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나루의 과도기 이론
저는 언제나 좌파 정당이 돈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혹은, 기업과 결합하거나 아니면 그 스스로가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수적/질적 열세에 마물러 있는 좌파 정당 혹은 소수자 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제가 지금부터 풀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존 좌파의 핵심 의제는, 왜 생산에는 모두가 참여하는데 그 이익의 대부분은 회사 측에 귀속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모든 좌파는 단지 창업자라고 해서, 노동자와 정부의 자원이 투여된 복합체로서의 회사의 모든 권리와 결실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좌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것의 정당성이 아니라 그 정당성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에서조차도 생산력의 결실(화폐)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예측에서 가장 틀린게 뭔지 아십니까? 돈이 아니라 연대가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생산력이 없이 연대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연대가 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연대를 해도, 가용 자원의 크기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상은 금권정입니다. 돈이 많으면 사회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바꿔야겠지요. 사실상의(de facto) 금권정을 민주정으로 바꾸어야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바꾸는 것 자체에 돈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돈을 가져 와야 합니다. 없으면 당과 조직 차원에서 창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총을 가져오는데 몽둥이로 상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돈은 사실상의 모든 조건입니다. 나는 왜 좌파들이 돈을 그렇게 멸시하고 낮추어 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사회운동을 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수 만 명이 모인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집단을 형성할 수 있습니까? 지금 학교밖청소년이 40만명이 넘어도 누가 그 사람들 신경씁니까? 불가능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등에 지고 그런 집단을 형성하는 과정 그 자체를 버틸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저는 좌파의 불가능성을 보고 자랐습니다. 좌파가 옳고 그르냐는 문제는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질문입니다.
좌파가 옳냐고요? 당연히 옳지요! 좌익으로 분류되는 사상 가운데, 하나의 범주 전체가 폐기된 사상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페미니즘이 폐기되었습니까? 페미니즘은 좌파적 사상입니다. 기존의 가부장제 문화와 불화하니까요. 그것이 그릇되었을 리가 있습니까. 녹색주의가 폐기되었습니까? 이제 모두가 녹색으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사회주의는 좌파적 사상이에요. 기존의 약탈적이고 착취적인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불평등을 고쳐 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균등하게 잘 살게 해 주자는 주장이 대체 어떻게 하면 틀린 주장이 될 수 있습니까?
좌파의 옳음은 적어도 윤리의 측면에서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까지. 그게 당연하다면, 이제 동어반복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그걸 옳다고 하루종일 세미나에서 주워섬기는 좌파들도 한심하고요, 그런 한 줌의 좌익들을 가지고 빨갱이니 게으름뱅이니 공격하는 못 배워먹은 소시오패스 우파들도 한심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바로, 정치적 조직의 육성을 통하여 옳음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조직의 육성을 통하여 우리는 사회적 정의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것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❶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기본 생산수준을 완비하고, ❷ 잉여 화폐를 정치적인 조직에 투입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습니다. 집단은 그 자체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개인들이 집단의 실체입니다. 따라서 잉여 화폐를 생산하는 개인이 없다면, 집단은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구성원의 능력이 없는 집단은 문제 해결 능력도 갖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에서 알 수 있듯, 근본적으로는 개인이 창출하는 생산력은 개인의 생활수준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정치 집단의 성패도 결정하게 됩니다.
