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금주 일지 2
금주 시도 4일째 - 소식지 덕분에 성공
.2024년 1월 23일.
금주 4일째, 순항 중이다.
중간에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일째 되는 날, 딸아이가 할머니를 꼬드겨 인형을 산 걸 알고(인형이 너무 많으니 더 사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도!) 성질이 나서 맥주로 화를 달래 볼까 잠깐 유혹에 빠졌지만 브런치에 금주 일지 쓴 게 아까워서 참았다. 요놈의 지지배가 엄마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어 그냥!
생각보다는 무난하게 4일째를 맞이했다.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힘들게 뭐가 있나 싶겠지만 첫날이 제일 힘들고, 다음으로 초반 일주일 동안 참는 게 힘들다는 것이 이 금주 업계의 불문율이랍니다.
4일째는 소식지를 만들며 심신을 바쁘게 만들었다.
매월 말, 지인 10명에게 소식지를 보낸다.
소식지. 말 그대로 지극히 사소한 내 소식이 담겨있는 '개인적 뉴스레터'이다.
A4 2장에 사진과 글을 넣고, 집 잉크젯 프린터기로 출력해서, 규격 편지봉투에 넣은 후, 우체국에서 일반 우편으로 보낸다.
메일이나 SNS가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내는 것이 내 소식지의 포인트.
2022년 1월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2014년 2월,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조우(@artist_jowoo) 언니는 매달 소식지를 보내주셨다(지속적으로 인연이 이어지는 건 다 부지런하고 세심한 언니의 덕이다).
A4 한 장의 소식지에는 언니가 작업한 작품(조우언니는 화가다)과 근황이 들어있었다.
사는 곳이 멀어서 일 년에 끽해야 1~2번 볼뿐, 그렇다고 전화나 카톡으로 자주 연락하는 것도 아니기에(정말 친한 몇 명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안부인사차 연락하는 건 매번 민망하고 닭살스럽다...)
소식지를 통해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본다는 건 굉장히 반갑고도(우편함에 꽂힌 소식지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고마운 일이었다.
게다가 언니는 직접 우표를 봉투에 붙여서 보내주었다. 근래에 우표 보신 적 있으십니꽈~
그렇게 몇 년간 일방적으로 '수신'만 하다가 나도 '발신'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때가 2021년 12월이었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툴은 사용하지 못해서
CANVA(캔바)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작업한다. 있는 템플릿을 변형해서 쓴다. 무료라서 을매나 좋게요~
내 소식지에는 그 달에 한 일과, 읽었던 책, 그리고 한 가지 주제로 쓴 A4 반 페이지 분량의 글과 단신뉴스가 들어간다.
아래는 2023년 2월 소식지.
작업하는 데는 반나절 정도가 걸린다. 지인들에게 쓰는 글이라 편하게 쓰다 보니 다른 글에 비해 부담이 적어 속도가 빠르다(그만큼 오타에 비문도 난무한다는....).
글 쓰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사진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걸린다. 평소 사진을 너무 안 찍다 보니 있는 사진, 없는 사진 쥐어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7명에게 보냈는데 근래 세 명이 추가되면서 총 10명이 되었다. 친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추가되지는 않을 것 같다(영세한 가내수공업자이기에 10명 넘으면 힘들다).
소식지를 다 만들면, 출력하고 나서 봉투작업을 한다.
봉투 하단에는 받는 사람 이름과 주소를 손으로 쓰고
상단에는 내 주소가 적힌 라벨을 붙인다.
그전에는 상단 하단 다 손으로 썼는데 막판에 가면 힘들어서인지 안 그래도 세미 악필인 글씨가 더더더욱 개발새발 되기에
내 주소는 프린트한 걸 풀로 붙인다(스티커 형식의 라벨지는 비싸기 때문에 쌩노동으로 원가 절감).
소식지는 일일이 비닐봉지에 넣은 후(환경을 생각하면 이러지 말아야겠지만 잉크젯 프린트기로 출력하기 때문에 비에 젖거나 습도 높은 날에는 잉크가 번져서 어쩔 수 없다)다시 봉투에 넣는다.
봉투 입구를 풀로 붙이면 끝. 예전에는 테이프로 붙였는데 이렇게 하면 요금이 더 비싸다는 걸(그래봤자 몇 원이지만) 알고 나서는 풀로 붙인다(원가절감에 진심인 가내수공업자).
우체국에 가서 일반 우편으로 보내면 끝. 대개 2~3일이면 도착하는데 대구 사는 친구는 지난달에 이주나 지나서 받았다고 한다(대구가 옥천 허브도 아니고 뭔 일이 있었나요?).
2년간 말일이 되면 항상 같은 우체국에 가서 부치다 보니 이제는 "등기 아니라 일반 우편 맞나요?"라고 물어보지도 않으신다. 이렇게 하면 소식지 작성부터 발송까지 끝.
원래 반나절이면 작성을 다 하고 오후에 발송하는데 이번달에는 아이가 옆에서 쉬지 않고 쫑알거리며 방해하고(방학입니다...) 새해라 디자인을 변경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서 하루종일 잡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쓸데없는 내 일상다반사를 적은 소식지를 왜 보내는 걸까.
아마도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고, 관계에 에너지 쏟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라
친구도 많지 않고,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하며 살다 보니
문득 이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 나 홀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인들이 소식지를 서두로 말을 건네어(대개는 카톡으로)
내가 만든 가상의 적막상태가 깨지면
내가 혼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스레 인식하게 된다.
온전히 혼자였던 적도 없고, 외로움에 사무친 적도 없었는데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나이가 들어서 센티멘털해진 건지 아니면 어른이 되려고 천 번을 흔들리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소식지를 쓰는 나로서는 한 달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고
받는 이에게는 '우편함을 뒤적이고, 언제 오나 기다리는 기쁨'이 된다고들 하니 꾸준히 쓸 수밖에.
소식지를 위해서라도 꼼지락 거리게 된다.
소식지 쓰느라 술을 못 마셔서 금주 4일 차 성공.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