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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Jul 03. 2023

어머니는 뜨개질이 싫다고 하셨어

  


  냄새는 사람의 기억 속 한구석에서 그때의 분위기, 공기,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신발을 벗을 때 집안 가득 퍼져있는 빨래 삶는 냄새, 엄마가 마른 수건에 묻혀 자개장을 반질반질 닦는 용도로 쓰던 레몬향 왁스 냄새, 주택 2층이었던 우리 집 바깥 계단에 엄마가 물을 부어 깨끗이 빗질해서 나던 젖은 계단 냄새. 그런 냄새의 기억이 어린 시절 우리 집, 그리고 엄마를 떠오르게 한다.


 엄마가 현관 맞은편 욕실에 쪼그려 앉아 빨랫비누로 빨래거리들을 빨래판에 박박 문질러 빨며 바가지로 물을 퍼 헹구며 나를 맞이한다. 차가운 물소리, 고무장갑 낀 억척스러운 아낙네 같은 장면이랄까. 그리곤 물이 뚝뚝 흐르는 삶통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가스레인지를 켠다. 양말과 속옷을 폭폭 삶을 때 나는 냄새가 아련하다.

"그땐 왜 그렇게 열심히 빨래했나 몰라. " 요즘 엄마가 하는 말이다. 거실 TV장은 항상 윤이 반짝반짝 났고 안방에 있는 자개장은 일주일에 한 번 레몬향 세제를 뿌려 반질반질 닦아놓았다. 엄마가 장롱을 닦은 날은 은은한 레몬냄새 같기도, 시큼한 왁스향 같기도 한 냄새를 맡으며 자개장 옆 방바닥에서 세재 덕에 아직 미끌미끌한 그 장판 바닥에서 춤을 추며 놀곤 했다. 여름철, 안방에만 에어컨이 있던 시절, 매일매일 빗자루로 방바닥을 쓸고 깨끗한 걸레로 먼지 한 톨 없이 닦고 이불을 깔고 다섯 가족이 같이 잠을 잤다. 엄마는 주택 2층인 우리 집 올라오는 계단을 일주일이 멀다 하고 물청소를 했다. 위에서 시원하게 물을 쏟아부어 계단이 젖으면 플라스틱 빗자루로 싹싹 소리가 나게 비질을 하던 엄마. 가족들이 오가는 길을 그렇게 허리 굽혀 청소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그렇게 살림을 돌보았다. 에너지 있게.          






 엄마는 취미생활에 적극적이었다. 기억나는 건 베이킹. 교회 권사님에게 베이킹 기술을 전수받고 거품기, 알뜰주걱, 베이킹용 양푼과 채반등을 사들였다. 가스레인지를 뜯고 가정용 오븐이 설치되었고 버터링 쿠키, 파운드케이크, 초코칩 쿠키를 구워주곤 하셨다. 지금도 친구들은 중학교 때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엄마가 쿠키 구워준 이야기를 한다. 엄마 칭찬은 내 어깨도 같이 으쓱하게 한다. 한 번은 철없던 언니가 친구 생일에 직접 만든 생크림 케이크를 선물하겠노라 약속을 하는 바람에 엄마는 삼 남매 등교시키는 바쁜 아침에 언니 친구 생일 케이크를 손수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엄마 요리솜씨는 말해 뭐 하랴. 엄마는 아침프로에서 나오는 요리코너를 보고 메모해 두었다가 해주시곤 했다.  기억에 남는 건 향긋한 깻잎과 함께 먹는 진한 양념이 벤 오향장육과 통통한 콩나물이랑 미나리나물을 곁들인 매콤한 황태찜. 엄마는 새로운 요리를 자주 선보였고 먹깨비 우리들은 엄마의 요리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하다. 엄마가 보여주는 신메뉴에 대해 칭찬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엄마들은 다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줄 알았다. 그때 맛있다고, 최고라고, 엄마짱이라고 말할걸.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생색내지 않았다. 엄마가 되고 나서 생각하건대 그 모든 수고는 정말 당연하지 않다.


     

 엄마는 뜨개질도 했단다. 뜨개질하는 엄마의 모습을 본 기억이 많지는 않은데 내가 기억나는 시절 이전에 이미 훑고 지나간 취미라 하신다. 중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 목도리 뜨기 유행이 있었을 때 노란색 실을 사놓고 뜨개질을 시작하고 일주일을 손때만 묻히고 진도를 못 나가고 엄마에게 sos를 했는데 다음날 목도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뜨개질은 인생취미는 아니고 지나가는 취미였나 보다. 나 유치원 즈음 목도리 만들어주셨고, 더 전에는 아빠 입는 조끼도 만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화초 키우기도 좋아하신다. 엄마가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유지 중인 취미. 친정 집엔 크고 작은 화분이 약 50개나 있다. 어렸을 적 식목일에 여름이 되면 봉숭아 물을 들이겠다고 나는 봉숭아 꽃씨를, 엄마는 맨드라미를 골라 긴 화분에 심었던 기억이 난다. 모종삽으로 흙을 파고 꽃씨를 심고 물을 주고. 꽃들은 기대만큼 예쁘게 컸고 여름엔 직접 키운 봉숭아 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였다. 내 손톱에 물들여주는 엄마 손은 하얗고 예뻤다.  화초만큼 싱그러운 우리 엄마. 살림도, 취미도, 육아도. 나 어렸을 적, 기억 속 우리 엄마는 나름 역동적인 삶을 사셨다. 주어진 매일을 참 성실히,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요즘 엄마는 말한다.


 " 너 사부작 되는 게 꼭 예전 엄마 같다. 근데~ 뜨개질 적당히 하고 운동해. 운동하면서 해. "


엄마식 화법으로 미주알고주알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신다. 그저 엄마가 살아보니, 이제 뒤돌아보니 건강이 없으면 다 소용없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신다. 엄마는 이제 뜨개질이 싫으시단다. 어깨도 아프고 손가락 관절이 아프단다. 베이킹은 애저녁에 그만두셨다. 그저 자라나는 화초를 기르며 산책로 걷기, 운동하기가 엄마의 하루 일과에 아주 큰 부분이다. 물론 여전히 밝고 지인분들과 적당한 사회생활을 하지만 어렸을 적 삼 남매를 데리고 운전하며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던 엄마가 떠오른다. 집안 살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빠를 도와 일하느라  운전도 하고 취미 생활도 즐기던 엄마의 그 생생하던 에너지가 아득하다. 그렇게 바지런하던 엄마가 이젠 뭐든 그저 적당히만 하라고 한다. 그래도 된다고. 그리고 운동하라고. 운동해서 나중에 덜 아프고 더 건강하게 살면 그거면 된다고 하시는 게 서글퍼진다. 엄마가 안보는 사이 내 눈시울은 붉어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세월이 야속해서 눈물이 고인다. 내가 공부하고 연애하고 애 낳고 키우는 동안 엄마 손가락 관절은 굳어  아파 수시로 주무르고 어깨에 스티커 침을 붙이고 생활하고 하루 무리하면 이틀은 누워있어야 하는 나이가 되셨구나. 이렇게 내가 그  엄마의 시절을 보내고 있구나.



빨래를 삶으며 나는 개운한 냄새에 어린 시절 내 엄마가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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