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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Mar 18. 2020

드높은 이념의 찬가

나루시선, 12

드높은 이념의 찬가


                                서나루



1절.

김수영을 따돌릴 수가 없다. 시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유구한 샤리아를 섬기는 친구들이 폭탄을 터트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을 때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함석헌의 씨알이었겠는가? 우리가 집속탄 대신 정신을 수출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논설. 변증법적으로 역사가 발전하고 믿음 속에 개벽은 올 것이라는 참으로 내 말이 억울, 아니 어눌해서 미안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씨알의 저항 정신이 있으면 유구한 정신이 있으면 시가 있으면 되는가, 무게를 견디기 위하여 삼성 하청에 들어간 네 사람과 모든 가난들처럼, 문정현 그리스도가 모든 침묵의 대속을 위하여 들어간 노역장처럼, 이렇게 내가 이름부르면 그들의 마음 속에 민중의 씨알이 싹트는가, 숭고는 현장에만 있고, 영웅처럼 있고, 김초원, 이지혜 같은 영웅들, 문상길, 손선호 같은 전설들의 이름을 부르면 무엇이 살아돌아오는가, 팔다리 다 잘려서 몸통만 뒹구는 양장본들과 난전 속에 고군분투하다 여러 군데에 칼 맞아 죽고 개중에는 씨멘트 바닥에 개처럼 끌려다니다 죽은 현장의 실무자들을 부르면


2절.

저 공장의 침묵이 죽은 아기처럼 뚝 그치는가, 숭고를 부르면, 하나님 나라를 부르면 여중생들이 그만 팔려가서 마지막으로 짜장면을 먹고 쇼크사하지 않는가, 핫라인 실무자들이라고 고액연봉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가, 다 어둑하여 사무실 히터 플러그를 뽑으면서 지어올리고팠던 드높은 이념의 찬가를 흥얼거려 본 적이 없겠는가, 너희는 뭐를 해주는가, 한 그릇이 완성되면 날계란을 풀고 후추를 뿌려 고소하고 알싸한 후추를 후추후추 뿌리면서 불고기 볶아먹는 한민족의 드높은, 이념의 후추, 유럽인들이 후추 한 번 쳐먹으러 수억을 쓸어버린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아름다운 후추, 후추후추, 너희들의 후추, 느그들의 후추, 느그 애비들의 후추, 느그, 느그들의, 느그, 느그, 후추가 안 들어가는 짜장면을 먹다 죽은 그는 언제 고소하고 알싸하고 김이 나는 불고기를 마지막으로 먹었을까? 


3절.

타임머신을 타고, 그가 마지막으로 숟가락에 더운 고기를 얹어 먹던 그 순간으로 가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아직 애비한테 맞고 쫓겨나기 전일까, 선생에게 개처럼 맞기 전일까, 사회복지사의 능력을 벗어나기 전일까,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을 깔기 전일까, 인터넷에 얼굴이 올라가기 전일까, 일진에게 끌려가 모텔방에 감금되기 전이기는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짜장면에는 후추가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러면 현장의 실무자들은 가물가물한 음절을 자꾸 기억해내려 흥얼거리고 전화만 걸어도 알아서 갖다주는 볶음밥에 짜장국물을 붓는 대신 번듯한 설렁탕 집에라도 가서 쇠고기가 듬뿍 든 사골에 뜨거운 공깃밥을 엎고 후추를 조금 말아 후 후 불어 먹기도 할 것이다. 

염병할 부고가 또 날아오는 대신에.


후렴.

아, 그러나 하나님 씨발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들은 씨발 저희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공장 안개, 더워지는 여름에 익숙해지듯 어느새 온 하늘에 뿌연 사람 연기, 800CC 법인차 와이퍼로는 이 매캐한 안개가 안 닦여, 차라리 우박이 내리거라, 우박, 아직도 TV에 나오는 저것들과 집행유예로 풀려난 저것들과 나까지 함께 대가리 다 깨버릴 수 있게 우박이 내리거라, 우박, 헤매는 석박사들의 골통을 다 깨부시는 후추알처럼 내리거라









(2018.03.26)

Photo by Delaney V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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