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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un 10. 2024

新 밥상머리 교육 39

교육이 될까


밥상머리라는 말은 명사로, 차려 놓은 밥상의 한쪽 언저리나 그 가까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밥상머리 교육은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인성, 예절 등에 대한 교육이라고 바로 그 아래에 보인다. 그러니까 정확히 하자면 新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써야 제대로 된 제목이 될 텐데 어쩐지 '교육'이란 말이 어렵다. 그것은 누가 나를 '선생님'하고 부를 때 내가 느끼는 어색함과 같은 색이다. 교원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선생이라고 부르고 불리는 것이 눈 감고 아웅 하는 것 같아서 달갑지 않았다. 학원 선생님이란 말을 해야 할 상황에서도 누구누구를 맡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넘어가곤 했다. 결코 선생님이란 글자를 높게 여기기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아니었고 자격지심 같은 것일까 생각도 해봤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가르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럴 것도 없었다. 나는 호칭에 어설픈 사람이다. 그 부분이 약하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사람과 접하는 모든 활동에서 드러나는 내 약점은 바로 호칭에 있다. 나는 상대를 잘 부르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 대상이 '아빠'였다. 기억도 허물어지는 것이라서 이제는 희미하지만 아빠라는 말이 어디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입이었을까, 머릿속, 아니면 가슴 같은 데였을까.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막을 수가 없었다는 말도 그랬을 거라고 짐작을 할 뿐이다. 어린 시절 내가 겪어야 할 고비 중에 하나가 아빠에서 아버지로 호칭을 바꿔 불러야 했던 일이다. 아빠에서 풀지 못한 문제를 아버지에서 풀려니 막막했다. 그 즈음에는 엄마라는 말도 더듬거리기 시작했던 듯하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한다. 이렇게 글로 쓸 때나 어머니, 적어 보는 것이 전부다. 우리 어머니는 나한테서 어머니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없이 늙으셨고 지금은 정신이 쇠약해지셨다. 나는 핑계를 대는 것일까, 변명을 하는 것일까. 어딘가에서 가장 가까운 호칭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형이라는 말도 무척 드물어졌다. 선배님 그러면 쉬울 텐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아서 부르지 않는다. 누나라는 말도 못 한다. 지금도 사촌 형이나 누나를 만나거나 통화를 해야 할 때는 어딘가 힘을 주고 부른다. 형님이세요, 누구누구 누나세요. 절대로 형, 누나! 그러면서 입이 떼지지 않는다. 호칭이 멀어지면 관계도 멀어진다. 부르는 것도 불리는 것도 어색해지고 점점 불편한 것을 안 하게 되면 소식이 끊긴다. 감금이나 단절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 누가 가둬둔 것도 아닌 셀프 감금이라서 더 방법이 없다. 위리안치 같은 말을 책에서 만나면 가시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나를 상상한다. 그것이 병이나 질환은 아니더라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인 줄은 안다. 급기야 '아내'라는 말도 못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가끔 지적한다. 아빠는 엄마를 부르지 않는다고.

밥을 먹다가 그랬을 것이다. 지금 하는 말들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이 순간이 기억나지도 않고 그래서 그리워할 줄도 모르는 때가 불현듯 떠올랐을 것이다. 텅 빈 기억을 가진 사람이 어른거렸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는 이 식탁을 그리고 싶어질 텐데 그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면 분명 아쉬울 거야. 그랬을 것이다. 시작은 늘 그렇듯 단출하고 소박하고 금방 치우고 일어날 것처럼 움직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적었던 제목이 '밥상머리',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적지 못하고 그렇게만 적어 놓았다. 그것이 2018년 어느 날이었다.

