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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n 24. 2021

어리석지 않기를 요구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지킬 책임이 있다. 어리석음의 대가는 너무 크기에.

힘들다.

학부 졸업 후에 잠시동안 대리외상(간접 트라우마)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정작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오늘처럼 이렇게 너무 끔찍하고 피해자가 몇 번이고 죽을 뻔한 범죄 피해 기사를 접한 날은

아무 일이 잡히지 않는다.


깊은 분노는 중요한 것만 남기고 안 중요한 것들을 털어내 주는 힘이다.

이런 날이면,

그동안 내가 예의상 견지했던 모든 '정치적으로 올바른' 담론들이 증기처럼 사라지고,

진짜 인간을 아프게 만드는 진짜 원인 가운데에

'우리가(이 세상 사람들 중 누구 하나라도) 개입할 수 있었던 것'

그래서 '결과를 바꿀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결과를 바꿀 수 있었던 요인...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에 치가 떨린다.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약자가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범죄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막을 수도 있었던 일이다.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범죄를 모두 '사회적 구조의 탓'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공허한 말이다.

당신은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가, 아니면 한 사람의 개인을 바꿀 수 있는가?

나라 전체를 바꿀 수 있는가, 아니면 한 번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가?


개인을 위해서, 개인을 위하여, 개인이 어리석지 않게 행동할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데

스스로 파멸적인 전략을 수정하고 협박에도 굴하지 않도록 훈련시키고 요구해야만 하는데

내가 그렇게 주장하면 왜 그것을 구조맹이라고 하고, 왜 피해자탓을 하느냐고 한다.

피해자탓 하는 게 아니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 피해자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막을 수 있었던 일들이 너무 많다. 

막을 수 있었던 범죄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짐승같은 인간들의 흉악하고 추악한 범죄행위를 규탄하는 것에 나는 관심없다.

그것은 규탄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찰들이 없애 주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이곳.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계와 시민사회가 사이코패시 전수검사를 실행해서 

기준치 이상 인간쓰레기들은 전부 동해 앞바다에 던져버리는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

나는 진짜 그러고 싶어! 악마를 본 적 있니? 악마를 본 적이 있다면

'이 사회는 피해자 인권은 뒷전이고 가해자들 인권이나 챙겨준다'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의 일갈에 대해서

일부 좌파들이 지껄인 PC한 비판들에 너털웃음이 나올 것이다.

나는 범죄자들 전부 동해 앞바다에 쓸어넣고 싶어.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니까.


물론 우리는 문화도 바꿀 수 있다.

여성혐오 문화, 강간 문화, 가부장주의 문화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문화를 바꾼다는 말처럼 '실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문화를 어떻게 바꿀건데?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 바꾸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성폭력은 다 남자 탓이 맞다. 그래서 남자애들 성교육을 했다고 치자. 

그 교육의 효과량을 어떻게 검측할건데?

물론 효과야 있겠지. 그래서 그게 충분해? 예를 들면, 성교육이 성매매산업을 없앴어?


성교육으로 성매매산업을 어떻게 없애냐고. 혹은 성교육으로 성폭력을 어떻게 없애냐고.

당연히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히 있겠지.

그 교육이라도 없으면 이 세상은 마굴이 되겠지.

그런데 그런 공공교육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미친놈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범죄자들은 건전하고 아름다운 문화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아.

그런 문화에 영향을 안 받으니까 범죄를 저지르지.


그건 정상적인 인간의 손을 떠난 가해자들의 일이잖아. 

가해자들은 범죄가 터진 이후에야 겨우 통제할 수 있다.

우리는 잠재적 피해자들에게 (예를 들면) 성매매산업에 편입되지 않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잠재적 피해자들이야말로 피해 발생 이전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가장 개입가능성이 큰 집단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책무성은 우리 행위의 영향력 가능성에 의해서 생성된다.

우리가 아무리 난리 부르스를 쳐 봐야 가해자를 바꿀 수 없다면 그건 이미 우리 손 떠난 거야

형사들이 잡아주기를 기다려야 돼

하지만 우리가 노력해서 모든 잠재적 피해자에게 자기방어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 책무가 있는 거야!


악마들은 아무리 감옥에 잡아넣어도 도시의 틈새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어리석음을, 

바로 그 어리석음부터를 박멸해야 한다.


문화 정화 운동은 해야지.

그렇지만 그건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걸 막는 거지, 상황을 해결해주는 게 아니야.

시인 김수영이 '그림자 없는 적'과 싸우는 게 엿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게 딱 그 꼴이다.

조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하는 것과 똑같은 꼴이다.

'테러리즘' 그 자체를 도대체 어떻게 이길건데?


이 개 같은 남자 새끼들의 성폭력 문제는 

무슨 추상적인 문화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육체 단위의 현실에서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정화 운동으로 도저히 컨트롤할 수 있는 관건이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나무위키를 어떻게 이기냐?

네오나치처럼 극우화되고 여성혐오화되어가고 있는 2030 남성을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여성학계와 교육계와 그 역할을 맡은 공공기관이 막아냈는가?

