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Jun 30. 2021

딜도와 비행기

섹스토이에 대한 정신보건학적 접근

오늘은 자살방지교육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기본적인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정신에도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전의식이라는 영역이 있듯이 지식에도 앎과 모름 사이에 '짐작은 하고 있었음'이라는 대역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였냐면, 바로 자살위험을 낮추고 삶을 유지시키는 3가지 요소에 대한 정리였습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사람들, 신념/가치관/태도, 물건. 앞의 두 가지는 너무 당연한 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물건? 물건은… 그렇지요. 물건도 맞는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정말 물건만큼 우리가 일상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직접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유지하는 기제라고 지목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물건에 의존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의존하는 물건들에 대해, 아마 그것이 없어지면 아주 힘들 것이고 반대로 그것이 충분히 잘 작동할 때 아주 행복할 물건들을 생각해봅니다. 때로는 그런 물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정말 결정적인 안전벨트로 작동하기도 할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정말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이돌 덕질을 하면서 견디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단지 아도르노적인 입장에서 문화산업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물건은 세속인가요, 환상인가요, 껍데기 뿐인가요? 환상의 세속적 껍데기라는 규정이 맞더라도 설사 맞더라도 저는 사람들을 버티게 해 주는 그 힘이 그것에서 사라지지는 않는 듯합니다. 우리는 물건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아끼는 물건을 갑자기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은, 자살방지를 위해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고 우리는 교육받기도 합니다. 지난 몇 천 년 동안 지구 사회의 담론장은 엄청난 편향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존재이고 가급적이면 더 고귀한 정신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철학과에서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서 하루종일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 신영복 선생님은 서양철학이 존재론의 사유이고 동양철학은 관계론의 차이이며 우리는 보다 공동체적이고 통합적인 미래를 위해 동양철학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아시아와 유럽이 감자농사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듯이, 동서양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정신주의적이라는 측면에서 아예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이 중요하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모두 거대한 신경 버튼 다발입니다. 우리는 공중을 떠다니는 영적 에너지보다는 감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감자보다는 보잉747 여객기 계기판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물론 사람들 가운데 말하는 보잉747보다는 말하는 감자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전기화학적인 신호와 배선의 배치에 따라 일어난 의식과 통찰과 사상과 의지를 가진 동물성 생체 보잉747입니다. 여객기가 하늘을 나는 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물리적 체계 덕분인 것처럼, 우리가 저승으로 곤두박질치지 않고 이승의 하늘을 마음껏 날고 있는 것도 '결과적으로 아무튼 돌아가는 모양새로 진화된 물리적 실존' 덕분입니다. 


비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버튼을 눌러 주어야 합니다. 이륙을 하고 나서는 바퀴를 넣어야 하고, 실속이 발생하면 재빨리 기수를 내려서 속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체의 수많은 신경 다발과 장기에 바람직한 자극과 입력을 계속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인체는 혈액이나 영양의 예비저장소와 항상성 덕분에 비행기보다는 좀 대충 조종해도 되고 몇 가지 입력은 까먹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래 아무렇게나 방치하면 큰일납니다. 늘 소모하고 나면 새로운 갈구를 생성하는 인체를 다시 충족해주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물건입니다. 주로 물건입니다. 인간관계와 내면의 세계관도 큰 역할을 하지만, 적절한 물건들이 주는 서비스가 없으면 우리는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물건이 기쁨을 준다라…. 물건이 삶을 살아가는 지지대가 되어 준다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딜도. 딜도 말입니다. 딜도도 물건이지요. 그리고 또 세상에는 그에 준하는 물건들과 그에 해당하는 상동 기관(homologous organ)에 적용하도록 만들어진 다른 물건들이 있습니다. 포크레인이나 다시다처럼 일반명사화된 상품명인 새티스파이어와 텐가도 대표적인 남매들입니다. 성기구의 역사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엔 다시 통계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비행기에 대한 모든 통계적인 사유가 결국에는 안전과 경제성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이, 섹스토이에 대한 통계적인 사유도 결국에는 인간의 삶과 행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 질문은 단순합니다. 딜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성기구가 주는 기분 고양 효과와 우울 제거 효과 덕분에, 절망감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애착을 불태우고 다시 희망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수적인 동양 집단주의 유교문화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성기구를 안좋게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는 그건 다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성기구 산업의 종사자에게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건강을 위해 주기적으로 분비되어주어야만 하는 주요 신경전달물질들, 예를 들면 도파민 · 옥시토신 · 엔도르핀을 즉각적으로 분비시켜주는 섹스토이는 그 자체로 인간의 매우 강력한 생존 수단이자, 사람을 이승에 꼭 붙어있게 하는 강력한 자석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삶의 희망과 즐거움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립니다. 위태로운 기쁨들을 어떻게 소나기로부터 지켜내고 유지보수할 수 있을까요? 때로 삶의 희망과 즐거움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사실, 설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의 비행이 끝난 여객기를 말로 구슬려서 다시 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듯이요. 말과 논리가 아닌 물질이 비행기와 사람을 다시 날아오르게 합니다. 고갈된 비행기의 연료와 소모품을 다시 넣어주듯이, 슬픔과 비탄에 찬 사람에게는 그의 꺼져 있는 쾌락과 행복의 회로를 다시 한 번 뛰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저는 절망에 흔들리는 사람을 말로 설득하는 것이야말로 과대평가된 낭비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설득은 체험입니다. 그 사람의 몸이, 그 사람의 감각과 쾌락이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이 안으로 일어나는 것이 진정한 설득입니다.