오늘은 제목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부터는 '新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기로 한다. 한 달에 한 번도 좋고, 석 달에 한 번, 어느 해는 근 1년이 지나서 쓴 적도 있다. 햇수로 6년쯤 되니까 40편에 가까워졌다. 아이들도 그만큼 자랐다. 나도 나이를 먹었고 아직도 서툴지만 그래도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강화도에 사는 광구 형에게도 먼저 연락하고 유미 누나에게도 연락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을 미안해 하고 있다. 아내라는 말도 연습 삼아 매일 일기에 쓰고 있고 아들아, 딸아 그러면서 산에 다니는 이야기도 쓴다. 어머니, 아버지로 가는 길이 이렇게 어려운 사람도 세상에는 있다. 그래도 누구를 원망해 본 적은 없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내 탓인 줄 안다. 내가 못난 탓, 밑도 끝도 없는 자책 같은 것이 아니라 내 평화가 어디에서 샘솟는지 탐지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저것이다. 내가 가진 불비不備를 보듬고 싶어졌다. 내가 외면하면 그것을 누가 돌보겠는가. 누군가를 교육할 수준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거기로 가는 길을 찾고 그 길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나를 가르치고 나는 나를 배우며 산다. 오늘 이야기도 그런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이야기, 소슬한 이야기, 언젠가 너희가 헤매고 서성거릴 때에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으면 싶다.

토요일 늦은 아침, 브런치! 소시지에서 훈김이 난다. 방금 구운 빵에 치즈크림을 얇게 한 겹 바르고 그 위에 사과잼을 바르는 사이에 계란 스크램블이 완성됐다. 연하고 순한 노란색이 하얀 접시에 깔린다. 얇고 가는 스푼이 부드러운 계란 속을 파고든다. 먹기 좋게 구워진 베이컨이 짭짤하다. 옥수수 수프를 떠먹는 강이는 아직도 잠이 덜 깬 표정이다. 산이는 팬케이크는 이제 없냐고 둘러본다.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다 떨어졌다며 오늘은 이대로 먹자고 재촉한다. 6월로 들어선 햇살이 한층 기운이 좋아졌다. 활짝 열어놓은 창으로 바람이 겨우 한 줌 들어선다. 하이, 헬로ㅡ 애브리원.

가끔 저렇게 아침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어제 아침도 밥을 먹었다. 내 앞에는 변함없이 된장국이 등장했다. 오늘은 호박이 들어갔다. 팬케이크 대신에 부침개가 나왔다. 호박이 또 들어갔다. 호박 만세다. 대한~민국! 짜짜짜짜짜!!

저번에 보니까 원 여고 앞에서 남학생하고 여학생이 팔짱 끼고 가더라, 오늘은 아내가 선두 타자로 나섰다. 한창 공부할 때 그러면 쓰냐고 충고인지, 걱정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말을 꺼냈다. 듣기에 따라 독백 같기도 하고 방백 같으면서도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같았다. 애들 들으라고 한 것인지, 나한테 말한 것인지, 그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상대의 마음을 읽겠다는 의도다. 번트 수비를 해야 하나, 정상적인 수비 위치를 지켜야 하나, 아내를 뺀 세 사람이 '이건 뭐지?' 싶으면서 자기 앞에 있는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다 댔다. 나도, 강이도, 산이도 계란 부침개에 몰려들었다. 이심전심, 찌지 뽕, 염화미소에 불립문자다. 아내가 바로 반응했다. 강이야, 이거 맛있지? 응응. 산이야, 맛있지? 맛있긴 한데 다른 때보다 부추가 많이 들어갔어. 나를 쳐다본다. 맛있어, 맛있어! 그리고 한 번 더 외쳐야 한다. 맛있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밥상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의식하지 않으면 먹느라 그냥 지나가고 만다. 그렇게 먹고 나면 무슨 말이라도 할 걸 그랬다며 후회가 든다. '사느라' 그러면서 말을 꺼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뒷말은 늘 허전하고 공허했던 거 같다. 아직까지는 '먹느라' 그 말이 '사느라' 만큼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지는 못한 듯하다. 언젠가 '먹느라'가 '사느라' 같이 여기저기에서 활약하게 되면 그만큼 우리는 더 쓸쓸해질까, 아니면 부자가 될까.

그게 뭐가 어때서?라고 나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면 아내가 혼자 외롭게 전사戰死하는 거 같아서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 연합군으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총성 없는 전쟁, 올림픽이 그랬고 육아育兒가 그랬으며 지금 고2, 중2 시절이 또한 다르지 않으니까. 나도 힘을 보태야 한다. 아니다 다를까, 산이가 치고 나온다. 혹시 내 친구 아니었어? 요즘 그러는 애들 많아. 강이도, 학원에 수업받는 친구들이 자기 빼고 다 썸* 타고 있다며 오빠를 지원한다.

