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봄동 / 주영헌
이 계절엔 엉덩이가 보이지 않도록 바짝 엎드려야 합니다.
손바닥은 엉덩이의 말랑말랑한 촉감을 좋아합니다.
우리 엉덩이는 푸석하고 바람은 손에 사정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엎드리는 것이 우리의 일이듯 그들에게도 역할일 뿐입니다.
惡악해 보인다는 것은 때론 성실히 공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합시다.
우리는 언제나 긴장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손바닥이
날아올지 모릅니다. 어디서 주먹과 발길질이 시작될지
모릅니다. 방심하고 고개를 쳐들 때 와장창 소리와 함께
몸의 일부가 무너져 내립니다. 이 계절엔 우리의 몸은 유리입니다.
부서진 유리조각은 흉기가 됩니다. 변심한 내가 나의 심장을
찌릅니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우리가 됩시다. 걸인의 동전은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수천 년 전 인도의
어느 성현은 노예나 불가촉천민도 인간 種이라고 했다지요.
브라만은 우리의 계절에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봄동의 맛을 모릅니다.
봄기운이 부푼 가슴을 풀어헤치고 땅을 보듬어 젖을 물리려 한다.
지게꾼이며 나무꾼, 아무렇게나 세워둔 노새며 나귀에 질려 길은 어깨만 내어놓고 고단한 몸을 뉘었다.
씻지도 못하는 얼굴들 위로 봄비가 내린다.
궤짝 한 개를 짊어진 신기료장수가 가던 길을 긋고 편물점 처마 밑에서 밤을 맞는다. 장마당은 더욱 적적하여 이따금 노새가 내는 방울 소리에 나귀는 졸리는 눈을 깜박거리다가 푸드덕거린다. 객주네 문간방에 머문 사내들은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입맛을 다셔가며 술내를 풍긴다. 호롱 하나에 의지하여 세상에 봄이 온다. 풍찬노숙 風餐露宿으로 하얗게 밤을 새더라도 어느 날 향기로울 것이다. 통통하니 물이 오른 봄동이며 벚나무 가지에는 잊지 않고서 나비가 날아들 것이다.
찬 것들은 풀어지고 언 것들은 녹아라.
OBLIVION, 깨고 나서 꿈인 줄 아는 너는 날카로웠던 시절마저 봄으로 칭칭 감아라.
백 년 전 사그라들던 불빛 옆에서 '철없는 그대'에게 건네지 못한 내 따스한 손이 오늘 밤 찾아가 해후 邂逅하리니.