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실체는 바로 당신이다.
사람들은 국가가 따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국가주의적 보수성의 첫 번째 정초이고 사회를 거대한 내무반으로 만들어놓는 첫 번째 패착이다. 국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 기관'이 따로 있지. 국가라는 덩어리는 믿음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구성하는 물리적 실체들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당신이다. 그리고 나다. 모든 한반도의 사람들이다. 나의 지도교수였던 김상봉 교수는 예전에 『네가 나라다』 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출간 후에 별 반향 없이 묻힌 책이라 안타까운데, 그 책의 메시지는 제목과 동일하다. 나라가 딴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민이 곧 나라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꾸 '정부 기관'을 '국가'와 착각한다. 그리고 국가란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정부기관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국가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무언가를 허락하거나, 금지하거나, 허여하는 주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착각이다. 국가는 우리 인간 모두가 연합하는 상태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시민 모두가 연합하면서, 마치 Jürgen Habermas 이론에서 생활세계로부터 정치체계와 경제체계가 분화한 것과 같이, 시민의 연합인 국가에서 정부 기관이라는 하나의 통치 장치가 분화해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도, 대법원도, 국방부도, 군대도, 경찰도, 의회도, 행정부도, 그 어떤 것도 '국가' 그 자체는 아니다. '국가'는 인간 모두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법을 전공하거나 행정을 전공해도, 선출을 통해서 법률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정부기관 안의 일 처리와 제도를 잘 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그 집단이 전체 세계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지 통찰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우물 안에서, 우물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 단지 지상의 한 구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서 판사나 검사와 같은 법률가들은 자신이 국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도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는 국가의 일부이지만, 정부 기관의 일원이라는 이유에서는 국가의 일부가 아니다. 그는 사법부의 일원이다. 정부 기관은 법적으로 수탁받은 일을 처리한다. 그들에게 특정한 일을 수탁하기 시작한 법은 인민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인민이 아닌 인민의 조상들이 만들었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암묵적으로 어느 정도 좋든 어느 정도 싫든 수용할 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법은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수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기관을 만들어낸 것은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조상들의 법이다. 그 법은 단지 보완되는 선에서 수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법은 정부 기관의 작동 원리를 규정하며, 정부 기관의 존재를 보증한다. 따라서, 법에 따라 정부 기관이 존재할 뿐 정부 기관이 곧 국가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 기관과 그 종사자들은 법에 관하여 집행할 뿐, 자신이 국가라고는 말할 수 없다. 정부 기관은 법을 근거로 사회를 안정시키고 약자를 구제하기 위한 목적 하에서 제한적으로 정당화된다.
국가가 인민의 조합이라고 할 때, 그러한 광의에서 국가 때문에 정부 기관이 정당화된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정부 기관이 국가는 아닌 것이다. 정부 기관은 단지 공공서비스를 위탁한 공무원들의 회사에 불과하다. 아무도 우체국을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데, 왜 국방부나 법원은 훨씬 더 국가에 가까운 것처럼 느끼는가? 그것은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도 특정한 법, 특정한 자원 수급에 매여서 수탁받은 일을 하는 공무원에 불과하다. 그들은 고용된 것이다. 고용된 자들이 스스로를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국가를 사칭하는 행위이다.