모든 것이 때가 있다는 말, 어떻게 들릴까. 당연한 것들은 식상한 맛이 날 때 치명적이다. 익숙해지면 왜 재미 없어질까. 늘 새롭다면 신선할 텐데···· 곳곳이 지뢰다. 사람에게는 약점도 많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 꼭 한 번은 죽는 거잖아. 만약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 죽고 싶을까? 아이들이 밥상에서 자랐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성숙해졌다는 의미다. 편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빠는 하나 깨달은 것이 있는데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는 거야. 너희들 능동이니 수동, 그런 말 배우잖아. 영어에서 능동은 주어가 동작을 하는 거라고 그러고 수동은 동작을 당한다고 표현하잖아? 때라는 것도 그래.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는 때가 있고 내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때도 있어. (여기까지 나온 김에 친절하기로 마음먹고 천천히 분위기를 음미하면서 눈도 찡긋거리면서 입도 삐죽 내밀다가 가끔 뜸도 들이고, 거드름 피우듯 멀뚱멀뚱 아이들을 번갈아 보면서 잘 들어보라고 청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똑같은 소원을 하나 갖고 있어. 그게 뭘까? 그래, 자식이 행복한 거! 그래서 부모들은 무엇을 기도할까? 아마 다들 그런 생각 하지 않을까? 자기 아이가 커서 자기 앞가림을 잘할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최소한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말이지. 병원에서 그런 엄마, 아빠들을 만났었다. 불과 몇 년 전 이야기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 있는 암 병원에는 절절한 마음들이 병실에 누워서 슬픔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랄 때까지 어떻게든 살고 싶은 사람들이겠지. 그렇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게 전부일 거야. 그런 사람들이 엄마, 아빠잖아. 나는 공부가 자식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것이 아무리 바쁘고 재미있어도 자식을 혼자 놓고 다니면 어떻게 될까? 그 아이는 잘 자랄 수 있을까? 물론 아빠도 잘 몰랐지, 그걸 알았으면 그렇게 내버려 두고 살지 않았겠지. 아빠도 늦게서야 안 거야. 그래서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인 줄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어. 내 영혼의 자식이 공부라는 것을, 그 아이가 굶주리고 외롭고 허전해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 다른 것들만 찾아다니느라고. 봐라, 자식이 잘 자라면 부모는 아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지? 공부도 그런다. 공부도 사람을 뿌듯하게 해주고 자신있게 만들어 준다. 산이와 강이, 둘 다 경청 모드다. 아내도 말이 없이 조용하다. 힘을 좀 빼야겠다. 소시지에 이빨이 박히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경쾌하게 울렸다. 눈 밟는 소리가 난다. 뽀깍뽀깍.

시기는 정말 중요해.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걷이 하고 겨울을 맞이하는 이치가 너무 당연하잖아. 너무너무 당연한 것 앞에서는 감히 식상하다는 말도 안 나오잖아. 너희들 80 먹은 부모가 60 먹은 자식 걱정한다는 소리 들어봤지? 공부가 꼭 그래. 사람한테 자식 같은 것이 정말 공부라니까. 아무리 어려도 공부하고 아무리 늙어도 공부하는 거야. 살면서 떼어놓지 못 하는 거라니까. 여자 친구, 남자 친구 사귀고 싶은 거야 이해가 되지.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니야. 그런데 지금을 잘 가꿔나가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시절이 찾아온다는 것이지. 그것을 상실이라고 배우잖아. 주권 상실, 전쟁, 지배, 역사책에서나 봤던 말들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잘 자랄 때까지 애써서 키우고 가르치고 돕는 거잖아. 자기 힘으로 설 수 있도록. 그게 공부라는 거 아닐까.

나도 팬케이크 좋아한다. 메이플 시럽에 찍어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른하게 눈이 감길 때도 있다. 써니사이드업, 그러면서 계란 프라이를 시켜 먹는 재미도 좋아한다. 브런치에는 샌드위치보다 토스트가 좋다. 가끔 밀크티가 나와도 좋고 실론티라고 써진 홍차도 좋다. 그렇게 먹어도 여전히 우리는 '밥상머리'에 앉는다. 무엇을 먹느냐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다음에 나오는 메뉴인 듯하다. 이야기할 무엇이 없으면 밥상머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밥상머리를 채운다. 거기서 나눈 것들이 '교육'이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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