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라 곳곳에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본뜬 이름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더니, 이젠 새롭게 꾸며진다 싶은 길거리엔 모두 '-리단길'을 붙이고 있다. 객리단길(전주), 평리단길(인천), 황리단길(경주), 해리단길(부산), 봉리단길(김해) 들처럼,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거리는 전국에 20여 곳이 넘는다. 도시의 낡은 골목들이 새롭게 단장을 하고, 쇠퇴한 골목들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일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왜 하나같이 '-리단길'이라는 이름이어야 할까?
원래 '경리단길'은, 1957년 3월에 설립된 '육군중앙경리단'(현, 국군재정관리단)이 위치해 있던 일대를 일컫던 이름이었다. 따지고 보면 각 동네의 첫 글자만 따와 거기에 '-리단길'이라 붙이는 것은, 우리 어법에도 전혀 맞지 않는 이름인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리단길'은 도시재생사업의 보통명사처럼 점점 확산되고 있다.
애초 경리단길은 이태원을 중심으로 미군들이 주로 모여들었던 탓에 이국적인 카페들이 주를 이루었고, 여기에 몇몇 연예인들 소유의 카페와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경리단길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것은 2015년 무렵이다.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경리단길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건물주들은 기존 임대료를 세 배 이상 올렸고, 우후죽순 생겨난 비슷비슷한 가게들이 '공유지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이 일대를 전국적인 콘텐츠로 알리는 데 기여한 연예인조차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게를 내놓고 있는 판이다.
전국의 다른 '-리단길'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역마다 이름은 달리 했어도 골목들마다 예쁜 카페와 파스타 같은 서양 음식점들, 수공예 액세서리점들이 국적도 모를 간판 아래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빼곡하다. 지역의 특색이나 오랜 동네의 특색은 찾을 길 없고, 그저 예쁘고 이국적으로만 치장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전국을 똑같은 풍경으로 뒤덮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SNS에 올라오는 인증샷만 보면 여기가 경리단길인지, 봉리단길인지 전혀 알아챌 수가 없을 정도다. 따라서 굳이 경리단길을 찾을 필요없이 가까운 동네 골목길만 찾아들어도 그 비슷한 분위기를 제법 누릴 수 있다. 결국 한정된 소비자를 대상으로 몰개성적이고 무분별한 개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도시 재생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셈이 되고 만 셈이다.
이러한 지역이 지금은 온통 국적 모를 간판과 천편일률적인 카페들로 뒤덮이고 말았다. 소위 도시재생사업이라는 이름 하에 고대 유적의 면면을 낱낱이 지워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진정 도시 재생이며, 무엇이 지역민들을 위한 사업인지를 이제는 관과 민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빛깔과 향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강조한 바 있다. 이름이란 그런 것이다.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면면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기호. 지금 우리가 붙여가고 있는 이 이름들은 과연 그 지역의 '빛깔과 향기'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