진짜 국가의 실체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민국가를 nation-state라고 할 때, 국가가 nation이면 nation이 만들어낸 장치들은 state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state가 민족이 만들어낸 장치에 불과함에도 '국가'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패착이다. 당신이 어떻게 부르든, '사람들'이 국가이다. 그 '사람들'을 '한반도 사람들'이라고 가장 객관적으로 부르든 아니면 '민족'이나 '민중'이라고 하든 북한이 뺏어간 단어인 '인민'이라 하든 남한의 보수주의 감성 가득한 '국민'이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사람들을 어떻게 부르는가는 단지 감성적인 차이에 불과하다. 심지어 무미건조하게 '모집단'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나는 개인적으로 이걸 제일 좋아한다). 중요한 것은 실체를 뭐라고 부르든 실체가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한국 사회에 참여한다면 그 모든 사람이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당신의 동료들과 친인척들이 국가이다. 그리고 당신이 국가이고, 당신도 국가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라는 이름에 겁 먹지 않고 압도되지 않는 것이다. Nation의 수임자들인 관료들은 당연히 자신을 국가 그 자체와 동치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자신에게 권력과 특권이 생기니까. 즉, 국가라는 이름을 그 물리적 실체인 한반도 사람들 그 자체로부터 떼어와서 자신이 속한 기관을 국가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이 국가의 실체라고 생각하고, 국가의 도장을 자신의 가치관과 이익에 따라 열심히 찍고 싶어 하는 욕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속한 회사나 조직의 얼굴이나 대표자가 되고 싶어 하니까. 그러나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우리도 철석같이 믿어준다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넘어 마치 스스로가 살아있는 국가처럼 타인에게 군림하려드는 것을 용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개를 흔드는 꼬리. 우리는 히틀러가 '국가'가 되고 실제 국가인 독일사람들이 오히려 SS돌격대나 히틀러유겐트와 같은 '국가 기관'이 된 사례를 보았다. 이승만이 '국가'가 되고 한국사람들이 '국가 기관'이 된 사례를 보았다. 실제 '국가의 원본'이 국가를 사칭하는 무장 사조직에 의하여 감시당하고, 구금당하고, 고문당하고, 학살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를 부르고 국가와 관련된 개념들과 실체들을 다룰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잘못된 정의는, 특정한 직종이나 기관에 종사하는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에게 과도한 권력과 권위를 부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가짜 사나이'로 재조명받고 있는 한국의 군인 숭배적 군사주의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군인과 군대에 대한 과도하고 왜곡된 숭배, '군인 아저씨 감사해요!' 라는 프로파간다, 강제 징병해가지곤 월급 40만원 주면서 '장병여러분 덕분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어요' 싸가지 없는 소리들, 그리고 반대로 군인과 군대가 관습적으로 행하는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에 대한 과도하고 왜곡된 숭배 모두 이 사회가 적절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공무원의 권력 남용을 제한하고 감시하고 징계하는 것에 대한 판단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숭배가 합리성을 축출하는 것이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시민이라는 지평에서 동등하고, 서로 다른 직업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다르고, 그럼에도 노동자라는 지평에서 다시 동등하며, 공동의 제도와 문화를 형성해간다는 점에서 또한 동등하다. 즉, '노동자들의 공동체'라는 개념이 국가의 가장 적절한 정의이다.
그러므로 군인에 대한, 반대로, 군인으로부터의 갖가지 숭배를 멈추어야 한다. 군인은 적어도 마음 속에서, 국기나 국가에 대해 경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을 고용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경례하면 된다. 국가란 곧 상품과 서비스를 뽑아내는 노동자들의 회합인 동시에 소득세와 소비세를 납부하는 소비자들의 회합이다. 그러므로 국기 그 자체는 텅 빈 기표에 불과하다. 실제로 군인들이 경례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소비자들과 알바생들과 회사원들에게 경례하라. 거꾸로, 군대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도 군대에 과도한 감사와 그들의 희생에 대한 숭배를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희생할 필요가 없도록, 아니면 이 정도 돈이면 무엇도 희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신의 손실분과 리스크를 충분히 보상하는 고액 연봉을 지급하면 된다. 군인의 고통을 분담하라! 왜 돈으로 보상할 수 있는데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고 애국심이라는 쓸모없는 가상화폐로 '애국 페이'를 하는가? 당신도 희생하지 않는데 왜 군인은 희생해야 하는가? 왜 군인들을 어딘가에 그들만의 문화적 게토에 가두어 두고 특수 집단 취급을 하는가? 군인들은 우리 민족, 우리 국가, 우리 친구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특수집단이라고 부를 것이라면 특수한 월급을 주어야 하고, 특수한 환경을 보상하는 특수한 쾌락을 주어야 한다.
