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기로 한다 / 박영희

시의,

by 강물처럼


접기로 한다 /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포기가 아니라 접는다 했다

체념이 아니라 접는다 했다

마음과 마음을 접는다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포개어진다는 말보다 더 아릿하다

접는다는 말은 포갠다는 말보다 더 따뜻하다

너를 향해서 매몰차게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하여 살며시 닫아 주는 애틋한 얼굴이지 않는가

접는다는 것은 너를 버려 나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너를 희망하는 다른 이름이지 않는가

접는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안고 가는

기다림을 등에 지고 가는 이가 지켰을 보루 堡壘 같은 것.

살아 보아라

다 접어지던 마음 있었는지.


프랑스와즈 아르디가 부르는 Star를 듣는다.

아침인데 손이 부었다.

쥐었다 폈다 서너 번 반복해본다.

내 손 같지 않다.

자면서 내가 뭘 했나 싶다.

쓸데없이 웃었거나 이유 없이 괴롭혔거나 주저 없이 포기했던가

부은 손으로 다른 부은 손을 꼭꼭 누른다.

악수도 해보고 서로 비벼보고 깍지도 껴본다.

봄이라고는 해도,

바람이 차가웠던 날이었다.

아무래도 다 잊지 못한,

다 접지 못한 밤이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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