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거운 바게트

Le baguette est tres chaud!

by 나로살다

프랑스를 빵의 천국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한국 빵도 훌륭하다.

훌륭하고 화려하고 그리고


비싸다.


바게트, 크로아상, 에끌레어, 뺑오 쇼콜라, 뺑오 라장...


원료와 기술이 좋아지고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훌륭한 파티쉐들이 많아

입소문이 난 빵집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스타와 유투브에서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렇다면 파리의 빵은 뭐가 다를까?

업그레이드 된 빵 입맛이 먹어도 여전히 깜짝놀랄만큼 맛있을까?


브이로그를 보면,

- 우리 동네가 더 나은 것 같은데?

- 생각보다 쏘쏘네.


라는 미적지근한 현실 피드백들이 있거나


- 우와~ 역시역시!

- 오! 맛있다. 빠삭하고 부드러워.

라는, 여기까지 온 본전을 찾기 위한 AI 느낌의 피드백이 있다. 진실된 감동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가 직접 먹어보겠습니다. 라는 심정으로 들어간

우리 파리 집 앞의 동네 빵집.



에도 빵집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객들도 종종 섞여 있지만

대부분 아침 식사를 하려는 프랑스인들이다.

주식으로 먹는 바게트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바게뜨를 옆구리에 끼고 지하철도 타고, 바쁘게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게 진짜 파리의 모습이구나 싶다.


이제는,

- 어디 빵집이 맛있어요?


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 몇시에 문여나요?


숙소 근처에는 운좋게도 빵집이 3개나 있었다.

불랑제리 파티세리

모두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 부지런한 가게들이다.

바게트는

'어디에서' 먹느냐, 가 아니라

'언제' 먹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길만 건너면 있는 빵집에서 아침 7시 20분에 바게트를 하나 샀다.

어차피 시차때문에 5시부터 눈이 말똥거렸기 때문에

차라리 바게트를 사서 아침 산책을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다.


바게트가 나온지 얼마 안되어, 품에 안으니 바삭 폭신하면서

엄청나게 뜨거웠다!

6월인데도 이상기온으로 후덥지근한 파리에서 포옹하기에는

바게트의 온도는 너무 높았던 것이다.


- 뜨거울 때 먹자!


국이나 탕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게트의 이야기다.


뜨거울 때의 바게트는 참 부드럽고 바삭바삭하다.

껍질은 아그작, 소리가 나고, 속살은 고소하면서 무엇보다

쫄깃하다.


어쩌면 이렇게 맛있을까?

무심하고 아무맛이 없는 것 같은데

계속 손이 가는 매력이 있다.



그 빵집에서 크로아상도 하나 사서 숙소 근처에서 바로 보이는 에펠탑을 따라 걸어갔다.

에펠탑은 눈앞에 바로 보여서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 같았지만

사실은 20분 넘게 걸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에펠탑 앞 초록색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는 기진맥진이었다.


버터향이 폴폴나는 크로아상을 꺼냈다.

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싸올 걸.

목이 말랐으나 다시 사러 가기엔 너무 먼 길.


아까 걸어오면서 아뜨거 하며 먹었던 바게트 반 이 남았다.

길쭉한 종이 봉투에서 남은 바게트를 꺼내어 먹었다.

다 식은 바게트는 여전히 부드럽고 순박했지만

핫한 바게트의 감동은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프랑스의 빵이 맛있다고 하는 말을 정정해야겠다.

프랑스의 "갓 난 빵" 이 맛있다.

더욱 정확히는 "갓 난 바게트"가 맛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