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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Sep 06. 2021

육휴 정산(3) - 아이를 향한 시선

휴직 494일째, 민성이 D+743

'죄송한데 지금 말 걸지 말아 주실래요? 막 영감이 떠올랐거든요.' / 2021.9.3. 어린이집


주말에 아이를 재운 뒤 집에서 아내와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한 편 보는 건, 삭막한 육아 라이프에 단비 같은 즐거움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고를 때는 매번 신중하다.


그제(4일) 우리의 선택은 배우 한지민 주연의 2018년작 '미쓰백'이었다. 넷플릭스 영화 목록을 뒤적이다 매번 한 번 봐야지 생각했던 작품이었다.


영화 예고편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주연 배우의 다소 과격한 연기 변신이었다. 흥미로웠지만 사실 그게 다였고, 한 번 봐야지 생각만 하고 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지만, 1시간 반 뒤 매우 무거운 마음으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배우의 연기 변신은 영화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영화는 아동 학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손에 꼽을 만큼 영화에 몰입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마주한다는 건 언제나 불편한 일이다. 하물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민성이를 낳기 전에도 이런 이슈를 접하면 불쾌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불쾌함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수준에 그쳤다. 가슴까진 잘 내려오지 않았다. 직업 때문인지, 어쨌든 난 그 점에서 아내와 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다. 일단 가슴이 먼저 반응하고, 그걸 머리로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단순히 분노에 그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하자고 다짐한다. 


육아휴직을 쓰고 정말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아이들을 향한 나의 시선이다. 전에도 아이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이도 어른처럼, 보기에 예쁜 아이도 있고 미운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모든 아이들이 다 민성이로 보인다. 엄마 품에 안겨있건, 유모차에 앉아있건, 길 위에서 뒤뚱거리던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아빠가 돼서 변했고, 육아휴직을 해서 더 변했다.


기회가 된다면 회사에 돌아가서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아이들 살기에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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