인간을 이승에 묶어놓고 저승에 가지말라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승이 저승보다 더 나은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왜 살아야만 하는가? 왜 나는 자살하지 않고 아득바득 살아야만 하는가?" 당위에 대한 물음은 좋은 질문이 아닙니다. 대신 성냥에 불을 붙이듯 모든 인간에게 이미 존재하는 쾌락의 신경 경로를 발화시켜야 합니다. 이유는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았을지라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왜 살고 싶은가? 왜 나는 자살하지 않고 아득바득 살고 싶은가? 그 이유를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 진정한 설득입니다. 


내면의 욕구와 욕망보다 강한, 내적 동기보다 강한 추진력은 없습니다. '모든' 심리학자와 정신과전문의가 식사 · 수면 · 운동을 정신건강의 기본 3대 요소로 꼽는 까닭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식사/수면/운동은 인간에게 늘 적정 농도로 유지되어야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주기적으로 공급해주는 일종의 연료 펌핑이자 윤활유 교환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그런 것이 사람을 이승에 머물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그렇다면 거의 예외없이 무조건적인 오르가즘을 즉각적으로 공급하는 새티스파이어(우머나이저)나 딜도 혹은 텐가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설비들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일들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기에 결국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바, 섹스토이가 거뜬히 방어해내었던 너무나 안타까울 뻔한 죽음들이 얼마나 무수하겠습니까? 그리고 피부에 확 와닿도록 자본주의적으로 말하자면, 섹스토이 덕분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공지출과 사회적 비용을 절감했겠습니까?


성기구가 인간의 자살률을 얼마나 낮춰주는지 구체적인 숫자를 구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장기 종단 연구를 하자면 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그것보다 더 급한 연구분야가 많으니까요. 우리는 충분히 잘 작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습니다. 섹스토이도 어느정도 수준에서는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섹스토이라는 분야에 대하여 여전히 사회적으로 여전히 중간 정도의 터부시와 낙인이 있기는 하지만, 별다른 심각한 규제나 중대한 사고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들이 지금도 조용히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빵사의 짤주머니처럼, 삶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을 원할 때마다 조금씩 주입해주는 고마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별 문제 없이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이 나에게 온 경로도 있겠지요? 그 물건을 생산하고 유통해주는 산업이 있고, 그 산업의 종사자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실 별다른 것이 아니라 성인용품 산업(섹스토이를 성인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사실 성인용품은 틀린 말이지만 관용어이므로 한 번 언급해 보았습니다)과 내가, 그리고 성인용품 사업과 자살률이, 그리고 성인용품 사업과 인간의 장수와 행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조용한 기여와 보시(布施)들에 똑같이 감사를 느끼고 똑같이 잘 대접해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상하수도 시설도 섹스토이 산업만큼이나 그럭저럭 잘 동작하지만, 깨끗한 물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워도 섹스숍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를 포함한 전세계 시민들은 성기구 (또는 섹스토이) (또는 성인용품) (또는 자위기구) 산업의 종사자들을 안 좋게 보지 말고 정말로 깊은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친구들의 생일선물을 챙기면서 멜론부터 장지갑까지 다양한 종류의 선물을 해 보았습니다만, 새티스파이어만큼이나 일관적이고 변함없이 극찬을 받은 천재적인 선물은 없었습니다. 섹스토이는 정확하고 폭발적인 쾌락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친 신경회로에 삶의 의지를 퍼부어주는 강력한 펌프이자 절망의 소화기입니다. 그것은 심지어 윤리적입니다. 여성의 신체적 · 정신적 건강을 제물로 바쳐서 얻는 포르노 산업은 앞으로도 절대 쉽게 용서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석유계 화합물로 만들어진 자위기구들이 굳이 착취하는 것이 있다면 중생대 시절 고사리에 불과합니다. 사실 그것도 세월이 지나며 시커먼 참기름 같은 것이 되었고 지금은 주로 분홍색이지만 말입니다.


섹스토이를 자주 씁시다 여러분. 그리고 섹스토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사와 존경을 보냅시다. 저는 독자 여러분을 포함한 이 세상 사람들이 윤리적인 방식으로 건강하게 장수하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관심없는 것은 신성화(神聖化)입니다. 섹스를 권하지만 그것이 무언가 신성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런 설정놀음에 관심없어요. 오직 보건상의 이익이 크기 때문에 권합니다. 이것은 평소에 식사 잘 하시고 제때 주무시고 정신보건서비스를 가까이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항정신병약을 복용하는 것과 섹스토이로 자위하는 것은 사실 비슷한 표적기관에 작용하는 비슷한 행동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정신을 맑고 행복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허위적인 보수 유교 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갈구하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이 아니라, 잘 교육받았을 뿐인 동물임을 잊지 마세요. 제가 침팬지 수의사였어도 침팬지에게 똑같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진화의 현주소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티스파이어와 주미오… 혹시 아직도 보급되지 않은 가구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추천합니다. 바이럴마케팅 아닙니다. 광고 아닙니다. 인류의 장기생존률을 높일 수만 있다면, 천 가지 만 가지의 시중 상표명도 다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이어트중인 전 인류가 제로콜라를 추천하고, 기계적인 결함에 맞서는 전 인류가 입을 모아 WD-40을 추천하듯이 말입니다.



건강하신지요? 그러면 됐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hoto by Mo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어리석지 않기를 요구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