자체적이고 혁신적인 상품 생산 수단의 소유가 없으면, 누가? 생산수단을 노동계급이 소유하지 않으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충분한 자원을 축적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 이야기는 생산수단을 노동계급이 소유해야 한다는 정통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 경제시스템 하에서의 생산수단 소유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하에서의 생산수단 소유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마술적이고 공상적인, 공학계산기 한 번 두드려보지 않은 문과생들이 뇌피셜만 찍어내고 있는 공산주의 사회를 마치 기독교인들이 천당을 상상하는 것처럼 머릿속에 제멋대로 가정해 놓고서는, 아아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되니 저떻게 되니 하는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곳에 - 그곳이 공산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사민주의이든 간에 - 단계적 · 점진적으로 접근하지 않고서는 결코 그 사회를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어떤 사회란(어떤 체제란) 사람들의 도덕원칙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법조문과 문화적 규범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대의 법과 규범은 오직 이전 세대의 법과 규범에 대한 신세대의 저항이라는 형태로만 건축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란 저항을 기대하지 않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저항 없는 개혁은 그 자체로 너무나 이상하고 만화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우리는 단계적 ·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데 있어서도 엄청난 저항을 이겨내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저항할 때, 그 저항의 대상은 자본(일반적으로 회사,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정치인과 유포한 담론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자본으로부터 월급을 받아서 자본을 뒤집어버릴 수 있을까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봅시다. 병원 청소 일을 해서 병원을 사는 게 가능한가요? 회사의 직원으로 받는 월급으로 회사를 매수해버릴 수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불가능합니다. 병원 월급 가지고 의료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의 화폐를 비축할 수가 없듯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연대하는 것에 만족한 채, 자기 사업체 경영을 게을리 하여 자본가계급 그 자체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 계급이 되지 않는 한 승리할 수 없다는 말이냐고요? 예. 맞습니다. 저를 개량주의자라고 욕하지 마세요. 반동분자라고 욕하지 마세요. 저는 정말로 좌파 여러분의 혁명이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좌파동지들과의 정신적 자위행위 파티 술자리를 여는 대신에, 다시 한 번 진정한 혁명의 성취를 위해서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 충신의 마음으로 알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회사를 차려서 돈을 버십시오 좌파들이여. 물론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돈은 수단에 불과해요. 연대가 쓸모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연대야말로 사회적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고, 돈은 시장에서 다른 기업에 대한 비교우위를 점함으로써 벌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돈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다른 돈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를 갖는 거니까요. 그죠? 다른회사가 돈 많이 벌면은 내 돈은 희석돼요. 인플레이션 때문에. 더 많은 가치의 생산이 더 많은 화폐의 발행을 부르니까요. 그 인플레이션을 우리가 일으켜야 자본주의에서 승리하는 거에요.
근데 지금은 쟤들이 일으키고 있잖아. 그런데 왜 가만히 있냐는 말입니다. 자기계발 해야지. 좌파들이 우파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우파를 찍어눌러야지 않겠어요? 즉, 산업적인 경쟁에서 이기지 않고, 푼돈을 모아서 정치공동체를 만들어 봐야 도대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좌파가 '나는 대안사회로 가고 싶어, 나는 농사짓는 공동체가 좋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좌파를 나약하게 하는 소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좌파는 우파보다 더 냉혈한 야수 자본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짐승이 될 준비가 되셨나요? 여러분은 좌파 기업가로서 우파 기업가를 착취하고 약탈할 준비가 되셨나요? 착취하고 약탈하는 자를 착취하고 약탈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승리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경제 승리뿐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사회를 가장 근본적으로 묶어 주는 힘은 정치죠. 정치는 민주주의고 민주주의는 돈이 없는 사람도 1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책대상에게 협상이 아니라 법을 통해 규제한다는 점에서 레버리지에요. 정치는 적은 돈으로 많은 것을 결정하게 해 줍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의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단 5만명의 당원으로 국회의원을 3명이나 원내 진입 시켰어요. 좋은 겁니다. 비윤리적인 자본주의, 비윤리적인 기업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정치죠. 그렇다면 당연히 기업이 정당과 결합할 때 그 위력은 훨씬 강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속에서 부르주아 기업과 정치가 결합해서 어떤 괴물 보수정당을 낳았다면, 우리는 역으로, 노동자 기업과 정치를 결합시킴으로써 거인과 같은 진보정당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노동당 비선실세로 지목되어 유명해졌던 코리아보드게임즈 사건이 있어요.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회사입니다. 『카탄의 개척자』, 『스플렌더』 등 매우 굵직굵직한 보드게임 타이틀을 한국어화하고 퍼블리쉬하는 대형 총판이지요. 놀랍게도 그 회사 대표가, (회사의 돈을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노동당에 자금을 투입하면서 비밀리에 자기 세력을 키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게 결국은 들통이 나서 우리가 모두 알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저는 노동당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어떤 노동당 관계자에게도 개인적인 호불호가 없음을 밝힙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이 노동당 전 당원이자 회사 대표이신 분이 민주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라인을 키웠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큰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이 분이 추구하였던 좌파정당과 좌파회사의 금전적인 결합은 근본적으로 훌륭한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이 코리아보드게임즈 대표 분께서, 어차피 들통날 것이었다면 좀 더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당에 정치자금을 증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노동당원의 숫자는 고작 1만 1천명에 불과합니다. 