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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밥솥! 난 에어프라이기"

by 나르샤

저녁이 되면 아침에 먹을 밥을 준비한다.

전기밥솥에 현미를 넣고 예약을 맞춘다.

“오전 6시, 맛있는 현미밥이 준비됩니다.”

이 멘트를 듣고 나면 마음이 든든하다.

아침 6시에 따끈한 밥이 준비된다니, 기분 좋은 예고다.


이번엔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다. 아침에 먹으려고 예약을 맞췄다.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하며 160도 50분 설정하고 예약 시간을 맞춘다. 오전 6시까지 7시간 남았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아침, 두근두근하며 에어프라이어를 열었지만... 차가운 고구마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헐, 아직 아닌가?" 7시간 뒤에 요리가 완성되는 줄 알았는데, 7시간 뒤에 요리가 시작되는 거였다!


나는 에어프라이어가 밥솥처럼 작동할 줄로만 믿었다. 그저 내가 알고 싶은 대로 믿었을 뿐, 에어프라이어의 사용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결국 50분 후에야 맛있는 호박고구마를 먹을 수 있었다.


밥솥은 '완성되는 시간'을 예약하는데, 에어프라이어는 '시작되는 시간'을 예약한다는 차이. 조리 기기의 사용법을 알고 써야 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대화를 할 때도 이걸 깨달았다. 내가 “어제 아팠어”라고 말했는데 남편은 갑자기 “한 코스 가는 거야”라는 엉뚱한 말을 했다. 순간 서운할 뻔했지만, 생각해 보니 우리는 전혀 다른 속도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동 교통편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고, 나는 갑자기 아픈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서로의 속도가 달랐던 것이다.


내가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다.


타인과 대화하며 속도 차이로 이해가 잘 안 될 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너는 밥솥이구나”

“나는 에어프라이야.”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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