어떤 동료 인간도 숭배하지 않아야 한다. 받은 것에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다. (그래 내가 진짜 자유-민주주의자다 이 태극기부대들아) 숭배는 '네가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다' 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사람 취급 하지 않는 것이다. 즉, 경멸하는 것이다. 인간은 존중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고대의 희생 제의나 여성 숭배가 결국 어떤 행동으로 이뤄졌는지 잘 알고 있다. 숭배의 결과는 살해하거나 거세하거나 강간하는 것이다. 국가의 자리에 실제 국가인 '모든 사람'을 제외한 어떤 특정한 사람도 가져다놓지 않아야 한다. 특히 군인들 말이다. 군인은 훨씬 더 나은 대우와 훨씬 더 열린 직장문화를 가져야 한다. 사람을 가둬 두고, 부당하게 취급하고, 그리고 나서 숭배하면 남는 것은 5년 단위로 커리어 박살나는 부사관들과 20년 버텨서 군인연금 먹고 승승장구하는 장성들뿐이다. 군인은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에 불과하다. 우리는 판사나 검사에게도, 행정 관료에게도, 너무 많은 감정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모두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교통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인 그 자체가 무려 국가이면서, 자신이 단지 국가의 구성원이고 백성이고 국민일 뿐이라는 자학적인 생각을 해 왔다. 당신은 국가의 구성원이 아니다. 국가의 일부다. 국가라는 실체가 따로 존재하고 그 국가라는 그릇 안에 당신이 담겨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릇의 일부라고. 그래서 당신이 거부하면, 국가의 일부가 거부하는 것이다. 당신이 찬성하면, 국가의 일부가 찬성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어떤 사항이 투표나 직권으로 결정되는 것은, 단지 법의 제정과 개정에 관해 · 행정상 필요에 의하여 · 다음 위임자를 획정하기 위하여, 이런저런 투표 시스템을 통해 다수결로 합의를 보기 위하여서만 정당화된다. 서로 엄청나게 견제타격을 날려 대는 민주주의는 분쟁해결과 폭력의 예방 그리고 사회안정에 가장 낫기 때문에 우리는 다수결을 일단은 존중해 주고 지켜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국가를 이루는 대다수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따를 뿐, 그것이 국가의 결정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당신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는 없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다' '우리나라 좋은나라 충성충성' '대한민국 만세' 라고 떠드는 사람은, 제발 집에서 가까운 아무 대학에 등록금 내고 입학해서 e-러닝 센터에서 제일 빨리 개강하는 <사회학개론>이랑 <정치철학의이해> 와 같은 과목 좀 듣고 오기를 바란다. 내가 여기서 그것까지 일일이 다 설명해 줄 수는 없다. 훌륭한 정치철학자들 아무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한국인들이, 오직 히로히토 천황 시대 일본제국으로부터 정부 기관 운영방침과 군대 문화의 기초를 물려받고, 한국전쟁을 치르며 더 보수화되고, 아무리 조선시대 방식으로 살아도 위에 북한이 언제나 본인들보다 훨씬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쟤들보다 낫지' 정신승리 할 수 있는 게을러터진 한국인들만이 그런 권위주의 방식 사고를 이 21세기 대명천지에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구식인 데다가 민주주의에 해가 되는 생각들은, 스스로 정정하지 않으면 남이 와서 정정해줄 것이다. 아니면 유능하고 자유로운 청년들이 캐나다로 이민가는 꼴을 넋 놓고 봐야 할 것이고. 청년들이 국가주의 꼰대들에게 군대 가라느니, 국가에 충성하라느니, 21세기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들로 시달리면 앞으로 뭐가 좋다고 고도성장시대 끝나서 고갈되어가는 한국 연기금에 지가 쓰지도 못하고 꼰대들이 다 먹어치울 연금보험료 내 주겠는가? 테슬라 주식이나 사지. 민주주의 시대의 상황판단은 지엄한 것이다. 동료 시민들, 특히 내가 어쩌면 착취할 가능성이 있는 청년층에게 이상한 거 강요하지 말고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고 잘 대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NPS에 연금보험료 내 준다 이 말이야. 그게 당신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고.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아주 많은 다수의 사람이 먼저 있고 제도가 있고, 그 제도에 의해 정부 기관이 생겨난 것이다. 순서 헷갈리면 안 된다. 순서 헷갈리면 나치 된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나중에 한국에 대통령제 폐지되고 무슨 총통 같은거 생기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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