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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Jan 23. 2020

외로움에서 알게 되는 용기와 낮춤

외로움은 나의 아쉬움이지 타인의 배신이 아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살필 때에, 의외로 같이 따라나오는 감정은 분한 마음이었다. 화가 난다, 분노스럽다, 언짢다와 '분하다'는 분명 다른 감정인데, 말 그대로 분한 것이다. 외롭지만, 내가 외롭다고 해서 굳이 먼저 전화를 해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느냐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른바 진정한 관계는 필요하다고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하다가 친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은 불교만큼이나 많은 교훈을 준다. 학습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에도 오만가지 자극에 노출된다. (정말 50,000개의 자극에 노출된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은 중립적이고 어떤 것은 혐오적이지만, 어떤 것은 아주 달콤하다. 그런 것들은 근접성이 있고 수반성이 있다. 특히 나보다. 그런데도 나의 친구들이, 아무리 오래 보았고 친하다고 '내가' 생각할지라도, 자기 생활 곳곳의 즉각적이고 달콤한 자극들과 더 가까운 곳에 사는 만나기 쉽고 평소에 통화도 자주 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마다하고 먼 곳의 나에게 전화라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나 비과학적이고 양심 없는 것이다.


내가 조건형성을 시키지 않은 개가 내 종소리에 침흘리기를 바라는 것은 얼마나 양심 없고 동시에 비과학적인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원하더라도 만물이 프로토스의 칼라라든지 영혼의 인터넷 따위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상 그것은 나 혼자만의 애닳는 마음이라는 것. 그것을 알고 맨 첫 번째 조건형성부터 시작하는 것이, 자연에게 다가가는 마음이다. 조건형성이 될 때까지 수십 번, 수백 번을 내가 먼저 시행해야 한다. 어떤 분함도 어떤 망상도 없이 내 주머니를 털어서 고기를 주고 종을 흔들어야 한다. 과학은 우리가 자연 앞에서 관념이나 열망을 분출한다고 해서 아무 소용 없음을 알게 해 준다. 우리가 무언가가 아무리 '백프로 확실히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더라도 정작 데이터를 열어 보면 전혀 다른 것이 인생임을 알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가 과학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겸손이다. 나는 하찮은 미물이라는 사실이다. 


노자에서 '자연은 착하지 않아서 만물을 지푸라기처럼 여긴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염두한 말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대상과 존재는 환경이다. 환경은 자연이다. 자연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 내가 자연에 관심이 있지. 왜냐하면 내가 그들에게 아쉬운 사람이니까. 그것을 알고 나면 나에게 관심 없는 친구들이 전혀 밉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아무리 많은 것을 해주었다고 하더라도, 더 강력한 조건형성이 이루어지면 그들은 그곳으로 향한다. 나 역시도 그랬듯이. 내가 나에게 작은 호의를 주었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듯, 나의 친구들도 나를 거의 잘 기억하거나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늘 가부장제란 '자신이 벌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는 제도' 라고 주장해 왔다. 그렇기에 가부장주의란 그러한 태도이고, 이것이 그런 방식으로 타인에게 가지는 하나의 태도인 한, 현대인도 누구나 가부장주의가 인류에게 준 방식의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 자신이 벌지 않은 것을, 마치 자기가 갖고 태어나서 원래부터 맡겨 놓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아무 관계도 형성하지 않은 채 태어나, 내 손에 무언가를 쥐고 관계를 위해 애쓰기 전까지는 여전히 그러하다. 미디어나 문화 작품들은 풍요로운 인간관계와 즐거운 삶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위해 얼마나 낮은 자세로 먼저 다가가야 하고 자존심을 놓아주어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삶의 거의 모든 것이다.


모든 자연이 태생적으로 나에게서 등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나의 주장 불가능한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이다. 가방을 맡기지 않고 비행기를 탔다면 도착 공항에서 내려서 짐을 찾을 때에도 거기에는 당연히 내 가방이 없을 줄 아는 용기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연락하기 위해서, 먼저 마음을 비운다. 나는 지구의 여행자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친구들에게도 나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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