막아냈으면 지금 2030남성이 나치가 되어 가고 있겠나?


오늘날 여성가족부, 교육부의 잠재적 가해자들에 대한 영향력은

MLB파크, 일베, 클리앙, 네이버 댓글 창, 

성매매 후기 사이트보다 못하잖은가!


그뿐인가?

그 어떤 교육도 통하지 않는 진짜 인생을 내던진 범죄자들,

인간이기를 포기한 범죄자들이 아직도 세상 곳곳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교육이 통하지 않는 잠재적 가해자들을 어떻게 교육으로 이기는가.

교육이 통하는 잠재적 피해자 집단에 대해서 교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잠재적인 피해에 대한 대응훈련을 제공하고

피해상황 안에서도 버티고 대응할 것을 요구하는 개입이

왜 망할 피해자책임론과 동치되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책임이 없어도 원인은 있을 수 있다.


'윤리적 책임'과 '물리적 귀결에 대한 원인 제공 여부(인과관계에 대한 책임)'은 다르다.

내가 이슬람 반군이 점령한 곳에 제 발로 찾아갔다가, 포로가 되어 참수되면

'윤리적 책임'으로 보자면 당연히 나를 참수한 이슬람 반군이 잘못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슬람 반군이 점령한 지역에 가지 않았어야 했다.

물리적으로 내 발을 움직여서 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 가서 죽은 게 내 잘못이 아니지만, 내 행동이 원인이 된 것이 맞다.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어리석은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지!


참혹한 결과의 물리적인 원인이 되는 행위는 바로 나에게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도덕적인 잘못은 없겠지만, 다음부터는 더 안전하게 행동하기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연구하고 정리해야 한다.


피해자가 범죄피해의 대상이 된 행위 경로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다르게 해야만 했던' 오판과 어리석은 행동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혹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이러지 말라고 말을 해 줘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단지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범죄자를 감옥에 처넣을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은 그냥 인간세계에 속하길 포기한 놈들이고

그렇기에, 범죄는 이미 터진 다음에야 우리가 개입할 수 있다.

범죄가 터지기 전에도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잠재적 피해자들이란 말이다!


우리는 기술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피해 안 당할 수 있도록 방어하고 회피하는 기술을 교육해야 한다. 

그렇게 안 가르치면 어쩔 건데?

성범죄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 탓이라는 당연해빠진 소리나 하고

남자애들 성교육하면 우리 책무성이 끝나냐?

여자들에게 범죄 패턴이 이러이러하니 조심하고, 범죄 당했을 때 

대처법은 이러이러하니 유사시 그대로 하라고 교육하는 것이 

범죄피해를 여자 탓으로 돌리는 행위라고?

그런 순진하고 꽉 막힌 발상이 진짜 여성들을 위험하게 만든다.


성매매도 마찬가지다. 다른 모든 범죄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상품 취급하는 남성 문화가 문제라고? 그게 성매매의 원인이야?

그래 맞아. 그게 원인 맞지. 

근데 그러면, 성매매피해자를 없애기 위해서 문화 정화 운동을 하면, 

성매매가 사라집니까? 

포주들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인데, 걔들이 '문화 정화 운동'에 영향을 받을까?

그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자들을 막아야 한다.

그게 진짜 피해자를 예방하는 행위이다.

그게 우리의 책무성이다.


피해를 당하는 것은 절대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

어리석지 마라.

항상 준비되어 있어라.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마라.

그것이 당신의 책임도, 잘못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범죄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리석지 않을 책임이 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야.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을 지키는 행위를 해야 한다.

서로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더이상 여자들이 성매매 산업 때문에, 

가출청소년 성착취 때문에,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IPV)때문에,

강력범죄와 습격형 범죄 때문에 인생 좆되는거 보고 싶지 않다.

좀 그만 좀 보고 싶다고 씨발

여자들을 무장시켜야 돼. 단지 권총이 아니라도. 훈련을 통해서라도.


"남자들이 저지르는 범죄인데 왜 남자가 아니라 여자한테 요구하시죠?"

라고 하는 말 그만 듣고 싶어.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대안이 있어?

잠재적 피해자에게 방어기술과 현명한 상황대처를 요구하지 않고 생존률을 올릴 수 있어?


그럴 거면 외교부에서 여행금지구역은 왜 지정하냐? 

피해자는 잘못 하나도 없고 다 이슬람 반군 잘못인게 맞는데.

근데 참수당하고 나서 누구 잘못인지 따지는게 참 보람있겠다 그치?

개인 단위에서도 최대한 피해를 예방하고 감경해봐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더이상 '정치적 올바름' 정당성 싸움하기 지쳤어.

인생 진짜 박살나는 인간들을 구하고 싶어.

그걸 위해 책임지울 수 있는 인간에게는 무조건 다 책임지워.

그게 자기 자신일지라도.


일단 사람을 살려놓아야 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학적으로 생존률을 높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입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문과들은 일이 다 끝난 뒤에 달려오게 내버려 둬. 

수학이 가장 먼저 도착한다.

어떻게든 살려내야 해.











Photo by Nik Shuliah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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