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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un 13. 2024

마음껏 사랑하며 살다 죽기로 한 거 아니었나?

깨끗하게 살다가 깨끗하게 죽기로 다짐하였던 흰 광목들이여,

당신은 상대방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언어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 관계를 규정하는 언어가 보장해줄 것만 같은 가상적 안정감과

그 가상적 안정감이 일시적으로 지탱하는 불안과 고독과 본인내면콘텐츠없음의 은폐를 사랑하는가?


(결혼 · 연애) 제도(언어)가 있어야만 내게 남는 사람은, 제도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사람이다.

(결혼 · 연애) 제도(언어)가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관계는, 제도 바깥에서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사이다.

(결혼 · 연애) 제도(언어)가 있어야만 내가 타인을 잡아둘 수 있다면, 제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유혹할 수 없는 것이 내 수준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원본을 원한다. 설탕 없는 진짜 과일의 단맛, 사양꿀 말고 천연꿀, 방부제 없는 과자, 유전자개량 없는 토종 옥수수….

그런데 왜 자꾸 사랑에는, 당신이 가장 순수하게 지키고 싶어하던 그 사랑에는, 갖가지 방부제 · 보존제 · 발색제 · 향료를 첨가하고 값비싼 예식에 계약서에 상대방의 가족까지 참여시켜서 산소호흡기와 강제고정장치가 덕지덕지 붙은 사이보그를 만들려고 하는가?


진짜 패배를 직시하기 두렵기 때문에?

진짜 성공이 언제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진짜 유혹, 진짜 실력 양성까지 가기 귀찮기 때문에?

영혼의 진정한 매력이 무엇인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치와 제도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의 힘으로 커다란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은 언제부터 영혼의 제단 위에 저울을 올려놓았는가!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행사하며, 마음껏 사랑하며 살다 죽기로 한 거 아니었나?

야수의 마음으로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바람 부는 초원에 눕기로 한 거 아니었나?

그 거대한 장치들이 당신을 지켜 줄 것으로 믿는가? 

누가 그,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기계의 입에 들어가가지곤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서 돌아왔는가.

생존한 야수들의 이름을 아는가?

용기와 자유가 우리의 영혼이 아니었는가?

진짜 사랑을 꿈꾸었던 정신들이여, 

깨끗하게 살고 깨끗하게 죽기로 다짐한 흰 광목들이여,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그냥 홀로 죽기로 맹세하였던 맑은 야성의 정신들이여!


뱃살이 접히지 않느냐, 일어서라!

사랑에서 이겨라, 대체되지 마라,

너 스스로 그 누구도 너를 대체할 수 없음을 알 때까지 담금질되어라!

발톱을 세우고 송곳니를 갈며 들판으로 가라!

표효하며 너의 바다와 초원을 지배해라!

그곳이, 진작에 네가 점령했어야 할 너의 영토다!




사진: UnsplashIsis França

사진2: UnsplashJordan Mc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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