 빵 터지는 순간을 만들어 같이 깔깔 웃어댄다. 방귀, 똥이 들어가는 원초적인 개그 소재도 그들을 웃길 수만 있다면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비위를 갖춤은 물론이다.


친구 같은 엄마이지만 주어진 시간만 태블릿 영상과 게임을 허락하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이자 융통성 없는 감시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때론 아줌마의 세계에 있다.


큰아이를 수영 수업에 보내고 커다란 통창으로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레 옆에 있는 다른 아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줌마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 한 공간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공통점만으로도 수다 떨 수 있는 친밀감을 장착한 것.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관심 밖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학원 분위기는 어떤지, 여기 수영장에서 아이의 기량이 얼마나 증진되었는지.


엄마가 먼저 친구가 되어 아이에게 같은 수업에서 친구 만들어줄 요량으로 꼬박 50분 수다를 떤다.

그 와중에 눈은 수영장 안의 자기의 아이에게만 집중되어있느니 민낯이든 머리를 안 감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맞이하며 서로 소개시켜준다. “이모 안녕히 가세요 해야지.” 라며 급히 헤어진다. 아이에게 또 한 명의 이모가 생겼다.






          

틈틈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세계에 있다.


누군가 친절히 정리해준 오늘의 핫딜을 훑어 내려가다 가계 지출에 부담이 되어 망설이던 겨울 점퍼를 급히 장바구니에 담는다. 온갖 손품으로 얻어낸 쿠폰을 적용하여 결제한다. 내가 아는 최고의 최저가로 샀다는 짜릿함을 느끼며.


아이 손톱이 빠져 응급실에 와서 처치 중에 글을 남긴다는 닉네임 ‘아들 둘 맘’에게 우리 아이도 수개월 전에 그런 적이 있다며 며칠만 고생하면 금방 나을 거라는 공감과 위로의 댓글도 단다. 지역 문화 센터에 아이가 좋아하는 수업이 있으면 수강 신청 날을 달력에 표시한다. 동네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도서 예약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직접 돌아다녀도 하루 만에 끝낼 일 인거 같은데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앉은자리에서 왜 하루를 다 쓴 기분이 들까.


내 시간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한다. 시간이 아까워 후회 섞인 숨을 고른다.                               









월요일 아침,

난 지금 부부의 세계에 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익숙한 세계에서 나를 빼내 데이트인 듯 아닌 듯 즐기는 브런치. 적절한 환기가 주는 즐거움이 좋다. 남편과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꾸안꾸 패션은 선택이고 한 듯 안 한 듯 한 투명화장은 필수다.


배우자는 끊임없이 서로를 배워야 한단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 부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나름대로 나를 단장한다.  엄마로서의 의무를 아이 가방에 싸 보내고 연애 때 적 기분을 내본다. 낄끼빠빠 타이밍 재던 사회적 가면을 내려놓는다.


내 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남편과 아내가 되어 마음을 나눈다. 평일 퇴근 후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나누지 못한 서로의 삶의 영역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시간. ‘그랬구나.’ 화법을 쓰며 이해해주고 서로를 토닥여준다. 대화의 스킬도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서로를 웃기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고민도 하고. 마음을 마음껏 풀어놓는다. 머릿속을 비워내고 감정을 풀어낼, 리액션에 진심인 한 명의 청중이 있어 참 고맙다.      


     

부부의 세계, 월요일 아침을 기다린다.      


아 물론 남편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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