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Sep 02. 2021

복직까지 한 달

휴직 490일째, 민성이 D+739

'뭐니 뭐니 해도 산책 후에 먹는 간식이 제일 꿀맛이죠!' / 2021.9.1. 우리 집


9월이다. 예정대로라면 난 딱 한 달 후에 복직한다. 아직 별 감흥은 없다. 정장을 갖춰 입고 회사에 딱 발을 내딛는 순간에야, 아 내가 다시 돌아왔구나 싶을 것이다.


어제(1일) 아침, 식탁에서도 이 이야기를 했다. 민성이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아빠 한 달 후에 회사 가, 라고 했더니 그가 돌연 손가락으로 주방을 가리켰다. 민성이에게 아빠 회사는 주방인가 보다.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직장이 두 군데야. 하나는 주방, 하나는 방송국." 아내는 옆에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 나도 다시 회사를 간다는 게 어색한데 아이는 오죽하랴.


아이 어린이집을 보내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갔다. 개봉 첫날, 그것도 평일 오전에 영화를 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 지낼 수 있는 날도 이제 한 달 남았다.


민성이를 데리러 가는데 날씨가 정말 좋았다. 아침에 비가 내린 뒤라 하늘은 맑고 바람은 적당히 선선했다. 일을 할 때는 하늘 한 번 쳐다보기가 쉽지 않다. 휴직이 끝나가니 자꾸 이런 생각만 든다.


민성이도 날씨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오랜만에 아이와 산책을 했다. 그는 여름 내내 집돌이였다. 시원해진 날씨를 귀신 같이 알아차린다. 누굴 닮았는지, 제 몸을 끔찍하게 아낀다.


어린이집 주변만 조금 거닐다 집에 들어가려나 했는데, 그의 시야에 돌연 강아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민성이는 강아지를 쫓아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민성이는 거의 옆 아파트 단지까지 오고 나서야 자신이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그는 날 향해 손을 뻗었다. 이렇게 많이 와놓고서, 이제 와서 안아 달라니. 


민성이를 번쩍 안아 천천히 집으로 걸어왔다.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싸 별로 힘들지 않았다. 평일 낮에 이렇게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것도 한 달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순간 민성이 몸이 깃털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

매거진의 이전글 말 좀 되는 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