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패한 프로젝트를 이력서에 쓰는 이유
날아오는 럭비공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안다.
럭비공이 얼마나 예측할 수 없는 궤적을 가지는지.
그래서 럭비의 득점은 골이 아니라 트라이다.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공을 붙잡기 위한 수많은 시도와 도전에 대한 찬사를 담아.
그러니까 럭비는 결과가 아니라 시도와 도전의 과정이다.
매 순간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덮쳐오는 태클에 굴복하지 않는 과정.
그래서 우리는 럭비를 한다.
재밌게 봤던 '트라이: 우리는 기적이 된다'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보통 스포츠에서 득점은 골(goal)이라고 부르는데, 럭비는 특이하게도 트라이(try)라고 부릅니다.
드라마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이 대사가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유독 힘들고, 지치는 날이면 더 그렇습니다.
원래 럭비에서 진짜 점수는 골대 사이로 공을 차 넣는 것이었습니다. 상대 진영 끝까지 공을 가져가 땅에 찍는 트라이를 한 팀만이 득점을 시도할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룰이 바뀌어 트라이 자체가 큰 점수가 되었지만, 이름만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저는 이 단어가 럭비를 가장 멋지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점수판에 찍히는 결과보다 일단 끝까지 가본 사람의 시도 그 자체를 인정해 주는 느낌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제 인생도 럭비공과 같았습니다. 15년 전 건설회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과장 승진을 앞두고 퇴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관련도 없는 IT로 산업을 완전히 전환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는 커리어 브랜딩 관련 IT 서비스를 창업해 운영 중입니다. 다만 저는 누군가에게 "실패해도 괜찮다", "도전해라", "변수를 즐겨라" 같은 멋진 말을 할 만큼 잘 살아온 사람은 아닙니다. 여전히 도전이 두렵고, 매일이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사실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요. 정확한 방향으로 시도해 본 사람에게만 기회라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 글은 저의 브런치 100번째 글입니다. 원래 저는 글재주가 없어 글을 쓸 거란 상상조차 못 했던 사람입니다. 그저 '내가 만든 서비스를 어떻게 진정성 있게 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 하나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깨달은 점도 있습니다. 저는 대단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저 중간에 멈추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요.
창업 후에는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고, 훨씬 더 힘듭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기에 오늘도 달리고 있습니다. 점수가 보장되지 않아도,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도, 일단 공을 찼고 달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우리는 이력서에 완벽한 '골'만 적으려 합니다. 하지만 커리어는 결과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력서에 시도한 흔적을 남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공만 나열된 이력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했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에 대한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프로젝트여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통한 성장입니다. 실패를 이력서에 적는다는 것은 '나는 틀릴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게 아니라, '나는 시도했고, 시도를 통해서 성장했으며, 다음에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실패를 숨기면 결과만 남고, 실패를 기록하면 성장 방식이 남습니다.
럭비에서 트라이가 끝까지 가본 기록이라면, 골은 그다음 기회를 완성하는 추가 시도입니다. 커리어 역시 내가 끝까지 밀어붙여 본 트라이들이 쌓여 결국 골이라는 기회를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저는 지금 운영하는 서비스를 통해 결과만 나열하는 이력서가 아니라, 시도와 전환의 맥락이 보이게 커리어를 정리하는 경험을 만들고 싶습니다.
AI가 판치는 시대에 이런 인간적인 서사가 자신만의 차이를 만들어 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럴듯한 문장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내가 어떤 시도를 했고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왔는지는 오직 나만의 고유한 영역이니까요.
럭비공이 튀는 방향은 통제할 수 없어도, 달릴지 말지는 내가 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한 그 무모한 시도가 머지않아 나에게 득점할 자격을 가져다줄지도 모릅니다. 저의 100번째 시도가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