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쪽팔리길 잘했다.

by 나르샤

3월부터 매주 1주일에 한 번 월요일

연극 연습을 한다. 작품 제목은

굿 닥터 중 <의지할 곳 없는 신세>이다.

남편의 부족한 퇴직금을 은행 지배인에게 받아 내고야 마는 집요한 부인의 이야기이다.


연극은 팀으로 이뤄진다.

내가 대사를 암기하지 못하면 상대가 연습을 할 수 없다.

상대가 에너지 50으로 주면 50만큼 연습하게 된다.

상대의 에너지가 왔다 갔다 하면 연습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만약 A가 화를 내는 대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화를 내는 연기를 못한다면? 연출가님은 화를 못 내는 연기자에게 말하지 않는다.

B인 상대 배우에게 요구를 한다. 화를 낼 수 있도록 상대 배우가 액션, 억양등을 넘겨야 한다. 그렇기에 연극은 혼자서 잘할 수가 없다. 호흡이고 소통이고 시너지이다.



지난주 정말 쪽 팔렸다. 6개월이나 연습을 했는데 아직 대사를 다 못 외웠다. 중간에 자꾸 생각이 툭툭 끊어진다.


세상에 6개월째 대본을 못 외운다는 게 말이 되냐?

대사를 주고받는 중 "죄송합니다. 다음 대사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부끄럽고 팀원에게 미안했다.

연출가님께 죄송했다. 취미로 하는 것이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겁게 연습하자라는 말씀에 더 부끄러웠다.

스스로 "좀 맞자!"라고 되네였다.

배우 이순재 님이 "대사를 못 외우면 그땐 배우를 그만 둬야해" 말씀하셨다. 그 만큼 대사 암기가 기본인 것이다.



쪽팔림 이후

한 주 내내 대본을 들고 다녔다.

버스에서 대본을 읽는 날 보고 남편이

"연극인 다 되었네. 다니면서도 대본을 보고" 라고 말했다.

이번 주도 대본을 모르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혼자서 마음이 쪼였던지...

연출가님이 꿈에 나왔다.


쪽팔리지 말자! 두둥. 수업시간이 다가왔다.

대사를 외운다고 외웠는데, 완벽하진 않았다.

지난번 기억나지 않던 대사가 오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연습량이 쌓였나 나보다. 편하게 대화가 오갈 수 있었다.


쪽 팔려 봐야 한다.

쪽 팔린 그 자리가

내가 현재 실력과 마주하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부끄러움의 마음으로

한 단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쪽팔림이 부끄럽고

가슴 아프고

힘들지만


죄책감은 조금만 가지고

더 나아질 수 있는 액션을 하자!

과거에 무엇을 안 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고 실력을 채워가자.


나는 쪽팔렸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km 마라톤 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