대략 정의당의 20%에 불과하고, 신천지의 5%에 불과하는 규모입니다. 더군다가 이 사람들이 대부분 알바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면, 당직자를 무급으로 갈아넣는 것 이외에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민주당과 같이 400만 당원을 자랑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당이 되고 나면, '정치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같은 철학적인 물음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좌파 단체는 기업가 당원들이 양적 성장이 성취될 때까지 자금줄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좌파들. 예 약자를 도우십시오. 본인이 약자가 되면 어떡합니까? 좌파가 생산력과 정치력을 모두 가지는 것은 너무 많이 간과되어온 가치입니다. 좌파 회사와 좌파 정치의 결합은 필수적입니다. 이런 사례가 해외에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결코 좋은 사례는 아니지만, 중국 공산당 그 자체도 생산력과 정당의 결합이라는 지점에서만큼은 좋은 사례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일당제이기 때문에 견제받지 않아서 부패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일당제가 아니었다면, 강력한 정당정치의 문화에 민주주의적인 비판과 검증의 문화가 더해질 수 있었더라면 진정한 정치적 모범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좌파는 정치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라 기업의 영역에서도 우파를 압도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좌파 정당이야말로 금전적으로 부유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공공의 적이 된 중국 공산당이 반면교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바와 같이, 반드시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좌파들은 정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경제와 경영에 대해서는 까막눈이고, 평균적으로 가난하며, 부유하더라도 그것은 공무원 부모의 월급에 의존한 부유함이며(아까 말했다시피, '병원 청소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어떻게 병원을 구입할 수 있습니까?'), 너무 적은 사람들이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존재하다 보니 민주적이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좌파들은 그러한 자신의 비루함과 부족함을 청빈함과 특별함으로 포장하며 자위하고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어떤 좌파들은 스탈린주의와 소련 · 중국 등의 일당 독재 체제, 심지어는 북한 체제마저 찬양하곤 합니다. 이것은 거의 지능 문제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참혹한 오판 중의 오판입니다. 독재는 절대 안 됩니다. 자기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서 권력자들의 배에 죽창을 꽂고 싶더라도, 정말 실제 권력자의 배에 죽창을 꽂는 한이 있어도 그 원한 감정을 정치 담론에 끌고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독재는 그 조직을 안에서부터 악마화한다는 점에서 좌파의 가장 큰 적입니다.
독재 세력 내부의 사람들은, 나의 조직이 언젠가 자신이 괴롭힌 사람들의 보복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에 부여된 도전받지 않는 권력을 좋은 방향으로 이용하려는 선량한 당원이 있을지라도, 인구에 4% 존재하는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가 반드시 절대권력을 악용하게 됩니다. 선량한 인간들은 제도와 상황의 힘 없이는 절대 소시오패스 종류의 인간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진리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선택권은 달리 말하면 거부와 거절의 권리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조직을 끌어내릴 힘입니다. 그 힘이 존재해야만 정당과 회사들이 나에게(우리에게)제공하는 지지가 박탈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선한 원칙에의 복종 문화가 있어야만 조직은 합리화되며, 조직 내부의 '고성능 소시오패스들'이 축출될 근거가 마련됩니다. 물론 인간은 대체적으로 선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절반은 법 없이도 살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처벌의 공포는 전혀 쓸모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공포가 존재해야만, 나머지 절반의 기회주의자들과 비윤리적 야망가들이 조직을 지배하고 권력을 악용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좌파 여러분들께서는, 당신이 만들고 싶은 목표가 어떤 것이든 간에, 우리 삶에 놓여진 이 과도기에서, 과도기다운 행동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파와의 경제적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획일화된 스펙을 거부하기는커녕 그 스펙을 씹어먹고 새로운 스펙을 제안할 만한 실력 괴물이 되어야 하며, 우파보다 선량하고 안정된 좋은 인격을 가져야 하고(바로 이 지점에서 NL의 품성론은 완벽한 정답입니다), 우파 기업들을 좌절시키는 좌파 기업을 소유해야 하며, 우파보다 부자가 되고, 우파보다 좋은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고, 우파보다 훨씬 더 즐겁고 훨씬 더 오래 살아야 합니다.
좌파는 시민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시민 중의 강자가 되어야 합니다. 생태계를 휘저어 놓는 강력한 외래 교란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지리멸렬한 과도기에 사람들은 인터넷 댓글창과 유튜브 가짜뉴스 대신에, 좌파인들을 신뢰하고 좌파인들의 원대한 꿈에 동참할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돈과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 사람이 약속하는 미래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내 말이 서운하게만 들린다면, 혹은 너무 냉소적이고 과격하게만 들린다면 당신 자신이 타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부터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신이 소속된 정당이나 정파의 동지들을 보십시오. 당신은 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그 사람들에게 인생을 맡길 수 있습니까? 함께 벤처 기업을 키워 나갈 수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미래의 어느 순간에라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누구보다 열렬히 진보-좌파 인들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럼에도 현실에 절망해서 변절하지 말고,
현실에 맞는 과도기의 전략을 냉정한 마음으로 새로 수립하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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