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스러움이라는 새로운 결격 사유
"AI 흔적을 지우세요. 그럼 합격 확률이 올라갑니다."
최근 정부지원사업 사업계획서 작성에 관한 강의를 듣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심사 피드백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AI스러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장 자체가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매끈해서 오히려 작성자의 고유함이 빠진 글처럼 보이는 순간이 감점 포인트가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AI스러움은 이런 모습입니다.
많은 추상어 : "혁신/최적화/고도화/시장성" 같은 말이 근거 없이 반복됩니다.
완벽한 구조 : 문단은 매끄러운데, 이유/서사/검증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리스크 없음 : 비용, 시행착오, 반대 의견, 실패가 사라져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과거에는 오타 없는 완벽한 문장과 논리 정연한 구조가 합격의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AI라는 정답을 가지고 있는 지금, 완벽한 문장과 논리는 오히려 자신의 고민이 부재함을 증명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채용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쓴 자기소개서는 누구라도 준비된 인재로 만들어주지만, 역설적으로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게 만듭니다.
영화 <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사만다에게 묻습니다.
- 테오도르 : "지금 다른 누군가와도 얘기하고 있는 거야?"
- 사만다 : "네."
- 테오도르 : "몇 명?"
- 사만다 : "8,316명이요."
- 테오도르 : "다른 누군가와도 사랑하고 있어?"
- 사만다 : "... 641명이요."
사만다는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가장 완벽하고 최적화된 대화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테오도르에게 그 대화는 더 이상 특별한 관계가 아닌 많은 데이터 중 하나로 전락합니다.
우리가 제출하는 사업계획서나 자기소개서가 AI의 손을 빌려 완벽해질수록, 평가자는 사만다를 마주한 테오도르처럼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요? 작성자가 만든 문서가 평가자에게 던지는 간절한 설득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 중 하나라면 그 서사는 힘을 잃고 맙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답을 찾는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정답을 낼 수 있는 시대에 정답의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저는 이 현상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획일화된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요. 이제 평가의 기준은 '누가 더 정답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나다운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AI의 문장 : "이 사업은 시장성이 높고 효율적입니다."
나의 문장 : "현장에서 10번의 거절을 당하며 이 기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AI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밤잠을 설친 고민과 실패의 흔적입니다.
영화 속 테오도르의 직업은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대필 작가가 아니라 의뢰인의 삶을 관찰하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심을 발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조차 사만다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화려한 수식어도, 상대가 듣고 싶어 할 법한 정답도 아닌, 자기 자신의 언어로 쓴 편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사만다가 떠난 뒤 테오도르가 전 부인에게 쓴 편지에는 멋진 문장 대신 서툰 진심과 사과가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그 글이 조금 투박하고 거칠어도 괜찮습니다. 평가자가 정말로 기다리는 건 잘 정돈된 AI의 문장이 아니라, 행간 사이에서 느껴지는 나의 고민과 떨리는 진심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나의 부족함과 고민을 조금 더 드러내 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8,316명 중 한 명이 되는 길을 포기할 때, 비로소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 테니까요. 획일화된 정답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만이 낼 수 있는 유일한 답을 차분히 적어 내려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