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 컬렉션 (pinault collection)
가장 비싸게 팔리는 건 스토리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닿는 진하고 근사한 스토리.
그 스토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아무리 가격이 비싸도 줄을 서게 마련이다.
그런데 파리에서는 비싸지도 않다.
진화하고 발견되고 새롭게 기획되는 수많은 전시를 보는데 비싸봐야 20유로인데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몇십배에 달하는 감동이다.
물론,
내가 그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하품을 하고 '나 나가있을께 보고 와' 하는 남편을 신경 쓰느라
완전히 내 마음이 이 곳에 있을 준비를 못했다면
그저 인증샷이나 찍고 엽서나 몇 개 사고 Sortie 로 향해야 하는 슬픈,
그러나 흔한 유럽 여행의 마무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혼자!!!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다.
내 몸뚱이의 다섯 가지 감각을 온전히 겸비한 채로.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선물이다.
나는 이 소중한 순간을
쇼핑이 아닌 관람으로 채우기로 했다.
(이것은 매우 큰 결심이다.)
유투브에 자주 등장했던 부르스 드 코머스의 피노 컬렉션이 궁금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꼭 가보라고 해서,
여행 마지막 날 방문했다.
엄청난 부자인 피노 가문의 컬렉션을
옛 증권 거래소를 개조한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일단 이 개조를 담당한 건축가가 안도 타다오라,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의 팬인 나로서는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였다.
자연광을 적극 활용하고 건물 밖과 안의 이미지를 치밀하게 고민해
어떤 한 구석에서 보아도 지루할 틈이 없는 그의 건축미를 보러가야 했다.
그런데
입장과 동시에 압도감을 자랑하는 중앙 공간부터
턱 하니 숨이 막혔다.
코랄 빛이라 부르고 싶은
맑고 쾌청한 하늘색의 잔잔한 수면 위,
도자기 그릇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크고 작은 냉면 사발 혹은 국그릇 들이 유유히 떠 다니며
강하게 또는 약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우연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거대한 돔 (Dome) 안에서 부드럽게 울려 퍼지면서
마치 명상실에서 싱잉볼이 울리는 것 같았다.
수면은 끊임없이 변신했다.
돔 꼭대기의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이 반짝 거렸다가,
구름이 지나가면 살짝 그림자가 드리웠다가,
그릇들이 자유롭게 흔들리고 떠다니며
아름다운 구성의 형태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렇게 아무리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해지지 않는 복합 감각적multi-sensory 인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계속 들어왔지만,
30분마다 입장을 시켜 적당한 수준의 인구 밀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 당신은 들어온 지 오래 된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나가시오.
라는 메시지는 없었다.
물론 그 아름다운 작품의 가까이로 가려는 사람들은
검은 정장들이 수시로 다가가 제지시켰다.
작품 주변에 접근 금지 표시도, 가림막이나 벨벳 줄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 그 작품안에 뛰어 들어가 발장구를 치고 그 그릇에 와인을 따라 마신다 해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책임을 지게 되겠지만)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찐하게 이 작품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한
파리 전시의 배려였다.
작품명은 Clinamen 이었다.
여러가지 해석과 기획 의도들이 있었겠지만
어쩐지 나는 그 곳에서 내가 온전히 느끼는 것을
질릴 때까지 느껴 보고 싶었다.
나는 왜 처음 이 곳에 들어왔을때 숨이 막혔을까?
다른 작품은 보지도 못한 채 이 물가에 앉아 있는게 벌써 두 시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나를 사로 잡은
이 거대한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평화, 고요, 안정,
그런데도 흥미, 변화, 우연, 권태의 반대,
호기심, 기대, 감탄 같은
다양하고 강렬한 것들이 내 안에서 피어났다.
실로 처음 느껴보는 풍성한 기분이었다.
명상실에서 싱잉볼 사운드를 듣다 보면 잠이 들게 마련인데,
Clinamen 의 소리는 평온하면서도 예측불허,
불규칙한데다 어떤 그릇이 부딪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조마조마 하고
그래서인지 전혀 따분하지가 않은 것이다.
천장에서 살포시 내려앉는 자연광도
오랑주리의 그것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소리와 빛
돔 공간의 색채와 그릇들은
모두 둥글둥글 하니 고집이 세지 않았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친절했다.
너무 아름다운 그 광경을
언제까지나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온 마음이 촉촉하게 젖은 상태로
굿즈 코너로 들어갔다.
그 곳에 멋지게 걸려있는 에코백 3종과
Clinamen 책자라니!!!
어떻게 안 살 수 있을까.
에코백 안에 나의 감동을 가득 넣어가야지.
이 벅찬 마음과 기분이 꽉꽉 눌러 담겨진 에코백이
어찌나 멋진지.
샤넬백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역사와 전통, Fame 과 luxury 와 셀럽들이
번쩍거리는 스토리로 휘감겨있다.
나도 그 스토리를 샀다.
샤넬 뿐만 아니라 여러 브랜드가 담고 있는
그 화려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 스토리가 담긴 가방을 사보니
와,
이건 샤넬보다 멋있다.
이건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